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순대국밥

국밥에 소주 한 병. 딱 좋지.

by 김두필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갓 지은 밥 냄새가 가득한 혼밥집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섰다.

검게 그을린 얼굴.

단단한 어깨.

거친 손등.


그 남자의 옷자락엔 아직도 불타는 냄새가 은은히 남아 있었다.

아니 불타는 냄새가 가득했다.


"어서 오세요."


백여운이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이 깊었다.


메뉴를 물으러 하은이 남자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하은이 물어보기도 전에 남자는 곧바로 말했다.


"순대국밥. 순대국밥 부탁드립니다."


하은은 잠시 멈칫했다.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늘 마지막인걸 인지하지 못했다,

하은 또는 백여운과 대화를 하고 자신이 온 곳이 마지막 한 끼를 먹는 곳인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메뉴를 고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남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하은이 주방으로 향했다.

돌이는 조용히 손님의 발치 옆 의자에 올라앉았다.


남자의 손들을 바라보았다. 군데군데 덴 자국.

거친 피부. 불길과 싸운 시간의 흔적.


"소방관이셨군요..."


백여운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웃었다. 아주 잠깐.

그리고 무언가 씁쓸한 표정의 남자가 말했다.


"예. 그랬습니다."


남자의 표정은 씁쓸함과 온화함이 공존했다.

두 가지 표정이 같이 있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 했다.

남자의 표정을 본 백여운이 물었다.


"구했군요."


"구했지요.... 그리고 나는 못 돌아갔고... 여기 지금 자리 잡고 앉아 있네요."


목소리에 후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씁쓸함은 묻어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표정에는 안도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 순간, 주방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여운은 커다란 솥에 돼지사골 육수를 올려두고 있었다.

깊고 묵직한 향이 퍼졌다.


선지와 순대, 머리 고기를 천천히 데웠다.

비계를 살짝 걷어낸 후 다진 마늘과 소금, 후춧가루를 조심스럽게 넣었다.


파를 어슷 썰어 송송 얹고, 세우 젖 한 숟가락으로 마지막 간을 맞췄다.

데워 둔 그릇에 끓는 육수를 가득 부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식당 전체가 구수한 냄새로 가득 찼다.


"순대국밥 나왔습니다."


백여운인 남자 앞에 놓으며 말했다.


남자는 숟가락을 들었다.

국물 한 술, 깊은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소주 한 병 마실 수 있습니까?"


"그럼요 가져다 드리지요."


백여운이 주방으로 들어가 소주 한 병과 소주잔을 들고 나왔다.

그리곤 남자 앞에 소주잔을 놓고 한잔을 가득 채웠다.


"감사합니다. "


남자가 소주를 한잔 마시고, 돼지고기와 함께 뜨끈한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뜨거운 국물에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졌다.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


퇴근이 얼마 안 남았을 때, 동료들과 나눈 약속.


"형, 오늘 한 잔 해요."


"그래, 국밥에 소주 한 병. 딱 좋지."


그 순간, 울음이 섞인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나 할 것 없이 달리기 시작하는 소방관들.

어느덧 그들은 불타고 있는 집 앞에 마주 서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 집어삼키는 연기.

그 속을 주저 없이 뛰어드는 사람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불길 속, 아이의 울음이 들려왔다.


"흑흑...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거기 있어! 괜찮아! 아저씨가 금방 구해줄게!"


아이를 품에 안고 창문으로 달렸다.

그리고 보이는 공기안전매트.


"아저씨 믿어! 너무 겁먹지 말고... 아저씨가 꼭 살려줄게."


아이를 던지고 남자가 몸을 던지려는 순간.

천장이 무너졌다.

그렇게 남자는... 남았다.


그 찰나, 머릿속에 스친 아내와 아들의 얼굴.


'미안해...'


그 짧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남자의 기억은 끊겼다.


***


남자는 조용히 국밥을 떠먹었다.

소주 한 잔과 함께.


하은은 멀리서 그를 지켜봤다.

봉돌이 가 다가와 조심스레 탁자에 팔꿈치를 괴고, 작게 중얼거렸다.


"... 참 따뜻하네예. 국밥도 마음도."


남자의 순이 미세하게 떨렸다.

국밥을 먹다 문득 손을 멈추었다. 뜨거운 눈물이 뚝, 국밥 위로 떨어졌다.


하은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휴지를 건넸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조금만, 이렇게 있고 싶어요."


백여운은 말없이 주방 뒤편 조명을 조금 어둡게 조정했다.

혼자 울 수 있도록.

국물 한 방울까지 그는 정성껏 떠먹었다.


순대와 부추, 선지 마지막 조각까지 입에 넣었다.

물론 소주 한 병과 함께.


숟가락을 내려놓은 손끝이 떨렸다.

남자는 한참 동안 빈 그릇을 바라봤다.

빈 그릇. 텅 빈 그릇. 그러나 마음은 가득 찼다.


식사를 마친 남자가 천천히 일어섰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따듯한 조명, 은은한 국밥 냄새.

벽에 걸린 작은 화분들.


"좋은 곳이네요. 사람 냄새나는 곳."


백여운과 하은이 조용히 인사했다.


"편히 가세요."


남자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서 잠시 멈추는 남자.


"그 아이는 잘 살겠지요?"


"그럼요. 당신이 지켜준 삶이 잖아요."


백여운은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옆에 있던 하은이 덧 붙였다.


"앞으로 누군가를 구할 거예요. 아저씨 덕분에."


남자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봉돌이가 작은 뿔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고맙십니더. 아재. 진짜루... 고맙십니더."


남자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잠시, 문 앞에서 뒤돌아 혼밥집을 한 번 더 바라봤다.

그리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덕분에 따듯했습니다. 정말."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더 밝은 빛이 혼밥집 안으로 흘러들었다.

남자는 그 빛 속으로 걸어 나갔다.

하은이 조용히 말했다.


"잘 가요,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백여운이 조용히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힌 뒤에도 한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은이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멋진 사람이었네."


봉돌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여운은 말없이 국을 휘저었다.


혼밥집 안에는 다시 고요한 순대국밥 냄새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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