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다... 내리셨겠죠?"
식당 안에는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만 가득했다.
끓는 소리에 맞춰 구수한 냄새도 계속해서 올라왔다.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밥 한 공기.
짭조름한 고등어구이.
고사리무침과 무생채가 나란히 놓은 백반 상차림.
백여운은 말없이 상을 차려냈다.
정갈하고, 따듯하고, 깔끔하게.
정성스레 접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지는 한 상이 었다.
식탁 앞엔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유난히 깊게 파인 이마 주름.
검게 그을린 손등.
그리고 다 펴지지 않는 등.
하지만 남자의 얼굴에선 선한 느낌의 미소가 은은히 계속되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밥을 바라봤다.
한참을 바라보다, 숟가락을 들어 된장찌개 국물을 한 숟갈 떴다.
"구수하니 맛있네요."
***
이름은 최기태
나이는 쉰넷.
버스 기사로 살아온 지 22년.
그는 새벽이면 누구보다 일찍 첫차를 몰았고.
또 막차를 운행하는 날이면 가장 늦게까지 운행을 하는 사람이었다.
"앉으세요. 버스 멈췄습니다."
그 말이 입에 붙었다.
항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결같이 친절한 기사님이었다.
안전에 대해 항상 주위를 기울이는 습관은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었다.
그날도 비가 내렸다.
창밖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야근 교대 근무, 시골 외곽길을 달리던 날.
늦은 시간이었지만 좌석은 꽤 많이 차있었다.
기태는 브레이크가 밀린다는 걸 코너 진입 직전에 눈치챘다.
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버스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는 큰소리로 승객들에게 말했다.
"모두 뒤쪽으로 가세요! 최대한 뒤로 빨리요!"
기태의 말에 승객들을 당황하며 우왕좌왕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승객들이 움직이는 사이.
그는 핸들을 끝까지 꺾어 버스를 반대편 비탈 쪽으로 붙였다.
"다들 손잡이 꽉 붙잡으세요!"
기태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버스는 옆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순간 드는 생각. 한 가지 생각만 기태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 그 방법밖에 없어.'
멈추지 않는 버스.
기태는 마지막까지 운전석에 남아 몸을 틀어 핸들과 대시보드를 막았다.
그리고 운전석 쪽이 가드레일을 박차고 전봇대를 정통으로 들이받도록 만들었다.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고.
머리가 핸들에 부딪혔다.
기태의 온몸은 그대로 눌려버렸다.
"내리셨으면... 좋겠네..."
그 마지막 생각을 품은 채 기태는 눈을 감았다.
***
"고등어가 맛있네요..."
기태는 중얼거리며 고등어를 한 점 집어 들었다.
비린내는 전혀 없었다.
고소함은 입 맛을 돌게 했다.
먹어본 고등어구이 중 가장 맛있었다.
하은이 다가와 물컵을 내려놓았다.
"천천히 드세요. 아직 따듯해요. 더 구워드릴 수도 있고요."
기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조금씩 밥을 뜨며 그는 생각했다,.
이 백반 그리고 된장찌개.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찌개의 맛과 그리 멀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들놈이랑 같이 저녁을 먹었을 텐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기태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불현듯 하은에게 물었다.
"혹시 다... 내리셨겠죠?"
그의 물음에 하은은 조용히 대답했다.
"네. 전원 무사히 구조됐어요."
기태는 가만히 웃었다.
안심이 되었는지 처음으로, 진심으로 밥을 씹었다.
짠 고등어 맛이 혀끝에 퍼졌다.
짠맛은 아마 그의 눈물이 대신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맛있게 백반 한 상을 다 비워낸 기태의 뒤로.
혼밥집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기태의 옆으로 봉돌이가 다가왔다.
혼밥집의 작은 도깨비.
오늘은 모소리가 더 낮았다.
"밥 맛있게 드셨는교. 담 생엔 운전대 말고... 누가 데려다주는 삶 삽시더."
기태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잠시 식탁 위를 내려다보았다.
따뜻했던 밥 한 공기.
고등어 한 점.
그 맛을 잊을 수 없다는 듯 한참을 빈 그릇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조용히 천천히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을 나가기 전 기태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백여운을 바라보며 기태가 물었다.
"진짜 다... 내린 거 맞죠?"
백여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두 다 안전하게 내리셨습니다."
기태는 한참을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
"그럼 됐습니다. 이제야 안심이 되네요."
잠시 눈을 감은 기태의 얼굴은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친구였다.
언제나 묵묵히 운전석에 앉아 있던 기사님이었다.
그는 늘 그랬듯 문을 열고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듯 자신의 마지막을 천천히 정리했다.
백여운은 식탁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다음엔 그 사람도... 누군가의 승객이기를..."
기태가 먹었던 백반 한 상을 정리하며 백여운은 웃었다.
"그래도, 맛있게 드셔서 다행이네..."
테이블을 닦던 하은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다 작게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기사님."
그 말이 끝날 무렵, 밖에선 조용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기태를 향한 승객들의 고마움의 눈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