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또 만나
원데이 클래스를 예약한 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일찍 일어나 화실에 갔다. 나의 첫 민화 그림은 모란도였다. 모란은 크고 색이 화려한 꽃이며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라 한다. 화실 벽에는 붉은색 계열의 모란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째서인 나는 예전부터 따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은 특이해 보이는 파랑을 골랐다. 푸른 계열은 연한 하늘빛의 벽지와 회색빛 침구가 있는 내 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라 생각했다. 크기는 두 손바닥만 한 모란 한 송이였는데 세 시간을 꼬박 걸려서 겨우 완성했다. 한송이의 모란을 보니 감히 모란도라 하기에도 민망한 아주 귀여운 그림이었다.
세 시간 동안 민화의 매력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느낀 민화의 매력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민화는 그릴 때 한 겹으로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얇은 종이 위에 여러 겹 얇게 색을 올려 완성한다. 과정에서는 실수한 것 같아 보이고 이렇게 하는 게 잘 되는 건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한번 두 번 색을 겹겹이 올릴 때마다 처음과 조금씩 달라진다. 점점 더 선명해지고 점점 더 입체감이 생겨 자연스러워진다. 결과물은 깔끔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과정은 아니었다. 마치 엉망진창 실수투성이인 내 삶같이 느껴졌다. 나도 겹겹이 잘 살아가고 있는게 맞겠지? 결국은 완성되겠지?
또 민화에는 '느림'이 있다. 마르고 덧칠하고 마르고 덧칠하고. 색 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채워 넣는 그림이었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 그리는 것만으로도 힐링되는 기분이 들었다.
원데이 수업 후 나는 한 달 등록을 했다. 나의 어린 시절 좋은 것 아픈 것이 뒤엉켜 너무나도 떠나고 싶었던 정든 동네. 그림을 시작하기로 한 날부터 새롭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