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처럼 예쁘게 생겼는데 이상하게 암모니아향이 나는 분홍색 화환목걸이에 머리를 쑥 집어넣고 상금 1억원과 트로피를 번쩍 들어 포즈를 취한 뒤 이어 수상소감을 읽어나갔다.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건 우리 이은경 선생님과 동기들 덕분이에요. 소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매일 글감을 제공해 주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꺼이꺼이."
상을 받아서 얻은 명예 보다 나를 더 기쁘게 한건, 상금 1억원이었다. 지방에서 학군지로 이사하면서 담보대출 이자만 월 100만원을 넘어가자 투잡만이 답이라 생각했고 '프로투잡러'의 일상을 브런치에 기록하면서 플래시 세례를 받는 날이 왔다. 벌써 다음 책 출간일정을 묻는 출판사의 메일들 사이로 강연 섭외가 끊이질 않는다. 시상식이 끝나고 기자회견장으로 옮겨 오늘의 일정을 하나씩 해치워갔고 오늘의 명예는 브런치스토리 메인을 장식했다. 김들작가는 지금 빚을 청산하기 직전이다.
"엄마, 나 머먹어?"
방금 전까지 플래시 세례를 받던 사람은 해가 중천인 시간에도 경추베개에 뒷목을 파묻고 긴 꿈을 꾸고 있다. 주말 아침은 밀린 잠의 빚을 모두 갚아야 한다. 빚을 어느 정도는 갚았을 시간이 되니 둘째가 조심스레 먹을거리를 물어본다. 피곤한 워킹맘은 주말 아침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전날 식탁 위에 먹을거리를 잔뜩 올려놓고 잤는데, 너무 오래 잤더니 '아침'이 아니라 '점심' 메뉴를 물어보는 가여운 나의 2세.
안방 화장실에서 영역표시를 하고 나온 남편은 어제 아침과 점심 혹은 저녁까지 변기로 빠져나가 텅텅 빈 배룰 붙잡고 경추베개 주인에게 점심 메뉴를 묻는다. 꿈 속의 암모니아 향기는 네 것이었구나.
브런치 작가 될래? 야 너도 할 수 있어
슬기로운 초등생활 인스타그램, 유튜브, 네이버카페를 들락 하며 브런치 작가 모집 문구를 마주했을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책을 낼일도 없을테고 매일 출퇴근 자체로도 몸이 고단했기에 글쓰는 일과 나를 연결 짓진 않았었다. 그런데 왜 매일 봤던 그 문구가 11월 13일 마감일이 지나고서야 팍 꽂혔을까? 맘 속 어딘가에 글을 쓰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었고 은경쌤이 그걸 건드려주신 듯 하다. 뒷북이 둥둥 울리리기 시작하더니 어디서 열정이 샘솟는 건지 네이버 결제를 하고 강의안을 보고 공지사항을 읽고 몇 시간 만에 다른 인생으로의 막차를 타게 되었다. 역시 늦었을 때가 가장 빨랐다. 1주 차 과제를 하면서 글쓰기를 통해 어지러운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고 생각이 정리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관찰하고 보살피기 위함이라고 프로젝트 도전 이유를 말했다. 일터와 가족, 내 안에서 일어난 특별한 일들을 기록하고 유쾌하게 쓰고 싶다.
혼자였으면 못했을 여정을 같이 걷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고 행운이다. <브런치 작가 프로젝트 2기> 동기들의 인연을 만들어준 이은경쌤께 정말 감사드린다. 우리 똥꼬들은(임시애칭) 연필을 집어든 순간부터 다른 길이지만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서로의 인생에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 - 봄
작가님이라 불리는 엄마, 어떤데?
거실에서 책을 읽거나 (책 속에 폰을 숨겨 책을 보는 척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모습은 자주 연출했었다. 진짜 책을 읽고 진짜 공부를 했던 적도 있지만 아닌 날이 많아 '연출'했다고 하는 게 맞다. 공부하고 책 읽는 엄마 옆에서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독서를 했으면 하는, 내 팔자보다 더 나았으면 하는, 엄마의 사랑이 담긴 연기였다. 이제 연출이 아니라 진짜 공부하는 엄마를 보여주게 되어 영광이다. (키읔을 여덟 개 정도 붙이고 싶은데 브런치라서 참는다. 글이 너무 진지해지는 것 같아 부담이 되는데 문단마다 키읔이 네 개쯤은 붙어있다 생각하고 봐주시길 바란다.)
3주 차 과제를 제출하고 나서 둘째 아이에게 과제를 보여주었다. 현모양처 버전의 엄마와 공부하는 아들의 따뜻한 귀갓길이 주제였는데 과연 글쓴이가 유도한 대로 아들은 글에서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세 버전의 글을 다 읽고 씨익 웃으며 방에 들어가는 아들을 붙잡고 독해 문제 풀리듯 글쓴이의 의도를 캐물었다. 그리고 과제 속 아들을 딸로 수정한 후 첫째에게 글을 보여주었는데 딸은 한마디만 남기고 방으로 사라졌다. "노트북 사야 된다구 하더니 이거때문이구만"
노트북이 생겼습니다.
7년 된 서피스 노트북으로 3주 차 과제까지 무사히 마쳤고 4주 차 과제를 위해 3일만에 서피스를 켰더니 웬걸 영상튼지 2시간이 넘어가면서 모니터 화면이 덜덜덜 흔들린다. 오래됐지만 바꿀 건덕지가 없었는데 잘됐다. <노트북 잘 고르는 법>, <11월 추천 가성비 노트북 Top10> 등 친절한 얼리어답터 영상을 보고 대략 어떤걸 고를지 정했고 i5에 256기가로 스팩을 정한 뒤 하나씩 둘씩 옵션이 붙어 결국 이재용님네 가게에 갔다. 무리해서 마이너스 통장을 없애고 긴축 재정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고 겨울옷도 질러야하는데 노트북은 꼭 사야겠고 내년으로 넘길까 생각했지만 열정이 있을때 발행. 발행. 또 발행해야 하지 않나. 노트북 모델까지 정한 뒤 남편에게 조용히 둘째의 용돈계좌 잔액을 보여줬다.
'답은 정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남편의 대답을 듣고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별 생각 없는 아들은 엄마가 가져간 돈은 불려서 다시 넣어준다는 약속을 받고 계좌이체를 허락해주었다. 그러길래 마이너스 통장은 왜 갚아가지구.
십일절 할인받아 생각했던 가격보다 싸게 구입했더니 아들 계좌는 안건드려도 될것 같다. 11월 6일 현재 배송중으로 내일이면 도착한다. 노트북이 오면 먼저 애칭을 정하고 예쁜 파우치도 하나 사야겠다.
나의 노트북. 나의 꿈. 내 이야기 다 받아줄 친구. 아 좋다.
김작가의 말
글을 쓰는 일이 이렇게 시작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구나, 울 엄마에게도 글을 쓸 기회가 있었더라면 엄마의 인생이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