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쓸쓸한 맛이겠군
백여운은 물을 올렸다.
금색 양은 냄비 안, 맑은 물이 흔들렸다.
그리곤 가스레인지 불을 올렸다.
작은 기포들이 올라오고 물은 천천히 데워지고 있었다.
그 사이 손에 들고 있던 떡국떡을 찬물에 넣어 불렸다.
그리고 꺼내 든 라면 한 봉지.
입구를 뜯고 라면을 반으로 갈랐다.
건더기 스프와 분말 스프를 한쪽에 잘 정리한 백여운.
그는 불 앞에 서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늘은 조금... 쓸쓸한 맛이겠군."
아직 면은 넣지 않았다.
그저 익숙한 예감처럼, 누군가 곧 올 것 같아 준비만 해두는 중이었다.
곧 올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렸다.
가늘고 마른 젊은 남자.
비에 젖은 머리, 푹 꺼진 어깨.
축 늘어진 바지 끝에서 찝찝한 물방울이 뚝. 뚝.
그저 멍 한 표정의 남자.
다른 사람처럼 이 혼밥집을 혼란스러워하지도 않았다.
당연한 듯 백여운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 밥집이죠?"
백여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남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마지막 밥집입니다."
남자는 백여운에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에 젖은 신발은 벗지도 않고 젖은 몸은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몸에서는 물 비린내와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하지만 그 냄새보다 허기에서 나는 냄새가 더 짙었다.
피죽도 못 먹은 것 같은 몰골의 남자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뭐든... 따뜻한 거요. 떡... 들어간 라면이면 좋겠어요."
"네 바로 준비해 드리죠. 실례가 안 된다면 소개 좀 해주실래요?"
"저요?"
"네."
백여운의 말에 남자가 말했다.
정승현.
스물여덟. 고아원 출신.
가족 없음.
연락할 사람도 없음.
물론 처음부터 혼자가 된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혼자였다.
엄마에 대한 기억도 없이 고아원으로 버려졌으니까.
그리곤 성인이 된 그는 고시원에서 살았다.
하루하루 일용직을 하며 살아갔다.
하루는 공사장.
다음 날은 물류센터.
일이 끝나면 고시원에 몸을 뉘이고 잠을 자기 바빴다.
"어느 곳이든 전 이름이 없었어요. 그냥 형, 야, 저기요? 이렇게 불리면서 지낸 거 같아요."
저녁엔 늘 라면이었다.
끓이는 방식은 단 한 가지.
찌그러진 금색 양은냄비에 물은 넉넉히 넣는다.
스프는 반만.
계란도 없다.
파도 물론 당연히 없다.
조금의 사치를 부리자면 그게 바로 떡국떡 몇 개.
"그게, 제 방식이었어요."
백여운은 그 남자의 기억대로 떡라면을 끓였다.
떡을 먼저 넣고, 면은 조금 뒤에, 국물은 싱겁게.
젓가락 으로 면을 저었다.
딱딱했던 면발이 서서히 풀어졌다.
그리고 반만 넣은 스프지만 냄비 가장자리로 기름이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 더 익도록 몇 초 더 팔팔 끓였다.
"다 끓었네요."
백여운이 말했다.
정승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국물을 떠서 그릇에 담았다.
라면과 떡을 올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그 라면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드세요."
정승현은 조심스레 양손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곤 국물부터 한 모금.
"... 이 맛이네요... 이 맛이 맞네요."
퍼진 면발에 미지근한 떡.
거기에 싱거운 국물.
그게, 그가 살아온 맛이었다.
"누가 끓여주는 건... 처음이네요...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죠?"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는 조용히 웃었다.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흙냄새, 먼지, 젖은 담배꽁초.
그리고 그 안에 라면 냄새가 은근히 섞여 있었다.
지금 혼밥집은 그가 살았던 고시원의 냄새가 흩어지고 있었다.
"아마 제가 죽어서 이곳에 온 것도 아무도 모를 거예요... 아니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겠죠..."
그는 조용히 떡라면을 다 비웠다.
그릇 바닥엔 국물 한방을 남지 않았다.
남자가 음식을 다 비웠을 때 그의 뒤에서 문이 열렸다.
"문이 열렸네요..."
정승현이 말했다.
백여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슬픈 미소만 그에게 보였다.
남자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렇게 천천히 열린 문의 입구로 향했다.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선 남자.
그리곤 문 밖을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아무도 없네요."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비만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그리곤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 떡라면은 참 맛있었습니다."
남자는 조용히 웃었다.
아주 작게.
남자는 계속해서 발을 내디뎠다.
남자가 문을 지나가 문은 조용히 닫혔다.
"혼자였네요..."
하은이 말했다.
그 옆의 봉돌이 가 코를 킁킁댔다.
"냄새가... 참말로 외롭습니더. 뭐 그래도 라면 한 그릇에 속이 쫌 데워진 거 같네예."
백여운은 빈 그릇을 닦으며 말했다.
"사람은 가끔 혼자서도 따뜻해질 수 있는 법이야."
그날의 라면엔 적어도 백여운의 손길이 있었다.
그 남자를 위한 온기 있는 손길이.
그리고 혼밥집은 또 한 사람을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