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 죽겠다. 힘들고 아픈데 알아주는 이 없어서 서럽고 외롭다. 아픈데 아프지 않아 보이고 힘든데 힘들지 않아 보이는 건 내 탓이려나 남 탓이려나.
포커페이스를 가진 얼굴이 병원에서도 통하는구나.첫 아이 출산을 앞둔 임신 39주 5일 차, 맘카페 출산후기로 간접 출산을 수십 번 경험하고 내 차례가 왔다. 허리가 싸하게 아파오는데 노트에 진통시간을 체크해 보니 간격은 15분. 의느님께서 5분~10분 간격일 때 오라고 했으니 더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15분에 한 번씩 산을 넘었다. 그동안 공부한 바로 순산한 산모는 아기 낳기 전에 삼겹살을 먹었다던데? 순산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미리 사놓은 삼겹살 한 근을 풀어 프라이팬에 올리고 다른 반찬 없이 흰쌀밥에 고기만 얹어 미각의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맛있어서 죽을 것 같은. 아니 진짜 죽을 것 같은 아픔을 동시에 경험했다.15분 사이 진통이 왔다가는 동안, 상추쌈을 욱여넣다가 짐승이 되었다가를 반복했다. 이틀째인데 병원 가봐야 하지 않겠냐며 출산선배인 엄마에게 물었지만 엄마의 대답은 짧았다. '풉'. 아플 때 안 아파 보이는 얼굴은 인생을 억울하게 만든다.
여전히 15분 간격이지만 이슬 비친 지 이틀째라 빨리 낳고 싶단 마음으로 병원문을 열었다. 진통 오는 순간에는 호흡을 깊게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고통이 힘들었지만 나머지 14분 45초는 정상인의 얼굴이었기 때문에 진통으로 왔다고 접수하는 와중에도 간호사는 지금도 아프냐, 얼마나 아프냐고 되물었다. '얼마냐 아프긴! 저 출산하러 온거에요' 엄살 환자가 무사히 접수를 하고 소파에 앉아 대기하는데 간호사가 담당의사와 통화를 한다. 다른 말은 잘 들리지 않았고 '산모님은 괜찮아 보여요'라는 말이 명확히 들렸다. 이런. 나 아프다고!!
시든 꽃에 물을 주다.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를 보면서 70~80% 진행되었다는 말에 버텨준 몸과 정신이 잠깐 자랑스러웠다.
'세상사람들아, 봐라 나 아픈 거 맞잖아'라고 소리 없이 외쳤지만 아무도 답이 없고 배에 올려둔 태동검사기만 반응이 온다. 병원 온 지 한 시간 만에 분만실을 가다니. 임산부가 되어 맘스홀릭 카페에 살면서 내가 도움받은 것처럼 나의 출산후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걸 확신했다. 굴욕의 분만준비를(제모와 관장) 일사천리로 끝내고 분만실에 누워 기승전결의 '전' 과정을 기다리는 임산부는 이제 무통주사만 맞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때 간호사가 후광을 비추며 들어온다.
- 무통주사 이제 맞는건가여?
- 지금요? 아기 거의 내려와서 지금은 안 돼요 산모님~
아 이게 아닌데. 무통주사를 못 맞다니! 맥박이 더 빠르게 뛰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자궁문이 70% 이상 열리면 무통주사는 맞을 수 없는데 수많은 후기를 읽었으면서 왜 맞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을까. 고통을 반으로 줄이고 싶지만 기차는 떠났고 내가 혼자 넘어야 한다 이 큰 산을. 이미 많이 지쳐서 일어날 수 없는데 그렇다고 좌절할 시간도 없다.
물을 주고 살아난 꽃
무의식이 지배한 정신으로 일어나겠다는 의지도 없이 시키는대로 호흡을 했고 내 힘이었는지 다른 힘이었는지 모르겠는 아비규환 속에서 마침내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마침내 라는 말이 왜이렇게 좋지) 그리고 내 몸은 본능적으로 극복되었다.
'과거의 나' 중에서 고통을 잘 이겨낸 '우수 극복사례'로 출산의 고통을 회상했고 지금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과거의 나를 불러들였다. 고통의 정도를 상대적인 시간으로 따진다면 '수월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어렵고 고된 순간을 지나지 않고서야 수월했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뭘까하고 생각해 보았는데, 지금을 이겨내려고 과거를 빌려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취경험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이겨본 경험으로 또 이길 수 있을 거란 기대와 의지를 갖고 싶다.
무통주사 없이 내 마음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나를 잘 관찰해야겠다.
p.s 힘들어도 얼굴에 표시가 안나는 건 내 탓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아픈 얼굴을 상대가 먼저 알아주길 바라지말고 도와달라고 먼저 말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