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결벽증

사람을 만나는 게 싫은 것에 대한 변명

    차라리 이 능력이 안 생기는 게 나았으려나? 내게 언제 이런 능력이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그냥 생겨나나? 아님 상대가 감추려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느끼나?

    상대가 뱉어내는 말이 전하는 내용이 뭣이건 그건 상관없고,  상대의 눈빛이, 자연스럽지 않은 동작이, 억지로 웃어 보이는 얼굴 근육의 어색함이 너무 느껴질 때가 있다. 상대가 내 앞에서 쉼 없이 말하고 있지만, 지루해한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외롭다. 

    그래서 점점 사람 만나는 게 싫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더 외로워지는데 뭐 하러 만나느냔 말이지. 그래서, 사람들은 반쪽을 찾아 결혼제도 속에 묶여 사는 것일까? 결혼제도 속의 반쪽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의무를 지기로 약속한 사람이니까? 상대가 내게로 보내는 관심이 옅어지면, '당신 변했어!'하고 따지고들 수라도 있으니까?

    요새 젊은이들을 만나면, 비록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지만 외롭다는 걸 더 느낀다. 만나고는 있지만, 다들 자기 일을 하고 있다. 요새 젊은이들은 음식 사진을 찍고, 오늘 우리가 누구랑 모여 얼마만큼 재미있게 놀았는지를 보여줄 단체 사진을 찍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찍은 사진은 집에 가서 처리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수정을 하고 SNS에 올리고, 돌아오는 반응에 답을 보낸다.

    '이럴 거면 뭣 때문에 날 보자고 한 거야?' 나는 그들을 지켜보며 좀 기가 찬다.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누군가와 사교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나라는 배경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난, 이런 게 싫다!

    내 나이또래를 만나야 할까 보다...... 그것도 정답이 아니란 것쯤, 사실 안다. 

    뭐, 사실 나도 상대에게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문자에 더 이상 댈 핑계가 없었기 때문에 나가 앉아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더 나쁜가? 

    중국어로는 칭깐지에피(情感潔癖, 정감결벽)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는데, 한국어에는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그 병이 있다. 칭깐지에피(情感潔癖)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대방에게 절대 순결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 내 기분이 별로인데, 그냥 아무나 만나 수다나 한 바탕 떨자', 이런 건 내게 상대를 기만하는 일이고 상대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서 하면 안 되는 일이다. '오늘 기분이 울적하다, 그/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로 상대를 불러낼 수는 있다. 뭐가 다르냐고? 전자는 내가 감정적으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이용하는 것이고, 후자는 내가 상대를 좋아하고 믿기 때문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니 달라도 크게 다르다.

    이런 감정 결벽증은 나를 더 외롭게 하기 때문에 좀 고쳐볼 생각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누가 만나자면 그냥 만나고, 나도 심심하면 누구든 집히는 데로 불러내고. 

    나, 정말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