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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Nov 06. 2023

아빠, 잘 가요.

2023년 6월 11일 그날 같이 시간을 보냈다면...

6월 10일 저녁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12일에 수술한다고 내일 동의서에 사인하러 오랴~"


힘들고 어렵다는 그 수술이 아버지와 나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약간 상기된 아버지의 목소리.

평상시의 아버지의 음성이 아니었다.

약 8시간이 예상되는 긴 수술.

혹여나 죽을지도 모르는 걱정스러운 수술이 이제는 바로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긴장감과 그리고 홀가분함과 기대감이 묻어있었다.

걱정과 긴장감은 수술을 앞둔 사람이라면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통화에서는 홀가분함과 기대감이 조금 더 많이 느껴졌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병원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또 얼마나 피가 말리는 시간이었을까?

그런 시간을 보냈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버지의 상기된 목소리가 이해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버지가 걱정보다는 홀가분함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가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기대감.

수술을 하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그 마음이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그 기대감이 아마 목소리를 제일 상기시켰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기대감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나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기대감이 큰 만큼 살고 싶은 의지도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알겠어. 내일 바로 들어갈게..."


아버지와는 반대로 나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나의 목소리는 긴장감과 걱정으로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산다는 기대감보다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걱정이 더 컸던 것 같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복잡했다.

거대한 답답함이 나의 머리와 가슴을 압박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음날, 무겁고 큰 돌덩이를 가슴에 안고 나와 동생은 병원으로 향했다.

동생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는 다르게 동생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았다.

아무래도 아들보다는 딸에게 관대했던 아버지였으니까 말이다.

아들인 나에게는 엄격하고 무뚝뚝했지만 딸인 동생에게는 관대하고 좋은 아버지였다.

그래서 굳이 어둡고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활기찬 분위기로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음악도 듣고 시답지 않은 농담도 던져가면서 말이다.

그때 동생이 말했다.


"아빠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 어쩔 수 없지."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병원서 치료하고 수술하면 나아질 거야."


동생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지만 나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당시 내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돌아가시면 어쩌지?'

'수술 중 돌아가시면 정신이 없겠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바로 장례식장을 준비해야 하는 건가?'

'미리 장례식장에 얘기해야 하는 건가?'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인데... 동생한테는 뭐라고 하지?'

'와이프는? 애들은? 병원으로 오라고 해야 하는 건가?'

'아버지와 같이 사는 아주머니랑은 어찌해야 하지?'

'작은 아버지에게 미리 얘기를 해야 하나?'


온갖 생각과 더불어 어마어마한 양의 걱정이 나의 속을 뒤집고 있었다.

그러한 걱정들이 마치 나를 붙잡고 갯벌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겉모습은 덤덤했을지라도 속은 계속해서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동생과 나는 병원에 도착했다.

지하에 주차를 한 뒤 나와 동생은 아버지가 입원 중인 병실로 올라갔다.

병실 엘리베이터 복도에서 전화를 하고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리고 저 끝쪽에서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는 생각보다 더 야위어 있었다.

기골이 장대하던 아버지는 온데간데없고 살이 빠져버린 아버지가 나타난 것이다.

힘이 많이 빠진 목소리로 아버지가 말했다.


"코로나 검사 혔냐?"


"아니."


"내일 수술이디... 동의서 쓰고 집에 다녀올라고?"


"아니... 여기 삼촌네 집이 바로 옆에 있잖아... 그래서 거기서 잠자고 대기하고 있으려고 했지..."


"아? 그랴?"


"왜 병원에 계속 있어야 된데?"


"아니... 그냥 바로 집으로 가나 해서 물어본 거여..."


"아무튼 수술 동의서는 언제 쓴데?"


"선생님들이 연락 준댜..."


"아 그럼 삼촌네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네... 택시 타면 10분도 안 걸리니까..."


"그려..."


아버지, 나 그리고 동생은 그 병실 엘리베이터 복도에서 수술에 대한 이야기,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면 수술을 앞둔 가족들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말이 없어 침묵이었을 때도 있었고 시시콜콜한 일상의 얘기를 할 때도 있었다.

나와 동생의 애들이 크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또 옛날에 같이 살던 추억을 얘기하기도 했다.

아마 다들 걱정과 두려움을 먼저 보이는 게 싫어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걱정과 두려움을 드러내면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특히나 우리 가족은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것을 정말 싫어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농담도 섞어가면 이야기를 하던 중 내가 말했다.


"아빠, 아무튼 쉬고 있어... 전화하면 바로 동의서 쓰러 달려올 테니까..."


"그려... 알겠어..."


"수술 잘 될 거야... 그리고 기도해... 하나님한테... 살려달라고..."


"무슨 기도는..."


아버지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나도 사실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도를 하면 아무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께 기도를 하라고 나도 모르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시큰둥한 아버지의 반응에 내가 다시 한번 말했다.


"안 믿어도 상관없는데...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해봐..."


"알겠어..."


"아무튼 무슨 일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해... 대기하고 있을게..."


그렇게 나와 동생을 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삼촌네 집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아버지는 수술 전에 내가 자신의 곁에서 있어주길 바라셨던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이 나도 가장 후회스러운 부분이다.

아버지를 못 찾아봤을 때 보다 저 하루를 같이 못 보낸 것이 제일 큰 후회로 남아있다.

그날 같이 있었다면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까?

아마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훤히 보인다 나는 아버지옆을 떠나 아마 휴게실에서 티브이나 보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지만 그래도 같이 있을 걸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병원이 싫다고 해도 그날만은 같이 있었어야 했는데...

아버지도 겁이 났을 텐데...

난 왜 또 그것도 모르고 삼촌네서 대기하면서 자고 오겠다고 이야기했을까?

왜 나 편한 것만 생각을 했을까?

참 나라는 인간은 둔하고 배려심이 없는 아들인 것 같다.


사람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 수 없다.

알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저런 후회 따위는 남기지 않을 텐데 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안함으로 인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것이다.

나처럼 나의 편안함만을 생각하다가 아버지와의 하룻밤을 놓친 것처럼 말이다.

아무 대화가 오고 가지 않았어도 그 시간을 가졌다면 마음이 이처럼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까지도 마음이 불편하고 후회스럽다.

이러한 후회를 겪고 나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다.

앞으로 이러한 일이 또 일어난 다면 그때 나는 적어도 나의 생각과 반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후회가 없지는 않을 테지만 적어도 후회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일이 생겨서는 절대 안 되겠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난 무조건 나의 생각과 반대로 움직일 것이다.

그래야 내가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 동생을 삼촌댁에 도착했다.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기 위해 초조함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점심때부터 대기를 하던 나도 저녁 시간이 되자 조금씩 지쳐갔다.

그때 나의 휴대폰에 뜨는 서울삼성병원의 번호.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렇게 주치의 선생님과 아버지의 수술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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