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만큼 살았다는 건 누가 정하나요

피할 수 없고 즐길 수도 없는

by 김단한

안나와의 전화는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요일을 알려주면, 안나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냐고 답을 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안나 : 늙응께, 시간 감각이 없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겠고. 날씨도 야리꾸리하고. 그러면서, 시간은 또 잘만 가고. 돌아서면 아침이고, 돌아서면 저녁이고. ……누가 내보고 뭐 하라 카는 것도 아닌데, 뭐 시키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할 것이 없으니 바쁘다는 느낌도 없는데, 고마 저녁이라. 주말이고.

지연 : 나도 시간 감각 사라졌어, 할머니. 나도 요일 모르고 살아. 나도 자주 깜빡깜빡해. 늙었나 봐.

안나 : ……인쟈 니가 몇 살이고?

지연 : 서른셋.

안나 : 하이고야. 애기다, 애기! 쬐까난 것이 내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다!


우리는 한바탕 웃는다. 나는 안나의 웃음소리를 따라 웃는다. 우리의 대화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좁다. 오늘 했던 일, 있었던 일, 갑자기 생각난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다. 안나와 나는 집 밖을 나서지 않는 사람들이라 늘, 매번 하는 것, 갑자기 생각난 것의 패턴이 비슷하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제일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건강이다. 건강을 지켜야 한다고, 무조건 건강해야 한다고, 그래야 뭐든 한다고. 돈도 필요 없다고. 건강이 없으면 돈이 무슨 소용이냐고. 안나는 요즘 들어 부쩍 건강에 관한 말을 많이 한다.


안나 : 어디 내만 안 죽을 수 있나. 사람들은 다 죽는다. 나도 사람이니, 죽는 거다.

지연 : 안 죽을 순 없지. 그래도, 오래 살아야 해. 오래 살려는 생각은 갖고 있어야 해…… 알았지, 할머니?


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무엇이니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무엇이니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되도록이면 조금 더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나는 안나와 전화를 하면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그러면, 안나는 말한다. 그럼, 그럼. 내가 니 때문이라도 오래 살아야지. 그럼 나는 별안간 무거워진다. 안나가 조금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존재가 된 것이 기쁘면서도 슬퍼서 그렇다.


안나는 나의 할머니다. 안나는 할머니의 세례명이다. 안나는 오랜 시간 성당을 다녔지만, 지금은 거동이 불편해져 사는 곳 가까이에 성당이 새로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안나는 여든셋이다. 안나는 누구보다 씩씩하지만, 은근히 겁이 많다. 안나는 손녀와 두 시간씩 전화를 할 만큼 수다쟁이며, 도롯도(트로트)를 좋아한다. 안나는 청소와 음식을 잘한다. 안나는 얼마 전에야 겨우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안나는 전적으로 나의 편이며, 나도 안나의 편이다.


안나는 얼마 전 주치의로부터 빠르면 2개월 늦으면 6개월이란 삶의 마지막 안내장을 받았다. 안나는 배에 복수가 차올라 쉽게 숨이 차고, 힘들어한다. 안나는 자주 마른기침을 한다. 안나는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줄곧 '씩씩하게 살아라'는 말을 건넨다. 안나는 빠르게 말라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나와 오랫동안 통화를 한다. 오후 여덟 시 반. 안나는 병원에서 저녁을 먹고, 나는 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인 그 애매한 시간을 우리는 수다로 채운다. 오늘도 같은 말을 한다. 재미없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실없이 웃는다. 건강을 당부한다. 서로 먹는 약을 걱정한다.


전화를 끊고 나면 나는 고요해진다. 숨어있던 생각들이 몰아쳐 잠시 일시정지의 상태가 된다. 시간 맞춰 약을 복용하는 것처럼 안나의 전화가 걸려오는 시간은 늘 같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 더 이상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건, 그런 날이 올 것을 안다는 것과 같다. 그럼, 나에게 여덟 시 반은 정말이지, 더더욱 애매한 시간이 되리라. 어떤 날은 그 시간이 너무 공허하게 느껴져 왕왕 울지 않을까. 어떤 날은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어 그냥 지나칠지도 모른다. 또 어떤 날은, 하늘에서 수화기가 내려오는 상상이나 하늘 전화국에 전화를 걸어 '안나 할머니 좀 바꿔주세요, 아, 뛰어노시느라 바쁘신가요? 알겠습니다, 전화 왔었다고 전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상상을 하며 억지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안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척한다. 나는 안나가 나에게 자꾸만 유언 같은 말을 남기는 것이 싫다. 나는 안나가 자꾸만 나에게 열심히 살라고, 분명 너는 성공할 것이라고, 씩씩하니까 뭐든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싫다. 나는 안나가 자꾸만 자신은 이제 살 만큼 살았다고 말하는 것이 싫다. 그냥 하는 말일 텐데도 안나가 하는 모든 말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나도 싫다. 살 만큼 살았다는 건 대체 뭘까. 살 만큼 살았다는 건 누가 정하는 것일까. 나는 안나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지연 :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가 성공하는 것까지는 봐야지.

안나 : 그래, 그건 봐야지.

지연 : 내가 성공하면 제일 먼저 할머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드리고, 호강시켜드릴 건데. 그거 누려야지!

안나 : 그래, 니 성공할 때까지만 살아야지. 그거 보고 죽어야지.

지연 : 내 성공할 때까지만 산다고? 그럼 성공 안 해야겠다.

안나 : 뭐시?

지연 : 성공 안 한다고! 성공할 때까지만 산다며! 그럼 성공 안 해!


내가 부리는 억지는 죽음을 늦추는 것에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끊임없이 소리치고 싶다. 뜬금없는 발악에 다가오는 죽음이 깜짝 놀라 주춤거릴 수 있도록. 그렇지만, 절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또 금세 의기소침해진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멍해진다.


나는 죽음이 싫고, 안나는 죽음과 친한 것처럼 행동한다. 나는 이제 막 새로 전학 온 친구와 내 오랜 단짝이 나를 빼놓고 둘이서만 노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고, 그저 내 오랜 단짝을 지키고 싶다. 내 오랜 단짝이 그와 친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다. 그게 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내게 관심이 없다. 아직까지는. 그의 관심은 오로지 내 단짝에게 있다. 그렇다면. 그럴 거라면. 나는 아무쪼록, 그가 나의 오랜 단짝을 힘들게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나의 단짝을 편하게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묵묵히 둘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안나와의 심심한 대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적어보기로 했다. 이건 나의 일기이기도 하고, 글씨를 쓰지 못하는 안나를 대신해 쓰는 안나와의 러브장이기도 하다.


대게 일기가 그렇듯,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완전히 개인적이지는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KakaoTalk_20211010_201709672_02.jpg 안나의 집, 안나는 외할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모든 것과 더불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