나의 비밀 유포자는 바로 나였다

남의 불행을 사랑하는 인간을 위하여

by 김단한


후배는 울었다.


여태 내가 뱉은 모든 말이 너무나 공감이 간다면서, 후배는 울었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곱씹어보았다. 정작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의 눈은 메말라 있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울어서일까, 아니면 참아서일까. 나는 이제 울지 말아야 할 타이밍에 울고 울어야 할 타이밍에 멍하게 있는 뜬금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초면에 모든 것을 오픈하는 습관이 있다. 여기서 '모든 것'에는 정말 모든 것이 포함된다. 나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은 나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남의 비밀을 좋아하는 인간이란 종족답게 품위를 유지하며 나의 비밀을 듣는다. 내가 나의 모든 것을, 그것도 초면에, 쏟아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갈 사람은 가라는 뜻을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하겠으니 비밀을 쏟아내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갈 것이 아니라면 이왕 나의 비밀을 들은 김에 끝까지 남아 나와 오랜 시간 동안 우정을 유지하고 점점 시간이 갈수록 함께 늙어가면서 내가 들려준 비밀을 완벽히 잊어 내가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게 만들라는 뜻도 되겠다. 아예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비밀이라는 것을 왜 이야기하냐면 그것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서로 아무것도 모를 때 후드득 뱉어내는 비밀과는 달리 어느 정도 친해질 때까지 머금고 있던 비밀은 무게가 더 나간다. 툭 던진 비밀에 혼비백산하고 도망치는 이들이 참 많았던 것도 아마 그 무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러니까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나의 온갖 비밀을 털어놓는다. 나를 아는 이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두 가지의 반응으로 나뉠 수 있겠다. 나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는 자, 그러면서도 나의 글을 읽고 있는 자는 나와 막역한 사이일 것이다. 그때 내가 무슨 비밀을 이야기했는지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다. 비밀이라는 것은 살아가면서 숱하게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아직 나의 비밀을 모르는 자는 긴장해도 좋다. 언제 '사실은 말이야' 하며 비밀을 던질지 모를 일이니.


사실, 여태까지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나에겐 '비밀'이라 말할 것이 잘 없다. 나는 많은 이야기를 부담 없이 뱉는다. 뱉어내면서 끝까지 목에 걸려 나오지 않는 이야기만을 진짜 비밀로 인식한다. 그런 진짜 비밀은 내 마음 어딘가에서 먼지와 함께 잘 뒹굴고 있다. 사실 나의 이야기는 나만 알고 있을 때 제일 좋은 법이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참 멀미 나는 일이다. 나는 서슴없이 나에 관한 첫 비밀 유포자가 되면서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오는지 관람한다. 이래저래 흐르고 구른 이야기는 결코 본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법이 없다. 나는 누군가와 여름밤 어느 거리를 걸었을 뿐인데, 나중엔 걸어서 자연스럽게 모텔에 들어갔다더라, 하는 식이니. 그러므로 나는 기꺼이 나의 첫 비밀 유포자가 된다. 이야기의 시작점을 내가 앎으로써 안도하는 것이랄까. 아주 엉뚱한 곳에서 흘러나온 나의 이름은 나를 겁먹게 만들고 작게 만들기 충분하기에, 나는 그전에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이다.


어쨌든,


그러므로 나는 내가 힘든 것을 말했을 뿐인데 자연스레 타인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었다. 자연스레 내가 제일 싫어하는 힙하고 쿨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뱉는 비밀을 밟고 올라서 자신의 현재 삶에 돌아본다. 그랬구나, 하며 끄덕이는 고갯짓엔 비밀을 알게 된 것에 대한 흥분, 그것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자신에 관한 어떠한 안도가 들어있다. 나는 상대방의 고갯짓에 맞추어 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비밀에서 한 뼘 정도는 더 자란 나는 비밀을 말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 나는 가끔 비밀이라는 불행을 판다. 내가 불행했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몇 있다. 자신의 삶과 나를 비교하는 이들도 종종 보인다. 그래서 나는 항상 불행을 잘 챙겨 다닌다.


의도치 않게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나를 낮춘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낮은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