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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Oct 31. 2023

아빠, 잘 가요

2023년 6월 8일 아들의 시간도 결국엔 흘러가고 있다.

아버지의 시간도 흘러가고 있지만 그 자식과 가족들의 시간도 결국엔 흘러가고 있다.

나의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열심히 투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 나의 시간도 열심히 가고 있었다.

나도 자식을 키우고 나의 가정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남들과 같이 치열한 삶 속에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내 삶에 대한 걱정이 더 큰 시기였던 것 같다.

나에게 정해진 시간을 온전히 나의 가족을 위해 쓰려고 노력했으니 말이다.

다들 그렇겠지만 나도 하루하루에 집중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시간에도 아버지는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온전히 내 일에 집중하고 싶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의 생각이 툭 하고 튀어나오곤 했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저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하고 계속해서 피어올랐다.

걱정이라는 녀석이 나의 주변을 맴돌며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

수술 날짜도 정해지지 않아서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초조한 상황.

이렇게 긴장되는 상황이 나를 더 힘들게 조여 오고 있었다.

걱정이란 녀석이 참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그토록 아버지를 원망하고 싫어하던 나인데.

그런 내가 아버지에 대한 걱정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 했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한테 말했다.


"아빠... 난 아빠가 참 밉고... 진짜 싫어..."


"..."


"나도 이제 다 컸고 아버지가 되었지만...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이 거의 없어."


그렇게 한참을 아무 말이 없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니까 너는 그런 아버지가 되지 마..."


아버지는 끝까지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이 참 말하기 힘든 단어인가 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버지한테 미안하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으니 말이다.

왜 아버지 시대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할까?

특히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하는 아버지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요즘은 조금 알 것 같은 마음이다.

아마 미안하다는 말이 아버지들은 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말이 곧 자식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아버지는 남자다.

아주 오랜 시간 전부터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역사를 봐도 그렇다. 사냥을 하고 전쟁을 해 온 인간들도 대부분 남자들이다.

그래서 남자는 인생의 대부분을 센 척을 하면서 살아간다.

남자란 동물은 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기본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이다.

군대시절이야기, 학창 시절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남자들이 얼마나 센 척을 하며 살아가는지 잘 알 수 있다.

대부분이 과장된 이야기이고 뻥이지만 그들은 경쟁하듯 이야기하기 바쁘다.

이렇게 동성들에게 센 척을 하고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바로 남자다.

그런데 자기 자식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 아마 죽을 만큼 싫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나도 나의 아들, 나의 딸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

강한 아버지이고 큰 기둥과 같이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런 아버지이고 싶다.

하지만 자식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버지가 결코 약한 아버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고 자식에게 미안하다고 할 줄 아는 아버지가 더 멋있고 강한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겉이 아닌 속이 강한 아버지가 되고 싶은 것이 요즘 심정이다.

아버지 말대로 나는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의 아버지의 모습이 튀어나온다.

아마 나의 아버지에게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무뚝둑했던 아버지 그리고 아들에게는 엄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게도 자꾸 나오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안아준다.

나의 아버지처럼 되기 싫어서 말이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 시대의 아버지들도 나름에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다.

미안하다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 시대의 아버지들인 것 같다.

어느 날 내가 성인이 되고 늦게 까지 술을 먹고 들어온 날.

아버지는 어김없이 나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

나도 그때는 다 컸다고 생각했는지 아버지께 심한 말을 하고 욕을 섞어가며 대들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순대국밥집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순대국밥 두 그릇과 소주를 한병 시키셨다.

그리고는 아버지는 나에게 글라스 잔을 건네며 말없이 소주를 따라 주었다.

그렇게 우리 부자는 말없이 소주와 순대국밥을 먹었다.

말로 하면 참 좋았겠지만 아버지는 소주를 한잔 따라주는 것으로 그 말을 대신했다.

그리고 난 이것이 아버지의 미안하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서야 알고 말았다.

오늘은 그 순대국밥과 소주 한 병이 너무나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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