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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인생의 르네상스 Feb 25. 2019

사바하를 보고(스포有)

고통의 의미 (스포 有)

지난 금요일에 혼자 영화 '사바하'를 보았습니다. 전날 예고편을 보긴 했지만 극장 가서 영화 보는 것은 1년에 한두 번 정도라 볼 마음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의아했습니다. 왜 보고 싶어 졌을까요? 왜 갑자기 극한직업도 아닌 사바하가 단순히 박스오피스 1위였기 때문은 아녔을 것입니다. 마치 운명처럼 아내에게 영화 보고 들어간다고 용기 내어 이야기하고 극장을 향했습니다.


금화 역을 맡은 이재인 님은 처음 봤지만 나머지 배우들은 참 좋은 배우들이었습니다. 연기력에 논할 필요가 없는 배우들이었습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많이 나와 있어 굳이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직장 생활에서도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높은 자리 가서 변했다고 수군거릴 때 말입니다. 저도 이런 소리를 많이 험담으로 했었고, 한편으로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놓치고 싶지 않았겠지요. 아니 놓치면 낭떠리지로 떨이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슬픈 집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리가 점점 자신이 되어가는 모습들이 바로 집착이며, 집착하게 되면 수치스러울 정도의 행동도 자신도 모르게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는 대부분 초라한 말로를 겪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집착을 승화시켜 버텨내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그 집착에 얼마나 집중했느냐, 그 집착이 얼마나 순수했느냐, 그 집착으로 인한 고통을 얼마나 버텨냈느냐, 이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에서는 엄청난 집착을 보여줍니다. 그 모든 여자아이들을 죽일 생각을 하다니 말입니다. 곡성 하고 비슷한 분위기가 있어서 조금 다르게 결말을 예상했었는데 영화는 다행히도 권선징악을 보여줍니다. (감독의 의지라고 합니다.)


실제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과 집착이 고통의 원인임을 말씀하셨지만 욕망을 없애는 것이 그 답은 아닙니다. 없애려는 그 자체도 또 하나의 욕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그 욕망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엔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은 작던 크던 고통의 연속입니다. 행복을 주는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고 그 영원하지 않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계속 이해해야 합니다. 순간순간의 나의 모습을 말입니다.


영화에서는 김제석 스스로가 깨우치지는 못합니다. 알았을 것 같기도 한데 멈출 수가 없었나 봅니다. 코끼리를 총으로 쏜 것을 보면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도 알고는 있었다고....


막이 내리고 꽤 긴 여운을 주는 영화입니다. 며칠째 이 생각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그리고 영화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얻었던 것일까요? 저도 올초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놓치기 싫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았지만 한 2주 동안은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요? 제가 원하는 그것과 김제석이 원했던 그것과 차이가 있긴 있었을까요? 머리가 복잡해지지만 한편으로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놓은 지금은 가벼워지기도 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결국 별것 아니고 영원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사상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의 집은 명절 때 절에서 차례를 지내고 있음에도 기복신앙이라는 거부감 때문에 좀 멀리했었는데 반야심경을 한번 읽고 싶은 욕망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평생을 가져가야 할 숙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 것일까요?


2~4세기 조성된 인도 간다라 양식의 고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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