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중국어 신문을 읽다 발견했지 싶다. 내가 읽고 몰래 웃은 내용은 대충 이렇다.
<한 젊은이가 전화하는 것을 왜 싫어하느냐는 질문에, '실시간으로 대화한다는 것은 뭔가 어색하고 즉각 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져서 싫다'라고 답했다. 여기에 대해 한 박사가 해석하기를 '전화를 하는 것은 더 노골적이고, 더 높은 수준의 친밀한 관계를 필요로 한다. 반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비교적 소원해도 되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연약함을 느끼지 않고 연락을 취할 수 있게 해 준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대한 선호와 재택근무 추세가 추세가 증가함에 따라, 우리는 자연스레 대화 나누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는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친밀감이나 유대감을 잃을 수도 있다'라고 예측했다.>
나는 MZ세대가 아닌데, 전화하는 것도 싫어하고, 전화받는 것도 아주 싫어한다. 신문을 읽다가 나의 이런 구석이 젊은 세대와 닮았다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나이가 들고나니 '나 아직 젊어!'의 증거를 자기도 모르게 찾게 된다. 그리고는 혼자 몰래 즐거워한다.
사실, 내가 전화를 받는 것도 하는 것도 굉장히 싫어하게 된 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대학 신입생 때 마음에 드는 선배가 있었는데, 나는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물론 지금도 없기는 마찬가지고), 먼저 전화할 수는 없었고, 그 선배로부터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갓 대학신입생이 되었던 시절에는 핸드폰을 쓰는 사람들이 없었다. 한두해 후에 삐삐가 등장했다. 그러니 내가 기다린 것은 집전화다.) 전화벨이 울리면 그 잠깐 사이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는데, 저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내가 좀 귀찮다고 생각했던 다른 늙다리 선배의 목소리이었다. 매번의 기대가 그렇게 매번의 실망이 되기를 한두 해를 겪으면서, 내게 '전화'라고 하면 '극도의 불쾌감'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내 핸드폰은 침대에 누워 중드를 보기에 적합한 크기의 화면을 가진 전자기기일뿐이다. 연락을 주고받는 통신도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