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되지 않는 말은 담아두지 말자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은 있니?"
그림 그리는 걸 알게 된 아빠가 한 말이다. 엄마는 칭찬은 해주셨지만 공무원이나 되라는 마음을 내비쳤다.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호응은 없었다. 두 분이 원하던 딸의 모습은 아니니까 이상할 것도 없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나를 이 세상에 만들어준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해주니 그림으로 대성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자신감은 지하 끝까지 내려갔다.
공모전에서 처음 상을 받았을 때 아빠가 한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내기만 하면 다 받는 상이 아니냐는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1차 심사, 2차 심사, 발표의 날을 가슴조리며 기다렸던 시간들이 쓸모없이 느껴졌다. 그림을 그렸던 몇 달간의 나의 노력까지도 말이다. 섭섭한 감정이 흐려졌을 때쯤 이런 생각을 했다. 정말 이건 돈 내고 응시만 하면 받을 수 있는 상일까. 누군가가 나와 똑같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그림을 그린다 하더라도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니다. 1년에 단 한 번밖에 열리지 않는 공모전이며 심사는 공정함을 기본으로 이뤄진다. 해보지도 않은 사람은 이 치열한 과정을 모른다. 그런 말도 그런 생각도 할 수는 있다.
직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을 들은 적 있다. 우연히 말하게 된 나의 고상한 취미를 앞에 두고 남자는 안 만나고 그림을 그려서 문제라는 말까지 들은 적 있다. 이런 이상한 말을 들어가면서까지도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뭘까.
30대 중반의 여자가 혼자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에서 정해준 취업, 결혼, 출산이라는 미션을 시원하게 클리어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여성에게는 더더욱 어렵다. 부모님과의 대화는 늘 나를 죄책감 속에 있게 만들었다. 남들은 다 하는 것들은 나만 못하고 있으니 참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해낼 수 있는 미션도 아니다. 해낸다면 보통인 것이고 하지 못한다면 나를 사랑하기는커녕 미워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미션. 나 자신을 끝없이 원망하게 됐다. 바꿀 수 없는 과거와 너무 먼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그때 날 현재로 데려와 준 게 그림이다.
그림에 몰입하는 순간만큼은 현실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 미래에 대한 염려를 할 여유가 없다. 오직 그림에만 집중해야 겨우 원하는 결과물이 나온다. 나를 현실에 꽉 붙잡아둔다. 그토록 좋아했던 여행을 가지 않아도 됐던 건 이런 부분이 닮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여행지에서도 그 순간, 현실에만 집중해야 하니까. 그곳을 온몸으로 즐기려 노력하다 보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고민들이 사라진다.
현재를 바라보게 되자 감사한 것들을 많이 발견했다. 그래도 부모님이 건강하고 자주 볼 수 있다는 것, 화실에 다닐 수 있는 차가 있다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 매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 캄캄하고 매연이 자욱해 숨쉬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던 내 삶을 환기시켜 준 게 그림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열심히 살아온 멋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좋아하는 걸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좋은 말만 듣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소중하든 그렇지 않든 무시하고 끝까지 해나가자. 좋아하는 것을 했을 때 받는 기쁨으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고 가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