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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인 Aug 15. 2023

글로 배운 민화

메시지를 명랑하게 표현한 그림

책을 통해 화실을 알아보게 됐고 붓을 들 수 있었다. 책은 나에게 결코 적지 않은 영향력을 주는 스승이자 친구이다. 수업이 없는 주에는 민화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오랜만에 동네에 있는 도서관을 찾았다. 다행히 읽고 싶었던 책인 정병모 교수님의 '민화는 민화다'라는 책을 만날 수 있어 기뻤다. 책과 태블릿 PC를 챙겨 들고 근처 나의 단골 카페로 갔다. 결론은 민화를 시작하고 싶다면 이 책은 필독서다.


책을 몇 장 읽으며 민화를 그리면서 내 감정이 밝아진 이유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민화 자체가 밝고 명랑한 그림이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구석 하나 없는 그림을 그리니 우울감이 줄고 희망이 싹트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잠깐이나마 했던 기자생활. 비판적으로 꼬집어 내는 습관을 갖게 됐다. 늘 고민하고 생각하는 내가 밝고 단순한 친구 옆에 있는 것을 좋아하듯 앞으론 밝은 그림들과 오래 함께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민화가 담아내는 밝음은 가벼운 재미가 아니다. 임금을 상징하는 호랑이도 바보 호랑이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힘든 현실 가운데서도 평등의 소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자유롭게 그려낸 그림들은 처음엔 재미를, 알고 나면 뭉클한  감동이 있다. 그야말로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라 공감이 없을 수 없다. 해석을 읽어도 두 번 세 번 다시 생각하며 소화시켜야 하는 현대미술보다 세련됨은 부족하지만 사람 냄새 많이 나는 민화가 더 좋아졌다.      


책을 통해 알게 된 민화의 매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가 가장 와닿았던 민화의 매력은 앞서 말한 평등하고자 한 마음을 담아내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마음을 담아낸 것이다. 절대 촌스럽거나 낮은 차원의 생각이 아니다. 장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금까지도 가장 큰 소망이 아닐까. 백수백복도는 오래 삶 수(壽)와 복 복(福)을 반복적으로 그려 문자 그대로 많은 복을 받으며 오래 살라는 뜻을 담은 그림이다. 세화 십장생도도 있다. 선조들은 장수를 상징하는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나무, 영지, 거북, 학, 사슴을 그린 그림을 정월 초하루에 선물했다. 장수라는 본능을 그림을 통해 고상하고 아름답게 빌어주며 살아온 선조들이 참 멋이 있는 사람들이라 느꼈다.       


그리고 이 시대에도 앞서 나간 여성들이 존재했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남자아이 낳기만을 바라던 그 시대에 그저 아이를 낳는 도구에 불과한 삶을 살았을 여성들이 많았을 것이다. 자신의 꿈을 찾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 시대에도 항상 여자는 사람이었다. 남자와 같은 사람. 조선시대에서 서재는 남성들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여성의 서재를 그린 그림이 있었다. 여성적인 기물이 가득한 한 책거리 그림에서 페미니즘을 엿볼 수 있었다. 장도가 수박을 관통하고 있는 부분에서였다. 수박의 잘라진 면 위에 보이는 씨들은 다남자(多男子)를 상징한다. 그런데 그 수박에 칼을 꽂았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여성이 남자아이를 낳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는 의견을 달았다.    

  

민화에 대해 몰랐을 때는 단지 옛날 그림이고 꽃이나 용이 나오는 그런 그림들만 떠올렸다. 모란도 작약도, 매화도 연꽃도 모두 의미가 있고 이 그림들은 모두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메시지를 알고 나면 그림을 그릴 때, 그림을 걸 때, 그림을 줄 때, 그림을 받을 때의 기분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민화를 만나게 된 것에 감사했다. 어릴 때 미술을 잘하는 친구 못하는 친구는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려내는가를 기준으로 나뉘었다. 대부분 미술시간에는 풍경화, 정물화와 같은 수업이고 그 그림들로 점수가 매겨졌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미술관에 다니다 보면 사실적인 것은 잘 볼 수 없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작가가 표현한 것을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잘 전달되는 것. 나는 그 표현력의 크기가 실력이라 생각한다. 궁에서 쓰는 그림은 털끝 하나까지도 그려내는 사실주의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민화는 입체감이 덜 해도 사실감이 덜 해도 작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얼마나 재밌게 표현할까 가 중요한 그림이다. 지금도 민화가 사랑받는 이유 중엔 표현력도 있지 않을까?     


입시 미술을 준비해서 대학에서 몇 년간 공부를 해야 시작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라서 나는 민화는 민화스럽다고 표현하고 싶다. 입문할 수 있는 과정이 비교적 쉽다. 예전에도 그러하듯 지금에도 민화는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그림이다. 나 같이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도 말이다. 자격증을 따고 공모전에도 도전하고 아트페어에서 그림 판매도 해볼 수 있다. 고민하고 있다면 그냥 가볍게 도전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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