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오늘 수업 끝나고 피아노 레슨 갔어요!
새벽 세 시.
이미 많은 사람들은 퇴근해서 잠을 자고 있을 시간.
도로 옆, 불 꺼진 차.
내부등만 킨 채 앉아 있는 사람.
바로 진우였다.
엔진은 꺼져 있었고, 창문은 뿌옇게 서려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 턱 밑까지 내려오는 다크서클.
피곤에 찌든 진우의 모습이 고달파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옆 조수석에는 도시락 가방이 하나 놓여 있었다.
찬밥.
계란프라이 하나.
찐득하게 눌어붙은 멸치 볶음 조금.
그리고 쉬어버린 김치 한 조각.
진우는 소리 없이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도시락을 한입 먹으려는 찰나.
불현듯 무엇인가 생각난듯한 진우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핸드폰에 있는 영상을 하나 켰다.
딸이었다.
"아빠, 나 오늘 수업 끝나고 피아노 레슨 갔어요!"
작은 화면 속 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차디찬 밥을 천천히 씹었다.
새벽까지 대리운전을 뛰고 난 뒤의 밥 한 끼였다.
눈물 따위는 없었다.
그저 피곤 한 하루의 마무리.
간단한 도시락과 딸의 영상이 그의 유일한 저녁이자 위로였다.
아내는 딸과 함께 캐나다로 떠났다.
처음엔 1년만 참고 버티자고 했지만.
어느덧 벌써 6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딸이 떠나던 날.
비행기를 타기 위해 떠나는 아내와 딸의 얼굴이 아직도 또렷했다.
"여보 우리 가연이 잘 되는 게 우선이잖아."
아내의 그 말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도 딸 가연이는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였으니까.
그렇게 그는 딸의 위해 최선을 다했다.
딸의 영상을 보며 도시락을 다 먹은 그.
그는 아주 잠깐 눈을 붙이기 위해 시트를 뒤로 젖혔다.
그렇게 아주 잠시 눈을 붙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백여운은 혼밥집이었다.
***
식당 안.
백여운은 도시락을 조용히 꺼내놓았다.
진우는 아무 말 없이 백여운의 앞에 앉았다.
젓가락질은 느렸고, 몸짓엔 힘이 없었다.
하은이 물컵을 진우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진우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다만 고맙다는 듯 눈을 한번 감았다.
자신이 놓인 상황을 단번에 알아버렸으니까.
꽤 긴 시간 혼밥집은 조용했다,
남자의 고독함에 아무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백여운은 주방으로 들어가 소시지를 하나 구웠다.
잘 익은 소시지를 먹기 좋게 잘라 도시락 옆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는 천천히 소시지를 바라보다 입꼬리를 아주 작게 올렸다.
"감사합니다... 소시지... 우리 가연이가 제일 좋아했어요. 나는 못 먹어도 그 아이가 입에 가득 물고 웃는 걸 보면... 그걸로 됐었는데..."
"아버지 마음이 다 그렇죠..."
백여운이 조용히 말했다.
"소시지는 우리 가연이랑 꼭 같이 먹고 싶었는데..."
그는 마자막 한 숟가락까지 천천히 비웠다.
찬밥도, 김치도, 소시지도 남기지 않았다.
그게 그의 삶이었다.
자신은 늘 비우고 가연이와 아내만큼은 채우기를 바랐다.
소시지를 입에 넣고 씹던 그의 손이 잠시 멈췄다.
"가연이가 나 없이도 괜찮을까... 김치도 참 좋아했는데... 아제 가연이 밥은 어쩌지... 그리고 우리 와이프도 힘들 텐데..."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그 목소리는 그 어떤 울음보다 조용했다.
또 그 어떤 고백보다 진심이었다.
진우는 마지막까지 자신보다는 가족을 걱정했다.
캐나다로 가족들이 떠나기 전.
한때는 주말마다 딸과 함께 요리를 했다.
소시지를 굽다 자꾸 탔던 그 손.
기름이 튄다고 소리를 지르던 딸.
그럼 그런 딸을 위해 웃으면서 젓가락으로 소시지를 뒤집어 주었다.
그 소시지 하나로 그 기억들과 추억이 파로나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진우가 실컷 울고 울음을 그쳤을 때.
그의 뒤로 식당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봉돌이 가 다가왔다.
작은 뿔이 달린 도깨비.
땅만 보던 봉돌이 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재요 담 생엔 혼자 말고... 같이 사는 삶을 삽시더..."
봉돌이의 말에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웃음도 없고, 눈물도 없었다.
아주 조용한 작별만 있을 뿐이었다.
진우는 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앉아 있었던 자리.
식어버린 도시락.
텅 빈 그릇 위에 남겨진, 소시지 기름...
그는 고개를 숙이고 문 너머로 걸어갔다.
그를 바라보던 백여운은 식탁을 정리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지막까지 혼자 밥을 먹었다는 게 참... 마음에 걸리네."
텅 빈 도시락만큼 백여운의 마음도 휑한 느낌이 들었다.
혼밥집에 백여운은 그렇게 또 한 영혼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