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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들 Nov 21. 2023

똥이나 먹어

내남자를 화나게 한 이유


@pixabay


 


 남편에게는 친한 중학교 친구가 둘 있다. 셋의 우정은 대학교시절 사진 속에서도 진하게 묻어난다. 장소만 바뀌고 포즈는 그대로인 사진 속 남자들은 청자켓에 청바지를 입었거나, 카고바지에 밀리터리 모자를 쓰고 있고, 동대문 밀리오레 마네킹 옷을 그대로 물려 입고는 앳된 얼굴로 청춘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는 중이다. 그들은 셋이었다가 여섯이었다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다섯이 되거나 다시 셋이 되면 관계는 더 각별해졌다. 그러던 중 '우리 오빠'는 마지막 일 것 같은 여자를 만나 가장 먼저 결혼을 했다.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만나 서로의 바뀐 여자친구를 소개해주었는데 그땐 마치 면접관이 된 느낌도 들었었다.

 



 남편은 소주 세 잔에도 취기를 빌려 고백할 수 있는 타고난 가성비 좋은 몸을 지녔다. 결혼 후 세 친구가 처음 모인 날은 3차 즈음에서 벌게진 얼굴과 몸을 괴로워하며 여친 무릎에 누워 노래방 소파 위에 잠들었다. 알코올 가성비 좋은 남편은 이렇게 잠든 적이 물론 처음은 아니다.

 

 결혼한 남자가 미혼남들이랑 노는 게 불안해서였을까, 모이는 장소가 항상 친정집 근처라서였을까, 진심과 명분사이를 오가며 나름의 이유로 2~3차 사이에 짠 하고 반갑게 등장하기도 했는데 그들은 습격이라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몇 년 동안 셋의 자리에 끼어 정든와중에도 나만 느끼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셋의 관계가 1:1:1이 아닌 느낌. 남자들 세계에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술한잔 못하는 사람에게 친구끼리 왜 술은 강제로 먹이는지, 항상 '우리오빠'가 져주는 기분을 그냥 지나치기엔 이 남자를 과잉보호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혼식 사회까지 봐준 고마운 오빠들인데 그들의 우정을 과소평가한걸까. 만날때마다 느꼈던 마음이 그날은 확신으로 다가왔고 점점 불편하다.

 

 와다다다다다다 맨발의 청준,  솔리드의 천생연분, 015B의 이젠안녕을 듣고 난 뒤에야 무릎 위에 잠든 내남자를 깨울 수 있었다. 매번 제정신으로 마무리를 못하는 내남자를 일으켜 세우고 빨간불이 꺼진 볼을 툭툭 건드려 깨운다. 감정이 실렸다. 약한 남자 때문에 속상한 여자는 남자의 팔짱(아니고 부축)을 끼고 걷다가 깜박이는 초록불에 팔짱을 더 꽉 끼고 횡단보도를 빠르게 걸었다. 목줄 한 강아지처럼  남자는 단단히 고정된 팔에 매달려 여자와 결승선을 통과했다.

 

- 왜 항상 맞춰주는 거야? 친구들끼리 무슨 술을 그렇게 억지로 먹여!

- 내가 뭘.. 몇잔은 은버렸어 괜찮아

- 요즘 누가 술을 버려. 먹기 싫으면 안받으면 되잖아! 그리고, 다큰 성인들끼리 왜 오빠만 놀리는데? 받아주는 것도 한두번이지 그게 재밌어?

- 그냥 장난치는 거지 뭐

- 장난도 선을 넘으면 안되는거잖아..

- .......

- 그럴 거면 그 사람들 똥이나 먹어



 똥이나 먹으라니 무슨 외계어인가. 어느 나라 속담인가. 어떻게 먹는 건가. 이 말이 왜 나왔을까.


 남편은 찬바람에 술이 깬 건지 차디찬 말본새에 술이 깬 건지 곧 취기가 싹 없어진 얼굴로 돌아왔고 꽉 붙잡은 팔짱은 어느새 풀려있었다. 뱉은 말이 남편의 마음을 긁었을까 불안했다. 화가나서 팔짱이 풀린것 같긴한데 그 뒤로 대화를 안하고 각자 잠들었기때문에 그 날 얼만큼 화가 났었는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에 대한 걱정은 다음날까지도 이어졌다.



@pixabay

  


 <똥이나 먹어>를 시전 한 이유는 내 몸에 밴 말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남편에게 튀어나온 이 외계어는 엄마가 자주 쓰던 말이었다. 이 무시무시한 말은 '말 안 듣는 딸'과 '공부 잘하는 내 친구' 종임이랑 비교할 때 쓰거나(그러나 타격 없음) 화가 많이 났을 때 쓰셨는데, 그럴 때마다 난데없이 갑자기 똥을 먹게 됐다. 아, 대학교 때 술 먹고 늦게 들어오면 혼날까 봐 선배들 핑계를 댔었는데 아마 그때에도 똥이나 먹으라는 조언을 하셨던 것 같다. 듣기만 했지 내뱉어 본 적 없는 말이었는데 딸이 대물림받아 안타깝게도 이제 우리 사위에게까지 전달됐다. 다행히 엄마의 사위는 말 자체에 화가 났을 뿐 자존심을 다치진 않은 것 같다.고 죄인이 말하지만 미안한 맘은 아직도 갖고있다. 아무 일 없이 넘어가준 남편에게 고맙고 이럴땐 결혼을 잘했구나 생각이 든다.(정말?)




 결혼하고 직장 근처로 집을 옮기면서 13년 동안 셋이 만날 기회는 줄었고 밥 한번 먹자는 안부전화만 근근히 하는듯 했는데 작년 이사한 뒤로 다시 거리가 가까워진 셋은 13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잘 지낸다. 내가 과했던 게 맞았다. 그들만의 시간이 있었고 서사가 있고 이유가 있는 거였는데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았다. 사랑해서 그랬다.라고 마지막 변명을 해본다.

 

그리고 사랑하는 강아지들에게는 결코 내뱉지 않을거란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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