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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Feb 02. 2024

비가 자주 온다

태풍은 소리소문나게 지나간다

타이베이는 자주 비가 온다. 대만 전체가 그렇게 자주 비가 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수도 타이베이가 특별히 비가 많이 온다. 여름에는 낮에 우산을 쓰도록 비가 오는 날보다, 밤새 비가 오다가 아침에 해가 뜰 쯤에 멈추는 식으로 비가 오는 날이 더 많다.

  새벽녘 침대에 누워 잠이 깰 듯 말 듯할 때 듣는 빗소리가 참 좋다. 내가 타이베이에 온 후로 줄곧 살고 있는 셰어하우스는 2층인데, 베란다에 플라스틱 슬레이트가 쳐져있어서 빗발이 좀 굵을라 치면 빗소리는 와장와장하고 과장되게 들린다. 나는 그 소리가 한없이 좋다. 

 

  타이베이의 비는 겨울에 더 많이 오는 것 같다. 어느 해에는 한 달을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밤에도 오고 낮에도 오고. 타이베이는 그래서 집집마다 건조기가 필요하고, 제습기가 필요하다. 

  겨울비가 쉬지 않고 내릴 때는 이틀이고 삼일이고 빨래가 안 마른다. 침대 매트도 짜내면 물기가 나올 것처럼 축축하게 느껴진다. 그런 침대 속으로 몸을 누이자면 좀 끔찍한 느낌이 들 텐데, 나 말고는 다들 잘 지낸다. 나는 겨울이면 찜질용 매트를 발아래에 놓고 침대 속을 나름 일본식 코타츠로 만들어서 지낸다. 


  한국사람들 입장에서는 너무 뜨거운 여름보다 겨울에 타이베이 여행을 오고 싶을 터인데, 겨울에 날을 잘못 선택하면 날마다 날마다 빗속을 걷다가야 한다. 안전하려면 한국의 초봄이나 늦가을을 선택하면, 비를 만날 확률은 줄이면서 시원한 날씨에서 여행할 수 있다. 


  해마다 태풍도 그냥 조용히 지나가는 법이 없고 소리소문나게 지나간다. 어느 해에는 예닐곱 개, 어느 해에는 적어도 서너 개. 

  대만에는 타이펑지아(颱風假,태풍 휴가)라는 것이 있다. 태풍이 너무 심할 것 같으면 정부차원에서 학교도 직장도 다 쉬라고 한다. 나는 두 번의 타이펑지아를 기억한다. 

  한 번은 랭귀지스쿨에 다닐 때였는데, 그 하루 쉰 것을 보강도 안 해줘서 성질이 났더랬다. 나는 그때 하루 3시간 수업하는 밀집반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3개월치 학비가 대만돈 36만 원 정도였으니 한국돈으로 백사십만 원쯤, 한 달에 50만 원 꼴이었다. 국립대학의 한 학기 학비가 대만돈 25만 원쯤인 것을 생각하면 랭귀지스쿨의 학비는 꽤 비싼 편이다. 그러니, 타이펑지아로 하루 3시간의 수업이 날아가는 것이 돈을 잃어버린 만큼이나 아까웠더랬다. 

  타이펑지아를 두 번째로 겪은 것은 석사 공부를 할 때다. 그해 3과목 9학점을 듣고 있을 때였는데, 숙제가 많아 허걱거릴 때였다. 월요일 발표를 해야 하는데, 준비는 정말 하기 싫고, 누워서 발표할 문장을 뻥긋뻥긋 연습해보고 있을 때, '내일 타이펑지아'라는 소식을 룸메이트로부터 듣는다. 룸메이트는 막 대만에 도착해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햇병아리였는데, 나보다 소식이 빠르다. 발표를 한 주 미룰 수 있어서 어찌나 행복하던지. 

  사실, 타이펑지아까지 실시하지만, 태풍은 그렇게 무서운 기세로 지나가지는 않는다. 태풍 방학까지 할 정도면 절대 밖에 나가면 안 되도록 그렇게 대단한 비바람을 떠올릴 텐데, 사실 다음날 나가보면 그냥 나뭇가지 몇 부러진 정도다. 

  

  나는 우울질이어서 그런가, 비 오는 타에베이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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