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면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땀을 뻘뻘 흘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겨울에도 덥다고 창문을 열어 젖혀서 남편과 말다툼을 하느니 마느니 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고서도 그 증상이 없어 참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일찌감치 운동을 시작해서, 안면홍조 없이 곱게 지나가나 보다 싶었다.
웬걸, 나라고 자연의 법칙을 어캐 피해 가리? 드디어 내게도 그 증상이 찾아왔다.
갑자기 더워지는 이 느낌은, 겨울날 따뜻한 아랫목에서 데워져서 온몸이 따끈해진 것과 다르고, 운동을 하고 난 후에 온몸이 덥혀져서 땀이 흐르는 것과도 다르고, 사우나에서 일부러 온몸을 익혀서 뜨거운 것과도 다르다. 이건 완전 불쾌한 뜨거움인데, 몸에 어떻게 이런 불쾌함이 덮칠 수 있는가 싶은 악마적 질척한 뜨거움이다.
남자의 중년이 어떤지는 모르겠고, 여성의 중년은 월경이 끝나기 한두해 전에 이미 시작되는 것 같다. 나는 월경이 끝나기 삼사 년 전 어느 날 허리에 겁나게 바람이 일면서 노화가 시작되었다. 그 해에는 여름에도 허리를 작은 담요로 둘러서 지냈다. 허리가 시려서 에어컨 바람을 쐴 수가 없었다. 한해 겨울을 생강차를 좀 끓여 먹고, 엄마에게 들어온 홍삼 보양품 선물을 내가 다 털어먹고서 허리가 시린 증상이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노화를 잊었다. 나는 노화를 잘 방어한 줄 알았다.
그러나, 몇 년이 흘러 정말 생리가 끝나자, 나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내게도 온몸이 갑자기 더워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얼굴이 붉어지지 것도 아니고, 땀이 줄줄 흘러 사람을 만나는데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다, '너라고 별 수 있어?' 하는 노화의 위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