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들 Dec 13. 2023

부러우면 휴직하든가

휴직 없이 달려온 14년 차 워킹맘의 계획


 아침 7시, 모닝콜이 고요한 아침을 깨우지만 음악이 나른하니 눈 뜨기가 싫다. 잔잔한 멜로디가 왼쪽귀를 지나 오른쪽 귀로 빠져나가는 동안 닫힌 눈은 절대 열어줄 생각이 없고 오늘도 알람 시계의 약속을 깨버렸다. 10분 뒤 또 알람이 울리지만 오늘의 근로자는 잠의 빚을 갚느라 바쁘다. 더 자야 한다. 열심히 일하기 위해.

 어젯밤 우리 같은 시간에 잠들었을 텐데 항상 먼저 일어나 나를 깨우는구나. 부지런한 기계 같으니라고.

 

 계란을 삶는 동안 양치하고 세수하고 옷까지 갈아입으면 10분 동안 출근준비는 끝. 삶은 계란을 식히고 사과한개를 반으로 잘라 아들에게 주고 하나는 내가 물고 딸은 셀프선식으로 아침을 때운다. 7시 40분이다. 엘베가 올라오는 동안 아이들에게 오늘의 당부를 늘어놓는다. '한겨울에 패딩 꼭 입고 등교하기, 학교 갈 때 실내화 신지 말고 운동화 신기, 세수 꼭 하고 로션 바르기, 밥 먹고 양치하기'가 그것인데 마땅히 해야 할 것이지만 아들은 도대체 하기 힘든 일이라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딸에게는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다.

 어쨌든 지켜질지 말지 모를 공지사항을 던져놓고 엄마는 거실에서 허겁지겁 사라진다.


 늦게 나온 날은 게으른 죗값을 치루라는 건지 엘리베이터가 느릿느릿 층마다 선다. 45분에 가까스로 엘베에 탑승하고 거울에 비친 망나니를 보면서 젖은 머리를 패딩 안으로 넣었다. 어릴때(결혼전)에는 젖은 머리가 부끄럽단 생각을 안 했는데, 으른이 되고 보니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B1측까지 내려가는 짧은 시간에 내일은 제시간에 일어나서 머리 말려야지 다짐을 한다. 제시간에 일어나는 것보다 정해진 시간에 잠드는 것이 정말 힘들더라


@pixabay

 


 출근길은 전구간이 공사 중이라 평소 4~50분 거리를 1시간 20분 동안 달려야 한다. 왕복 3시간이 안 되는 거리. 차 안에 있는 동안 나름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데 한창 싱어게인과 나는솔로를 정주행 하고 요즘은 방종임의 대기자tv나 이은경쌤의 슬기로운 초등생활을 돌려보고 있다. 전에는 교육정보를 위주로 봤다면 지금은 좋은 부모 되는 방법 같은 '자기 성찰' 류의 영상을 찾게 되더라.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매일 사춘기 딸과 싸우는 예민한 엄마라서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영상을 찾는달까.. 숨구멍이 필요한 순간이 자주 찾아오는데 멘토님들의 영상을 보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생각해 보니 두 평 공간에서 취미생활도 하고 자기 성찰도 하고 장거리 출퇴근이 나쁘진 않다. (기름값은 좀 아깝다.)


 아이 둘 키우면서 휴직 없이 근무기간 19년 차, 워킹맘으로는 14년을 채웠다. 나는 언제까지 워킹맘일까. 둘째가 대학을 가면 워킹맘이 아닌 걸까. 점점 손이 덜 가는데 왜인지 아이들 어렸을 때보다 할 일이 많아졌다. 해야 할 일도 많지만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마흔이 되어보니 나이가 억울한 건지 일에 대한 권태인 건지 퇴직 때까지 혹은 죽을 때까지 이런 패턴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갑자기 숨 막힌다. 딱 6개월만 하고싶은일에 집집중하고 쉬면서 더 치열하게 살아보고 싶다. 쉬면서 제대로 놀고싶다는 얘기를 남편에게 던져본다.


- "애 둘 있는 직원 중에 휴직 안 했던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휴직하고 싶어" 

-  "부러우면 휴직하든가, 이사 오면서 돈 많이 썼잖아"

괜히 꺼냈다. 부동산 시장 최고점일 때 호구가 된 우리. 당분간 휴직얘기는 꺼내지 말기로 한다. 




<만약 6개월을 쉴 수 있다면>

첫째, 아이들 간식과 저녁 직접 차려주기

둘째, 새벽글쓰기, 하루의 시작이 글쓰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셋째, 배우다 만 기타를 다시 배우고 싶다. 

넷째, 영어회화 중급까지 가기

넷째, 퇴근후 지친몸으로 운동하는게 힘들다. 시간에 쫒기 지 않고 운동하기

다섯째, 여행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 김장하셨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