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 본 적 없는 나는 결혼이 좋으면서도 하기 싫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주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니. 엄마 잔소리에 일어나 점심밥을 먹고 아빠의 우스갯소리에 눈 흘기며 일일드라마를 보던, 휴식 같던 저녁시간이 없어지다니. 특히 분신과도 같은 여동생들과 이젠 한방에서 잘 수 없다니, 이런 비극이 있을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 신부는 고요한 공항버스 안에서 창 밖만 바라보다가 어느새 맺힌 눈물은 마르지 못하고 그대로 자꾸만 넘쳐버렸다. 비상이다. 인천공항에서 청주로 가는 길은 가족의 이별여행 같았다. 안절부절못하는 신랑은 내내 아무 말하지 않았고 공감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야 울지 마. 우리 잘 살면 돼, 내가 더 잘할게'
이 말이 작은따옴표인 이유는 실제로 내뱉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이렇게 말해줬더라면, 눈물은 천안쯤에서 그쳤을지도 몰라. 마음이 힘든 신부를 다독이는 말 한마디면 되었지만 공감이라는 건 로봇 청소기를 돌리거나 쓰레기 분리수거처럼 방법을 알려줘서 배울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위로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옆자리에서 아무 말 않던 신랑은 끝내 싸움을 걸어왔다. "아니, 뭐가 문젠데. 곧 도착인데 어떡하자는 거야" 시간을 뒤로 돌리고 싶게 한 그 한마디 때문에 슬펐던 마음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막막했다.
감기 걸린 것보다 너의 무심함이 더 아프다.
감기는 지독하다. 그의 무심함을 잊었다가도 연례행사인 감기를 앓을 때면 다시금 깨우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어쩌다 몸에 이상 징후가 생겼을 때 "여보, 나 어제부터 겨드랑이 쪽이 싸하게 아픈데 왜 그러지?"라고 하면 "그래?" 뒤에 더 이상 어느 문장도 붙지 않는다. 어차피 네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는 있어. 그런데 작은 일이어도 같이 고민하고 싶은 마음을 왜 모르는 거니. '야 이 멍청이야, 너 잊었니?'라고 과거의 내가 핀잔을 준다. 괜히 엄마가 보고 싶어 전화를 했다. 엄마는 다른 증상도 물으며 유방초음파 잘 보는 병원으로 검진해 봐라 한마디 했을 뿐인데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보이지 않아도 엄마는 하던 일을 멈췄을 것이고 미간이 움직였을 것이다. 아무래도 남편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나에게 무심했던 사람이 위로를 구할 때 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남편이 아프다. 낮잠을 실컷 자고 일어났는데 아이들이 아빠가 아프단다. 감기 한번 안 걸렸던 그가 땀이 뻘뻘 나고 열은 38도가 넘는다. 아이가 남편방에 들어가 아빠의 안부를 묻는데 어제저녁부터 몸이 안 좋았다며 땀이 많이 나는 걸 보니 열이 내려갈 것 같지만 목은 계속 아프다고. 아이한테 말하는 건지 나 들으라고 하는 건지 말이 길다. 남편방에 들어가 "병원 가봐, 이불 빨아야겠네" 두 마디만 던지고 스타일러에 있는 코트를 꺼내는 것 말고는 다른 볼일이 없는 사람처럼 코트를 갖고 방에서 나왔다. 마침 밥솥이 돌아서 불을 꺼야 했기 때문에 서운하다고 하면 '그건 너의 오해야'라고 이유는 댈 수 있었다.
'언제부터 아팠어. 오래 자서 배고플 텐데 병원 갈 힘은 있는 거야? 일단 집에 있는 해열제라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고 보니 혹시 독감 아니야?'라고 마음은 움직이지만 내뱉지 않았다. 복수할꺼다.
점심도 거른 채 해는 넘어가고, 저녁시간이 되자 남편은 까칠한 얼굴로 주방에 나와 냉장고문을 열고 한참을 서있다가 내가 어떤 반응도 없자 혼잣말을 해본다. '어지러워..아퍼..'
그날 치사한 사람이 되길 잘했다. 왜냐하면 그 뒤로 나는 그의 무심함을 느낀 날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방광염 처방받은 약
방광염은 스트레스받으면 생긴다면서요?
작년 한 해, 일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고 있을 때 묵묵히 제할 일 하던 몸은 버티질 못하고 이상이 왔다. 야근하던 날이었다. 분홍색 소변과 잔뇨감으로 검색을 하니 맘카페 회원들의 진단명은 방광염. 맛집정보를 검색하거나 아플 때만 찾는 맘카페지만 겪은 바로는 동네 돌팔이 의사보다 정확하다. 방광염은 즉시 항생제를 맞아야 하기 때문에 응급실이라도 가야 한다고 했다. 참기 힘들 정도로 아프거나 불편하지는 않아 운전은 할 수 있었고 응급실이 있는 50분 거리의 큰 병원으로 출발했다. 야근하다가 이게 뭔 일. 남편에게 전화했다. 혈뇨가 나온다며 청주 성모병원 응급실이라도 가야겠다고 말하니 운동가는 길에 전화를 받은 남편은 잘 다녀오라고 했다.
여기서 좀 이상하지 않은가? 잘 다녀오라니요. 이쯤 되면 내 탓인가 싶기도 한데. 너무 별일 아닌 듯 덤덤하게 말했나. (나 지금 뭐 하는 거야, 셀프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네)
밤 9시, 병원에 도착해서 항생제를 맞고 소변검사를 받은 후 10시가 넘어 집으로 가는 길, 화가 났다. 생전 처음 걸려본 방광염으로 생전 처음 남자간호사에게 엉덩이 주사를 맞은 게 분해서. 가는 길에 울리는 남편의 전화벨소리가 미워서. 아픈데 늦은 밤 혼자 운전해서 응급실 다녀오는 여자가 불쌍해서.
이 일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지만 후에 어떤 일의 다툼이 있고 다시 재판에 넘겨졌는데(다른 일로 싸우면서 이 일을 끄집어냈다.) 그때 너의 무심한 죄를 밤새도록 물었지만 답은 나에게 있음을 이젠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