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된장찌개

된장찌개 냄새... 어쩐지 엄마 같았어요.

by 김두필

"오늘은 조용하네요..."


하은이 백여운에게 말했다.


"맞습니더... 억수로 한가하네예."


봉돌이도 하은의 말을 거들었다.

그들의 말에 백여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여운에게는 아까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용히 문이 열렸다.


단정한 옷매무새.

굽이 낡아 달아져 버린 낮은 단화.

그리고 오래돼 보이는 작은 손가방 하나.

차분하고 작은 숨소리를 내며 한 중년의 여성이 들어왔다.


말도 없이 들어온 여자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자연스레 백여운에게 말했다.


"된장찌개 하나 끓여주시겠어요?"


다른 혼들과는 다르게 여기가 어딘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여자는 묻지 않았다.

그런 여자의 모습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백여운.

그리곤 냄비에 물을 올리며 물었다.


"어딘지도 안 물어보시네요?"


"어느 정도 살다 보면 느껴지는 게 있는 법이죠... 앞에서 한참을 생각하면서 알았어요. 난 죽었구나... 그리고 저기 보이는 밥집은 내가 마지막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구나 하고 말이에요."


"그럼 손님의 된장찌개를 끓이도록 하겠습니다."


백여운이 말을 마치자 냄비 안에 물이 끓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멸치와 다시마가 담긴 망을 담갔다.

거기선 은은한 바다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백여운은 묵직한 된장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나무 숟가락으로 된장을 떠 물어 담그고, 젓가락을 이용해 천천히 휘저었다.


국물기 흐릿하게 탁해지며 구수한 냄새가 퍼졌다.

애호박과 감자를 납작하게 썰어 넣었다.

양파는 반 개, 큼직하게 자른 두부로 들어갔다.

그렇게 깊은 맛이 우러나도록 한참을 끓였다.

잠시 후, 짠데 따뜻하고 냄새는 꾸리꾸리 하지만 구수한 맛이 나는 된장찌개가 완성이 되었다.


"자 완성입니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그 익숙함에 가슴이 조용히 조여왔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며칠 전, 병원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신장암 말기입니다.'


그 순간 의사의 얼굴보다 자식들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이번 명절은 힘들 것 같아요, 엄마."


"나중에 전화할게요."


"아, 그거 인터넷 찾아보면 나와."


바쁜 목소리들.

짧은 문장들.

그 짧음에 느껴지는 차가운 숨결.

하지만 항상 걱정이 되는 나의 자식들.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굳이.... 걱정 끼칠 필요 없지.'


손에 쥐고 있던 검사지를 접었다.

그리곤 보이지 않도록 가방 안 깊숙이 넣었다.

지금 그녀가 가지고 온 작은 가방 안에 깊숙이.


명절이면 그녀는 된장찌개를 끓였다.

백여운이 끓인 것처럼.

애호박에 감자에 두부에 된장을 넣고.


매년 누가 오지 않더라고 늘 하던 데로 그녀는 된장찌개를 끓였다.


그날도 식탁에 밥을 차려놓고 앉았다.

그날따라 찬밥은 싫었다.

따끈한 밥이 먹고 싶었다.


따끈한 밥에 뜨끈한 된장찌개 한 상.

그녀는 조용히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눈을 떴을 땐 혼밥집 앞이었다.

그리곤 지금 그녀의 앞에는 자신이 끓인 된장찌개가 아닌.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끓여준 된장찌개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누가 날 위해 끓여준 찌개는..."


그녀가 국물을 한 수저 맛을 보았다.

딱 삼킬 수 있을 만큼의 온기.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백여운의 된장찌개를 먹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국물이 목을 넘을 때마다... 눈가가 젖어갔다.

울음은 없었지만 수저 끝이 자꾸 흔들렸다.

자신의 죽음이 서글퍼서가 아니었다.

끝까지 자식들의 걱정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릇을 비운 뒤 그녀는 조용히 일어났다.


"잘 먹었어요. 아주 맛있네요."


그리고 문 앞에 선 그녀.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문고리를 살짝 돌려봤지만 닫힌 채였다.

마음 한 구석이 아직 덜 정리된 듯했다.


"아직 놓지를 못하나 보네요. 당신이나 자식들이나"


백여운이 조용히 말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그리곤 저편 어딘가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우리 왜 그랬지..."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사랑해요... 엄마..."


익숙한 목소리.

자식들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식들의 울음 뒤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밥은... 먹었니?"


그 한마디를 남긴 채, 따듯한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문이 닫혔다.


그런 그녀를 보던 하은이 젓가락을 치우며 말했다.


"된장찌개 냄새... 어쩐지 엄마 같았어요."


봉돌이가 킁킁대며 중얼거렸다.


"좀 짜고 구수했심더. 근데... 속도 마 확 데워졌네예."


백여운은 말없이 국자를 씻었다.

그날 혼밥집에서 끓여낸 찌개에는 아무 말도 담기지 않았지만.

그 모든 마음이 그릇 바닥에 조용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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