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않씀
꿈에서 뭔가 잘못을 했다. 꿈에서 쫓겨나 황급히 현실로 돌아왔다. 한동안 멍했지만, 그 찰나에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대체 어떤 잘못을 했길래 현실로 내쫓겼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잘못을 했다는 것 자체도 잊었다. 그래서 찝찝한 기분만 온종일 안고 살았다. 왜 찝찝한지 모르겠어서 찝찝했다. 왜 찝찝한지 몰라서 종일 이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잘못 같았고, 벌 같았다.
나는 나에게 홀로 벌을 주고 있었다. 나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앞에 두고, 그것을 모두 풀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학생이기도 했고, 반대로 집에 절대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문제를 낸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평소에도 죽음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나의 죽음이 아니라, 남의 죽음에 관해. 그것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은 나를 자체적으로 힘들게 만들기 충분하다. 나는 주로 내가 아닌 남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남은 나에 대한 두려움이 저절로 따라왔다. 그가 사라지면 나는 어쩌지, 그녀가 사라지면 나는 어쩌지. 이제 다시는, 정말 다시는 볼 수 없을 텐데. 그 그리움을 어떡하나. 그 그리움을 대체 어떡하나. 우리는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나.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머리가 멍할 정도로 눈물을 쏟은 날이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어둠을 무서워하면서도 어두운 곳에서만 울었다. 어두운 곳에선 아무도 내가 우는 것을 모르지만, 나는 내가 우는 것을 아주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의외로 울음은 빨리 끝난다. 엉엉 소리 내어 울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울음은 금방 그친다. 민망할 정도로 빨리 그치는 날도 있다. 울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울어야겠다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그것을 행하는 일에는 그리 많은 품이 들지 않는다.
2020년 2월에 외할버지가 돌아가셨다. 가까운 가족의 장례는 처음이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장례식장엔 우리 가족밖에 없었고, 우린 외할아버지의 영정을 앞에 둔 채 지나간 추억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눴다. 추억을 곱씹으며 파생되는 웃음과 울음이 정확히 5:5였던 장례식.
모든 것을 끝내고 난 이후에도 뜬금없이 눈물이 나곤 했다. 모든 것엔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전화번호부를 정리하다가 보인 외할아버지의 번호에 책상에 엎어져 울었다. 다시는 전화를 걸 수 없는 번호여서. 외할아버지란 단어만 봐도 울었다. 더 이상 외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것이 참 슬프고, 외롭고, 무섭고 그랬다.
죽음과 관련된 것은 어렵다. 그리고 이기적이다. 받아들이는 것, 피할 수 없는 것,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것, 의연해야 하는 것……. 나는 언제까지고 이 모든 것을 어려워할 것이고, 이 모든 것에 있어선 한없이 이기적일 것이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고 해서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렵기도 하다. 아는 슬픔이라 더 그렇다. 내가 얼마나 힘들지를 알기 때문에 그렇다. 아니, 어쩌면 정말 모르겠어서 두렵다. 죽음을 동반한 슬픔은 갖가지의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어찌 해도 슬픈 건 당연하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 빠진 기분에 비유할 수 있을까. 분명히 발 끝에 겨우 닿는 돌 하나가 있었던 것 같은데, 없는 기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안다. 우리는 죽음을 알지만 모른다. 죽음이 들어간 단어나 문장과 생각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오로지 죽음만이 명확하다.
나는 죽음이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그냥 슬픔만 줬으면 좋겠다. 슬픔과 더불어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아드는 각종 죄책감과 분노와 후회와 남은 사랑과 어찌할 바 모르겠는 그 감정들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니 벌써부터 두렵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 한다. 올라타 있는 기차에서 몸을 뒤로 젖힌다고 해서 기차가 뒤로 가는 것은 아니니까. 결코 익숙해질 수 없고, 잊을 수도 없겠지만, 딱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내가 슬퍼할 수 있을 만큼 슬프기, 내가 아파할 수 있을 만큼 아프기,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견디기. 슬픔의 범위는 날이 갈수록 조금씩 넓어질 것이고, 그만큼 마음을 아물게 하는 힘의 범위도 넓어질 것이다. 마음의 재생력. 나는 그 마음의 재생력을 믿는다. 믿어야지.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엔 그가 쓴 일기만이 남았다. 일기가 쓰여 있지 않은 날엔 '잊고 않씀'이라는 글씨가 시원스럽게 적혀 있다. 잊어버리고 쓰지 않음. 잊어버림. 나는 줄곧 무언가를 잊는다는 행위를 굉장히 죄스럽게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무언가를 잊는 것보다 잊지 않으려 아등바등 쥐고 있던 나날들이 많았다. 안나가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는 더더욱 그랬다. 잊으면 안 돼, 모든 것을 잊으면 안 돼. 잊지 마. 기억해.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나의 이런 행동이 안나를 더 서글프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결코 괜찮아질 수 없겠지만, 괜찮아지기 위해 노력해보는 것으로. 결코 잊을 수 없겠지만, 잊더라도 자책하지 않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만. 잊게 되더라도 자책하지 말기. 가끔은 잊고 안 쓰는 것으로, 내 마음 내가 달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