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하면, 꼭 잔치국수 먹자.
국수 그릇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맑은 육수 위에 얹힌 얇은 고명들.
그리고 깔끔하고 시원한 맛.
잔치국수.
"드세요."
백여운이 잔치국수 한 그릇을 밀며 말했다.
남자는 가만히 그릇을 내려다봤다.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조심스럽게 다가온 작은 손이 테이블 위에 물컵을 내려놓았다.
하은이었다.
그녀는 짧게 미소 짓고, 소리 없이 물러났다.
진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젓가락을 들려다 말고, 다시 그릇을 바라봤다.
이름은 유진우.
서른셋.
한때는 밝은 웃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 결혼하면, 꼭 잔치국수 먹자."
아내는 항상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결혼식 전날 밤.
둘은 직접 국수를 삶았다.
커다란 냄비에 소면을 담그고, 삶아낸 면을 찬물에 헹궈 탱탱하게 만들었다.
육수는 멸치와 다시마를 끓여 우려냈다.
시원하고 맑은 맛을 위해.
지글지글 고기를 볶고 그러고 나면 순서대로 곱게 썬 부추, 당근, 애호박등을 볶아냈다.
그리고 노란 달걀지단을 만들어 곱게 썰었다.
그것들은 눈으로도 먹기 좋은 예쁜 고명이 된다.
"국수는 간단하지만, 정성이 들어가야 맛있어."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결혼식 날.
서툰 손길로 서로 국수를 먹여주며 웃던 기억.
면발이 뚝 끊어질까 조심하던 순간들.
그녀는 늘 말했다.
"국수처럼 오래, 오래 함께하자."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할 것 같았다.
아니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국수를 먹으며 환한 미소를 보여주던 그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진우는 그녀의 병원 침대 옆을 지켰다.
항상 언제나 그녀가 부르면 달려갈 수 있는 곳에 그는 있었다.
그는 모든 정성을 쏟았다.
그녀의 미소를 되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끝내 그는 그녀의 마지막 숨결을 들었다.
"미안해... 먼저 가서... 미안해..."
그녀는 마지막까지 울면서 웃었다.
진우도 그녀의 위해 울면서 웃었다.
그렇게 그녀를 보내고...
진우는 끝내 알고야 말았다.
자신도 더는 혼자 살아낼 수 없다는 것을...
***
"미안합니다."
진우가 잔치국수를 앞에 놓고 말했다.
"저도... 그냥 가고 싶었어요. 그녀가 없는 세상에선...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국수 그릇 위로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육수가 일렁였다.
***
아무도 진우를 막지 않았다.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그날 진우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정리했다.
은행 잔고를 가족에게 넘기고.
집 열쇠를 현관 한 구석에 남기고,
그는 걸어서 높은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 높은 곳에서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
진우는 젓가락을 들어 국수를 집었다.
하얀 면발이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맛있네요."
그가 웃었다.
"당신과 그녀가 좋아했던 그 맛입니다. 그리고 그녀도 잔치국수를 달라고 하더군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국수 한가닥을 삼킬 때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웃고.
싸우고.
울고.
다시 웃던 날들.
짧았지만 뜨거웠던 시간.
그의 잔치국수 육수는 그의 눈물로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식당 한쪽에 문이 열렸다.
진우는 천천히 일어섰다.
"이젠, 가 보겠습니다."
백여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충분히 사랑하셨습니다."
진우는 마지막으로 국수 그릇을 바라봤다.
따뜻한 국물이 식어가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진우는 천천히 일어서 검은 문을 향해 나갔다.
그때, 식당 한쪽에 서 있던 봉돌이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국수처럼 이어진 인연, 다음 생에는 끊지 말고 살아야 지예."
경상도 억양이 담긴, 따뜻하고 느릿한 한마디였다.
백여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우가 먹고 간 빈 잔치국수 그릇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다음 생에는 아주 길고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구나."
잔치국수에서 피어오른 마지막 온기가 식당 가득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