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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Jun 18. 2024

시간을 소모하는 일

     내가 구독하는 유투버 라오까오(老高)가 구독회원의 질문에 답한 짧은 영상에서 인생의 의미가 뭐냐는 질문에, '샤오무어스지엔(消磨時間[xiāomó shíjiān])'이라고 답한 영상을 우연히 봤다. 샤오무어스지엔(消磨時)은 '시간을 써서 없애다/흘려보내다/소모하다'는 뜻이다. 


    "인생은 순전히 각종방법을 이용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일을 하는 것도 시간을 소모하기 위해서이고, 공부를 하는 것도 시간을 소모하기 위해서이다. 네가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뭔가를 연구해서 인류에 공헌했다고 하자, 그래봤자 늙고 죽는 것 밖에 더 없다. 인류가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내고, 우주 근원을 탐구한들? 그렇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데? 그래봤자 늙고 죽는 거밖에 더 있나. 시간을 잘 보내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유투버 라오까오(老高)는 우주의 근원이며 외계인이며 이런 이야기를 주로 하는 유투버라 그의 비유에 화성, 우주선, 우주 근원 이런 걸 쓴다. 


    이렇게 글로 옮기고 보니 어째 그의 사고방식이 매우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것 같지만, 그의 말을 직접 들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말 끝에 그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생 재미있게 살자!'였다. '즐겁게 사나 걱정하며 사나 어차피 죽기 위해 사는 건데, 뭐 하러 걱정하며 사나?'는 것이었다. 인생 재미있게 사는 방법?, '각자 자신이 재미를 느끼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그걸 즐기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다. 

    

    나는 라오까오(老高)의 이 생각에 아주 동의하는 사람이다. 인생이란 죽을 날이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어차피 죽을 건데 열심히 살아 뭐 해?' 하고 기다리면 지겨워 죽는다. 그러니 죽을 날이 올 때까지 지겹지 않도록 뭐든 즐거운 거리를 찾아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나는 젊어서는 술집에서, 산에서, 야구장에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직 내 성격의 결이 서지 않았던지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쉬웠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시간을 보내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은 대체로 아주 쉬운, 즐겁게 시간을 소모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중년이 되어 내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조금 알아지자, 나와 다른 가치관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힘겨운 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나는 외국어를 배우며 내 나라가 아닌 땅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데, 사실 이것도 시간을 소모하는 딱히 성공적인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왜냐면, 가끔 고독하고, 고독을 느끼면 시간은 딱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백 살까지 산다는 것이 어떤 건지 경험해보고 싶기 때문에 백 살 넘어까지 살아볼 생각인데, 아직 반이 더 남았으니 죽는 날을 기다리는 일이 지루하지 않으려면 뭔가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나, 뭘 할 때 시간이 가는 줄 모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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