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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들 Dec 03. 2023

어머니, 김장하셨어요?

고생하셨어요. 

 매년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수다'로만 김장을 80 포기는 담갔다. 회사 점심시간 직원들 틈에 껴서 김장이야기를 주도하는 김팀장은 안타깝게도 김장을 해본 적이 없다. 김장하러 먼 시댁까지 가야 하는 직원을 위로하고 와이프 두고 김장하러 본가에 간다는 직원을 칭찬해 주며 살림 경력 많은 언니들이 알려준 절임배추 저렴하고 괜찮은 곳도 메모해 둔다. 김장이 미지의 세계 같은 느낌이어서인지 하지도 않을 거면서 김장철 되면 덩달아 어수선하다. 아이들 키우면서 김장 속 바르는 체험을 하게 해 주려고 양념과 절임배추 키트를 산적이 있었는데 양념이 모자랐는지 익어도 맛이 없어 쓰레기 처리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그래도 어릴 적 김장의 기억은 남아있다. 본가는 식당이 모여있는 한옥마을이라 동네분들과 품앗이처럼 서로 김장을 도왔는데 우리 가게에 김장을 하면 8~9명의 인력이 모였다. 정성껏 키워 놓은 알이 꽉 찬 배추를 뽑아 트렁크에 가득 싣고 오면 삼촌과 아빠가 배추를 나르고 물에 씻은 뒤 굵은소금 촥촥 뿌려둔다.(이게 맞나?) 절임배추를 빨래하듯 씻고 물을 빼는 동안 엄마는 명태를 삶아 육수를 만들고 무와 각종 채소를 잘랐는데, 칼질하는 시간만 한 시간이 넘었던 것 같다.

 육수와 채소, 고춧가루와 생강, 새우젓, 마늘 등을 넣고 고무장갑 낀 손으로 한참을 버무리다가 날름 간을 보고 통과되면 이제 비닐 위로 배추 한 포기씩 들고 양념을 버무린다. 방에서 들락날락하다가도 양념 버무릴 때가 되면 그게 그렇게 재밌어 보여서 어른들 틈에 껴서 같이 거들었다. 거든 게 아니지, 방해는 안 됐을지 모르겠다. 20년도 더 된 옛날 기억인데 김장하는 과정에 기억의 조작이 있을 수도 있겠다.

 



 

 본가에서 가져가 먹지만 시댁과 가까이 살았을 때에는 어머님도 김장김치를 주셨다. 일 년에 먹는 김치가 네 쪽 정도였으니 한 포기면 되었는데 매년 주실 때마다 매일 김치반찬을 먹어야 다 소진될 수 있을 만큼의 양을 주셨다. 아이들은 어렸고 남편은 저녁 먹고 들어오는 날이 많았기 때문에 어머님이 주신 김치는 그야말로 마음만 받았던 게 사실이다. 매년 어찌할 수 없어 주변에 나눠주고 끝내 못 먹은 김치는 냉장고에서 잘 익어가다가 버림을 받았다. 김치냉장고가 없었으니 오래 보관할 수도 없었다. 어머님이 김장김치를 과하게 주실 때마다 마음만 받아야 했던 일하는 며느리는 사실 이렇게 되면 나 매년 시댁에 김장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주말엔 그저 쉬고 싶고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내 몸만 생각했던 지난날들이 있었다. 다행히 5~6년 전부터는 반찬통에만 가끔씩 주신다.


 너도나도 시댁나들이, 친정나들이하며 김장하던 시기에 책 쌓아놓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 만지작하고 있던 주말 오후, 핸드폰에 어머님 전화가 찍혔는데 얼떨결에 목 가다듬을 새도 없이 누워있는 음성 그대로 전화가 받아졌다. 남편을 통해 어머님이 오늘 김장하신 건 알고 있었기에 누워서 잠긴 목소리로 통화 연결이 돼서 당황한 며느리는 과하게 명랑한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 어머님, 김장하셨어요?

- 올해는 많이 안했어야, 30포기 했는데 효주네는 시댁에서 김장을 안 해서 좀 줘야하잖어~

  (아가씨만 챙기는 게 미안하신 듯 말씀하셨다)

- 많이 하셨네요, 못 도와드려서 죄송해요! 아가씨네 많이 챙겨주시고 저희는 진짜 괜찮아요 어머니~

- 김치 많이는 못했으니 김치통 작은 거 있으면 퇴근할 때 들러서 갖고 가라~


 

 김치 주시려고 전화주신 우리 어머님, 집에 있는 가장 작은 김치통을 남편 손에 들려 보냈더니 가져간 김치통이 어머님 성에 안 차셨는지 역시 김치통 하나를 더 주셨다. 몇 년 동안은 안 가져다 먹어서 어머님도 서운하셨을 거라 김장은 못 도와드려도 주시는 건 열심히 먹기로 했다. 맛있게 먹고 전화드려야지.

 이웃집들 보면 손주들과 아들 며느리 모여 같이 김장 속 버무리는 시간도 어머님 아버님께는 애틋해 보이실 텐데 그렇다고 주말에 더 바쁜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는 발걸음이 안떨어진다. 내년에는 어머님 아버님 모시고 우리 집에서 일을 벌여볼까.

아, 내년의 내가 후회하려나?




어머님이 주신 알타리김치와 배추김치(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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