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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Feb 19. 2024

속이 좁아서

아가씨의 생속

  컴퓨터를 붙잡고 열심히 놀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의 친구분이시다. 오늘 엄마는 동갑계모임이 있다. 엄마의 계모임은 식당에서 만나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이 다다. 엄마의 친구분이 식당으로 가지 않고 엄마를 찾아온 것은 시간이 너무 일러 식당에서 기다리기는 뭣하고 해서 잠깐 들어와 앉아 시간을 때우려는 것이다. 나는 그걸 알았다. 

  "엄마 평생교육 수업 들으러 가시고 안 계세요."

  "오늘 계모임 있다고 안 하시더나?"

  "수업 갔다가 계모임 바로 가신다고 하셨어요."

  "아이고 엄마하고 똑같이 생겼네."

  (살다 이런 말은 처음 들어본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 진짜 그런지 어떤지는 몰라도 늘 그렇게 듣고 살았다.)

  "아, 예."

  "첫째 아니고 둘째 딸이가?"

  "네."

  엄마가 안 계시지만 들어와 앉아계시다 가라고 말할까 말까 갈등이 인다. 일단 들어오시라 하면 차를 내오네, 과일을 대접하네 하는 것이 귀찮아서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보다, 내 시간을 방해받는 것이 좀 싫다. 나는 지금 컴퓨터와 아주 재미있게 놀고 있는 참이란 말이지. 그것도, 엄마가 집을 비운 조용한 하루를 즐기고 있는 중이란 말이지.

  "결혼이나 좀 하지."

  '엥?' 난데없이 이건 무슨 어퍼컷? 남이사 어떻게 살던지 뭔 상관이란 말이야! 

  그냥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 사람에게 말 건네는 방식이 저런 것이겠거니 하고 넘어가면 좋겠지만, 나는 속이 좁아서, 어른들이 말하는 시집 안 간 여자의 '생속'이어서, 신경질이 발끈 난다. 내 고요한 하루를 방해당한 것만도 짜증이 올라오려는데, 이건 뭐 가만있다가 한 대 맞은 기분이 아닌가. 

  엄마 친구분은 그러고도 한참을 문 앞에 서서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끌었지만, 나는 "들어오셨다 가세요"라는 말을 끝내하지 않았다. 

  "어이쿠, 내가 일찍 도착해서 좀 앉았다 가려고 들렸는데 엄마가 없구나." 했으면 나는 아주 공손하게 들어오시라고 하고 대접을 했을 것이다. 

  내 목적은 '이것'이지만, 내가 '저것'을 이야기해도 네가 알아서 눈치채서 '이것'을 해달라고 하는 노인들의 이 대화방식을 나는 상당 싫어한다. 이미 나의 엄마한테 늘 겪고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그걸 요구했을 때는 손톱만큼도 인내되지 않는다. 

  '우리 엄마 하나만으로도 족하다고요!'

  그래, 당신이 당신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렇게 둘러 이야기하면, 나도 '전 센스가 없어서 그런 거 잘 몰라요'를 해주겠다 이다.


  통 큰 사람이고 싶은데, 나는 그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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