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션머?(憑什麽?)

중국어 실수담

by 김동해

'핑션머'에 대한 인상

핑션머(憑什麽)? 핑(憑)은 기댈 빙이다. 션머(什麽)는 영어의 what(무엇)에 해당한다. ‘무엇에 기대서?’라고 딱 번역되면 좋겠지만, 핑션머(憑什麽)를 번역하려면 상황을 봐야 한다. 상황에 따라 ‘뭔 근거로?’, ‘뭘 봐서?’, ‘뭘 믿고?’, ‘뭔 까닭으로’ 등등으로 번역이 된다. 뭘로 번역이 되든 어쨌건 좀 힐책하는 투라는 걸 알아둬야 한다.

나는 핑션머(憑什麽)라는 말을 어학원에서 수업을 들을 때는 교재 속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물론 선생님이 말했었더라도 내가 이 단어를 몰랐었기 때문에 아마 안 들렸을 것이다. 그래서 어쨌건 내 계산상으로는 어학원 1년여를 다니는 동안 배우지 못한 단어다. 그런데 대만 드라마를 보면 그렇게 많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목소리가 달달한 옌청쉬(言承旭)에게 뻑가서 줄곧 옌청쉬 주연의 것을 찾아보던 때 봤던 드라마 '취상뢰저니(就想賴著妳)’를 보면서 이 단어가 귀에 딱 붙어 버렸다. 이 드라마에서 남주와 여주는 곧잘 티격태격 싸운다. 아주 잘나서 세상 모두를 무시하는 남주에게 대항해서 여주가 걸핏하면 '핑션머'하고 대든다. 남주와 여주가 싸우긴 하지만 이 드라마가 꽤나 달달하기 때문에, 나는 이 '핑션머'가 조금도 힐책하는 투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잘못 이해했다가 어느 날 대단한 실수를 하고 만다.


중국어 실수담

삐홍(碧紅)은 베트남 아가씨인데,베트남에서 대만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신랑을 따라 대만으로 살러 왔다. 대만으로 시집오는 베트남 신부의 지위는 한국으로 시집오는 베트남 신부와는 많이 다르다. 내가 대학원 과정을 다니고 있어서 만나지는 사람들의 폭이 대부분 학생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래저래 들어보면 대만 남자와 결혼하고 대만으로 이주하는 아주 많은 베트남 여자들은 대만 남자보다 더 유능했다. 그리고 사랑해서 결혼하는 아가씨가 대부분이지, 잘 사는 나라로 시집오기 위해 대만 남자와 결혼하는 게 아니었다. 내 인상 중 한국으로 시집오는 베트남 신부는 한국에서 신붓감을 찾지 못한 시골 노총각이 중매업체를 통해 소개받아서 데려온 가난한 나라의 아가씨다. 그리고 한국 생활이 좀 적응되고, 돈이 좀 만들어지면 도망을 가버리는 그런.

내가 한국인이다 보니 내게도 한국에서 보아왔던 편견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삐홍이 대만 남편이랑 시어머니랑 한 집에서 사는 이렇고 저런 이야기를 했을 때, 집안 일도 하나 안 하고, 한가하니 석사 공부나 하고 있는 그녀의 팔자가 놀랍도록 부러워서 ‘넌 어쩜 그렇게 시댁에서 사랑을 받는다니? 앙 부러워!’의 뜻으로 내가 뱉은 말이 ‘핑션머’였다. 그 말에 삐홍이 어떤 반응을 했던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딱히 기분상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말실수를 하고도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훗날 삐홍은 내가 언젠가 놀라워하며 ‘핑션머’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 내고 그때의 내 반응이 귀여웠다는 말을 꺼냈다. 비록 그녀가 '귀여웠다'라고 말했지만, 그녀가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뭔 실수를 했었는 지를. 그 상황에서 내가 ‘핑션머’라고 하면, '네가 뭐 잘난 게 있다고 남편과 시어머니 사랑을 그렇게 받고 산다니?'가 되어버리는 거였던 것이다. 대만 드라마의 여주가 ‘핑션머’할 때는 어찌나 깜찍하고 귀여워서 나는 ‘핑션머’를 아주 사랑스러운 단어로 기억해 버린 것이다. 삐홍이 그 일을 다시 한번 꺼냈던 그날, 나는 내 말실수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삐홍, 나, 그때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었어. 정말 미안. 넌 정말 씩씩하고, 의리 있고, 낙관적인, 멋진 아가씨야.'


또 하나의 중국어 실수담

나의 중국어 실수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국어의 어떤 단어들은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것과 긍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것이 딱 구분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지뚜(嫉妒)는 부정적인 뜻으로 '질투하다, 부러워하다'이고, 센무(羡慕)는 긍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그러니, 누가 대회에서 일등상을 받거나 한 것에 대해, '와우 너무 부러운걸'하고 말할 때는, 지뚜한다고 말하면 안 되고 센무한다고 말해야, 일등 한 것을 축하한다는 의미를 포함한 부럽다가 된다.

'아부하다'는 뜻의 중국어 '파이마피(拍馬屁)'라는 말도 부정적 뜻으로 쓰인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말 '아부하다'라는 단어 자체에는 부정과 긍정의 뜻이 있는 게 아니고, 말하는 사람이 어떤 의도로 쓰느냐에 따라 '아부하다'가 나쁜 뜻이 되기도 하고 좋은 뜻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 나는 한국말 '아부하다'에 해당하는 중국어 '파이마피'도 그렇다고 생각해 버리고는 지아훼이의 한 능력을 칭찬해 주겠다고 쓴 용어가 '파이마피'였다.

"지아훼이, 넌 정말 너무 자연스럽게 파이마피를 잘해. 이건 정말 너의 대단한 장점이야. 나, 널 좀 배워야 해."

내가 부러워하는 지아훼이의 능력 발휘 장면을 하나 이야기하면 이렇다. 지난 학기 같이 수업을 들었던 학과 친구들 몇몇이 연구토론회에 참석했다. 홍교수가 연구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게 되었는데, 루어삔이 교수의 사진을 찍어 단체톡에 올리며 '저 지금 교수님 강연 듣고 있어요'를 드러냈다. 나도 이어서, "교수님, 저도 왔어요."하고 문자를 올렸다. 교수는 거기에 화답하는 이모티콘을 하나 띄웠다. 지아훼이는 홍교수의 사진에 "교수님 섬광등을 달고 오신 것 같아요."하고 댓글을 달며, 연단에서 인사하는 모습이 블링블링하다고 추켜세웠다. 루어삔이 이어 또 문자 띄우기를, "오늘 교수님을 찾아 사진을 함께 찍어야겠어요." 했다. 지아훼이는 거기에 곧장 답글 달기를, "저도요. 핸드폰 안에 교수님의 독사진을 갖고 있고 싶어요."라고 했다. 루어삔이 내 옆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문자를 썼는지 안다. 그녀는 홍교수를 지도교수로 삼을까 말까 고민 중이라, 좋은 인상을 남기기겠다고 일부러 '아부하기 위해' 작정하고 한 행동이었다. 거기에 저 멀리 앉아 있던 지아훼이는 그냥 몸에 밴 채로, '아부'의 영역에 있어서는 남에게 질 수 없다는 잠재의식이라도 있는 듯이, 루어삔이 댓글 하나를 띄우면, 쾌속으로 루어삔의 아부를 능가하는 댓글을 달아 루어삔의 아부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아훼이의 이런 모습을 여러 번 발견했다. 혼자일 때보다 누군가와 아부를 경쟁할 때, 물론 그녀는 경쟁한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녀의 자연스러운 아부 능력은 툭하고 월등하게 튀어나왔다. 무슨 반사반응처럼. 나는 그녀의 이런 본능적 능력이 진심 부러워서 칭찬했던 것이다. "너 정말 아부 잘한다. 너무도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말실수는 무례함이 되기도

얼마 후에 루어삔이 누군가로부터 내 험담을 들었다며 전해주는데, 요점은 이렇다. "동해는 어떻게 사람을 앞에 대놓고 파이마피를 잘한다고 할 수 있는가, 어쩜 그렇게 무례할 수 있는가."

"난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진심 배우고 싶어서 칭찬이랍시고 한 말이야. 내가 '너 정말 파이마피 잘한다'라고 했을 때, 지아훼이 본인도 그 뜻으로 알아들었다고. "

"동해. 파이마피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단어야. 그렇게 말하는 건 칭찬이 될 수 없어."

"한국말에서는 '아부한다'가 부정적인 뜻이 아니야."

"중국말은 중국인의 사고방식으로 말해야 해. 한국어를 번역해서 중국어로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고."

"나는 외국인이잖아. 상대가 이해해주지 않을까?"

"넌 외국인이라고 할 수 없어. 그 정도 중국어 실력이면 그런 실수를 이해받으려고 하면 안 돼."

억울해! 내게는 '아부 잘한다'가 조금도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고! 그렇지만 루어삔의 말이 맞다. 나 혼자 그렇다고 생각하면 뭐 하냔 말이지. 중국어의 어떤 단어들은 부정적인 뜻으로 쓸 때 쓴다고 딱 정해져 있는 것을. 중국어, 이래서 어렵다. 한국인의 감으로 말하면 안 된다. 중국인의 사고로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중국어는 또한 말하는 사람의 입에서 말이 나와서 뜻이 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해석해 들으면서 특정한 뜻이 되는 언어다. 영어처럼 말이 나오는 즉시 그 뜻인 명료한 언어와는 다르다. 그래, 내가 좀 잘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