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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Feb 15. 2024

게으름에 대한 변명

  상담실에서 "난 참 게을러요."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의 생활패턴을 보면 그렇게 게으를 것도 없다. 7시 전에 눈을 뜨고,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를 단정히 개킨다. 일어나서는 곧장 세수를 하고, 그날 수업이 있거나 친구와 약속이 잡혀 있으면 바로 단장을 한다. 그리고는 제법 잘 차린 아침을 먹으면서 인터넷 중국어 신문을 읽거나, 종이로 된 중국어 책을 읽거나, 한국어 전자도서를 읽거나 한다. 수업이 없는 날의 오전은 숙제를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어쨌든 책상에 앉아 뭐든 하고 있다. 점심을 먹으며 중드를 좀 보고. 오후 시간에도 숙제가 되었든 독서가 되었든 뭐든 하고 있다. 저녁을 먹으며 중드를 또 좀 보고. 저녁 걷기 운동을 한 시간쯤 갔다 온다. 씻고 머리를 말리고 누우면 9시나 10시쯤인데, 자기 전에 또 한 두 편 중드를 본다. 

  상담실에서 그렇게 말을 한 후 그건 맞는 말이 아닌 것 같아 곰곰 생각해 봤다. 나는 왜 나 자신을 게으르다고 생각하는가? 

  '생각을 하기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냥 머릿속이 텅 비어 있는 것이 좋다. 자잘한 생각들이 들어와서 재잘거리는 것이 싫다. 이런 게으름은 반겨도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나의 게으름을 싫어하지 않기로 한다. 


  몇 년 전부터 구독하고 있는 유투버 라오까오(老高)의 영상을 보다가 내 게으름에 힘을 실어주는 이야기 하나를 또 들었다. 부처님이 그랬단다. 사람은 7종의 저층 욕망을 갖고 있는데, 생존욕, 수면욕, 식욕, 성욕은 가장 저층의 욕망이고, 그 위에 조금 더 고급한 것으로, 게으름욕, 향락욕, 인정욕이 있단다. 내가 게으름음 피우는 것은 7종 저층 욕망 중에서는 그나마 상층 욕망을 추구하는 거니까 게을러도 되지 않을까? 

  이 욕망들은 우리의 의식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잠재의식에 의해 움직인다지 않나. 굳이 의식을 발휘하여 잠재의식과 대결을 벌일 건 뭐냐. 나는 평화주의자니까, 그냥 게으르게 사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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