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는 꼭 나는 곳에 난다. 사람 머리에도 뿔이 두 개 생긴다면 딱 요쯤에서 솟아나겠다 싶은 곳에 새치가 생긴다. 머리카락을 아래로 빗어 뒷목덜미쯤에서 질끈 묶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좀 예쁘게 단장하는 날에 머리카락을 아래가 아니라 위 방향으로 끌어올려 똥머리로 묵게 되면 이 부분의 새치가 메롱하고 드러난다. 애써 똥머리를 묶어 단장한 참이라 새치가 그럴 수 없이 거슬려서 보여서, 보이는 대로 죄다 뽑아냈다.
나는 새치가 보이는 것이 참 싫다. 새치를 누군가에게 들킨다는 것은 늙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인정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외출 때도 핀셋을 가방에 넣고 나가서, 우연히 거울에 비친 모습에서 새치를 발견했다 하면 그걸 뽑아야 직성이 풀렸다. 나는 노화를 반겨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어쩌다 본 유튜브 영상에서, 중년 여자들이 머리 손질을 할 때 어떻게든 머리가 풍성해 보이도록 하는 데 애를 쓰는 모습을 봤다. 중년이 되면 머리숱이 적어지기 때문에 웨이브를 넣어서 머리카락이 머리 가죽에 초라하니 달라붙지 않게 띄우는 것이 머리 손질의 핵심이었다. 나는 그 영상을 보면서 더럭 겁이 나는 것이다. 이렇게 자꾸 새치를 뽑다 보면 어느 순간 딱 그 부분이 휑하니 비어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내가 젊어서 눈썹을 눈썹칼로 밀지 않고 열심히 뽑았더랬는데, 나이가 들고 나니 열심히 뽑았던 그 자리에 더 이상 눈썹이 자라지 않아서 고민스럽게 되어버렸는데, 머리카락도 그렇지 않겠냔 말이지.
'그래, 새치를 이제 그만 뽑기로 한다!'
새치도 머리카락인데, 머리카락이 없는 것보다야 하얀 머리카락이라도 있는 게 낫지 않겠냔 말이지.
세월은 '당신이 중년이 된 것을 받아들이도록 해주겠어!'라고 각오한 듯이 내 머리카락을 뺏아간다. 머리를 감을 때면 이러다 남아나는 머리카락이 있겠나 싶도록 한 움큼 빠지고, 머리를 말릴 때도 머리를 감을 때의 반만큼이나 빠진다. 사실, 머리숱이 엉성해질까 봐 이렇게 걱정을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내 머리카락은 아직 거의 십 대 소녀만큼 풍성하긴 하다. 젊어서는 머리숱이 끔찍이도 많아 파마를 하면 사자머리처럼 되어 버려 머리숱 많은 게 저주처럼 느껴졌었는데, 중년이 되자 이게 도로 복이 되었다!
젊어서는 이 신체가 나와 100여 년을 함께 살 것이라는 생각보다, 지금 당장 예쁜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예뻐 보일 것만 고려해서 이런저런 조치를 했다면, 이제는 100년 동안 아름답게 보일 방법을 최고로 삼기로 한다. 그래, 이제부터 새치도 사랑해 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