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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Feb 18. 2024

나, 적응할 수 있을까?

맥북과 친해지기

  쿠팡의 할인율이 높던 날 일단 주문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도착한 맥북을 박스채로 한 달여를 방치했다. 


  내 게으름을 잘 알아서 맥북에 적응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삼성을 사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가, 그 밤에 나는 뭔 생각으로 주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조카가 오늘 할인률이 최고로 높다고 오늘 사면 얼마나 수지맞는지 모른다고 꼬드겼을 때, 귀가 얇아서 그 소리에 꼬임을 당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남들은 다 애정하면서 쓰는 것을 나라고 못쓸까 하는 쓸데없는 오기로 조카에게 카드를 내줬다. 조카는 이모를 '애플 세계'로 끈 것에 성취감을 느끼며 신나게 주문을 했다. 

  밤 11시가 넘어 주문한 것이, 하룻밤 취소를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다음날 새벽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 이런!' 하는 뜨끔함이 들었다. 그리고는 거들떠보기도 싫어 박스도 뜯지 않은 채로 버려뒀다.


  "이모는 왜 그래요? 사놓고 뭐 하는 거예요? 후회가 되면 당근에 내다 팔아줄게요." 

  조카의 잔소리를 듣다 듣다 귀찮아져서 박스를 깠다. 까만색을 샀는데, 열어보니 자태가 나름 괜찮은 것 같다. 나는 컴퓨터를 기능으로 볼 줄 몰라서, 예쁜가 안 예쁜가로 판단한다. 첫날은 상당 기분이 좋았다. 일단 예쁘니까. 가장 걱정했던 것은 모니터가 작아서 노안으로 보기에 불편하면 어떡하지였다. 노트북을 깠을 때 그건 기우였음을 깨닫는다. 거의 워드작업만 하는 나로서는 전혀 불편하지 않을 크기였다. 차라리 널찍했다. 


  적응을 해야 하니, 내가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을 열어 테스트를 해본다. 워드를 열었다가 기겁을 하고 만다. 탐색창을 왼쪽에 열고 논문 목록이 쭉 뜨도록 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게 논문을 쓸 때는 꼭 필요한 기능이다.  그 탐색창이 윈도버전이랑 다르다! 각각의 목록이 한 줄 한 줄의 흰색칸과 다음의 회색칸에 넣어져서 보이는 식인데, 이러느라 한 줄 한 줄이 차지하는 공간이 많아서 목록이 쭉 늘어져서 스크롤링을 많이 해야 되게 생겼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탐색기능을 가동했는데, 이백페이지가 넘는 문서 안에서 내가 찾으라는 글자가 너무 많다고 못 찾는 것이다. 

  "조카, 왜 워드가 윈도버전이랑 좀 다르다고 말해주지 않았어?"

  "뭐가 다르다고 그래요?"

  "달라. 다르다고."

  또, 작업해 둔 워드 파일은 너무 늦게 열린다. 그래 내 워드파일은 페이지 수가 좀 많긴 하다. 하지만 윈도에서는 한 번도 미적거리며 열린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조카가 노트북 설정을 하면서 중국어 간체를 깔아놨다. 나는 대만 유학생이라 번체가 필요하다. 윈도에서는 shift+ctrl+F로 간단히 번체 간체를 왔다 갔다 하면 된다. 맥북의 간번체를 어떻게 바꾸는지 아직도 못 찾았다. 검색을 했더니, control+option+shift+command+C 가 간체자와 번체자 변환 단축키라는데, 해봐도 안된다. 되었던들, 이걸 어떻게 단축키라고 할 수 있냔 말이지. 무려 키가 5개다. 도대체 5개의 단축키는 어떻게 누르라는 건데? 우리의 손가락이 10개이긴 하다.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오늘은 트랙패드마저 싫다. 사람들이 그랬다. 맥북은 트랙패드가 너무 잘 움직여서 마우스가 필요가 없다, 트랙패드에 적응되면 마우스는 그냥 쓰고 싶어지지 않는다, 밖에서 마우스 없이 사용할 때면 완전 자유를 느낀다, 등등. 한두 번 쓸 때는 나도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나처럼 하루 종일 문서작업을 하는 나로서는, 마우스로 바로 클릭하는 것이 시간 절약이 되는 것 같다. 문서 작업에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블록을 지정하느라 오른쪽 검지 손가락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질 지경이라는 것이다. 


  나, 적응할 수 있을까? 

  조카가 그랬다. 

  "이모는 아기같이 몰랑몰랑한 뇌로 산다면서요. 아기같이 열린 마음으로 적응해 보세요."

  새로 적응하는 일이 이렇게 귀찮을 줄을 누가 알았나? 내 게으름을 너무 낙관적으로 봤던 것 같다. 


  인터넷으로 읽던 대구전자도서관 책도 볼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난 겁나서, 다른 새로운 건 아예 시도도 안 하고 있다. 아직 인터넷뱅킹을 써보지 않았다. 인터넷 쇼핑도 안 해봤다. 더 실망할까 봐. 


  그렇지만, 적응해야 한다. 그래서 '이 이모는 아기 같은 열린 마음이 있다!'를 증명해야 한다.




2024. 03. 03 맥북 사용 한 달 후에야 중국어 번체 쓰는 방법을 알아냈다.

2024. 03. 06 마우스를 쓰면 문서 편집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스크롤 버튼이 윈도와 반대로 움직이는 것에 적응해야 한다.

2024. 03. 08 화면을 둘로 나눠 쓰는 방법을 알아냈다.

2024. 04. 06 윈도우와 똑 같은 그림판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뭘 써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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