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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Feb 17. 2024

유튜브 영상으로 배우는 연애

내가 깨달은 것들

연애 가르쳐주는 유튜브 채널

  중국 드라마를 모아둔 사이트가 버벅거려서 유튜브를 켰다가, 문득 올라온 영상에서 남녀 애정문제에 관해 조언하는 채널을 하나 클릭해 봤다. 다음날에는 비슷한 채널이 하나 더 자동으로 떴다. 유튜브 채널 하나는 비슷한 또 하나를 부르고, 또 하나는 다른 하나를 불렀다. 그래, 내가 구독하는 연애 코치하는 유튜브 채널은 무려 일곱 개로 늘어났다. 

  <貝克書>, <阿畫>, <77老大>, <路遠情長>, <謝雨的戀愛筆記>, <男閨蜜KZ>, <Mr夏>가 그 채널 이름들이다. 앞 세 개는 대만 유투버이고 나머지는 중국이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3가지 신호', '짜난(渣男, 쓰레기 같은 놈)을 구별하는 방법', '당신이 싱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같은 시답잖은 영상들이지만, 한동안 열심히 봤다.


  <77老大>와 <男閨蜜KZ>의 영상에는 수위 높은 이야기가 많다. 야한 이야기를 대체로 좋아하는 나로서도 어떻게 저런 걸 대놓고 말하나 싶도록 민망한 것도 있다.  <男閨蜜KZ>는 막상 본인이 진짜로 한 경험은 별로 없다. 다 듣고 보면 주변인들의 경험 이야기거나, 자기가 실험을 해봤더니~이다.  <77老大>가 이 중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데, 77이 77년생을 말하는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 그는 한의사인 듯도. 실제 경험이 제일 많아 보이는데, 그의 영상을 보다 보니 어린 <貝克書>나  <阿畫>가 하는 이야기는 시시해져 버렸다. 실전과 학습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라서. 


  <路遠情長>의 영상은 중국말로 하면 참 원삔삔(文彬彬)하다. 고상하고 품위가 있다는 말이다. 그는 종종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들고 와서 자기주장의 근거로 든다.  

  <謝雨>는 귀여우면서도 참 밉쌀스런 류인데 말이 겁나게 빠르다. 일곱 명의 유투버 중에 유일하게 결혼을 했다. 결혼반지 낀 손을 어찌 너펄거리고, 아내 이야기를 가끔 한다. 결혼과 비슷한 시기에 방송을 중단해 버렸다. 

  <Mr夏>는 오프라인의 사업을 확장한다던가 뭐 그런 소리를 좀 하더니 더 이상 새로운 영상을 올리지 않는다. 나는 그가 양성애자라고 감히 추측해 본다. (대만에 살면서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들을 많이 봐서, 이런 촉이 좀 생겼다.)

 

내가 깨달은 것들

  하나, 연애하는 거 너무 어렵다!!


  <男閨蜜KZ>가 하는 말이, 상대에게 목매고 있지 말고, 혼자서도 자신의 생활 속에서 충실하고 즐거우면 아주 매력적으로 보여서 남자가 끌려 올 거란다. 그렇지만, 그를 유혹하기 위해 겉만 즐기는 것처럼 바꾸는 것은 너 자신의 본질을 바꾸지 못해서 그를 유혹할 수 없다고. 너 자신이 정말 그렇게 바뀌어야 된단다. 사실, 자기 자신을 그 경지로 바꿀 수 있으면, 상대가 딱히 필요 없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77老大>의 영상을 보다가 난 역시 짝사랑이 적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거기에 악취가 어째어째서 남편이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내가 살고 있는 상상의 세계는 모든 게 너무 이상적이고 아름다운데, 현실은 추해서 도저히 이 상상의 세계를 벗어날 자신이 없는 것이다. 남녀가 신체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이런 면까지 들춰봐 지는 것이었다.

  연애, 난 도저히 못하겠다 싶다. 대학생 때 다 뗐어야 할 이런 감정 학습을 나는 도대체 어쩌다 그냥 지나와 버려서....

  '연애하는 게 너무 어렵군'은 그냥 말하기 좋은 핑계고, 진짜 이유는 슬프게도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그러니, 일단 내가 나를 예뻐해 준 후에, 건강한 상대를 찾기로 한다. 급할게 뭐 있나. 젊은 아가씨의 참신한 살결로 수줍은 것 말고는 딴 걱정이 없을 나이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좀 더 늦는다고 큰 일 날일 없다. 


  둘, 나는 연애를 못할 요소를 모두 갖췄다!


  내가 나를 모태솔로라고 하면 좀 맞지 않겠지만, 늘적지근하게 누구를 오래 사귀어 본 경험이 없어서 사실 한 번도 연애를 못 해본 느낌이다. 연애를 가르쳐주는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서 깨닫기를, 나는 연애를 못하고 사는 모든 요소를 갖췄다! 너무 갖췄다! 

  게을러서 예쁘게 단장할 줄 모르지. 남자를 유혹하도록 예쁘게 웃을 줄도 모르지. 게을러서 나다니기 싫어하니 사람을 만날 수가 있나. 남자성격처럼, 같은 공간 안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면 그게 연애지 뭔 대화는 대화인가 싶도록 말하는 걸 싫어하지.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트릭을 쓰는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지도 모르지. 

  참, 난감하다.


  셋, A는 나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路遠情長>의 설명에 의거하면, A는 나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A는 대학시절 내 첫사랑이자 짝사랑이다. A는 나를 한 번도 단독으로 불러내 데이트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툭하면 한동안 사라졌다가, 그냥 어느 순간 나타났다. 나는 A에 대해 조금의 영향력도 가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철든 여자애들과는 다른 내 반응을 재미있어했지만, 내가 여자로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끔찍이도 오래 짝사랑을 했다. 정말 바보스럽다. 하지만, 그런 나를 용서해 주기로 한다.


넷, 짝사랑도 즐거운 놀이일 수 있다.


  <謝雨的戀愛筆記>의 영상에서 완안리엔(玩暗戀)이라는 용어를 발견한다. 완((玩)은 '놀이하다'의 뜻이고, 안리엔(暗戀)은 '짝사랑'이다. 즉, '짝사랑 놀이'라는 뜻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성인이기 때문에, 짝사랑을 즐기는 것도 성인들이 노는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시절에 누군가를 짝사랑할 때는 그걸 상대에게 들킬까 봐 꼭꼭 숨겨가며 안달복달했지만, 성인인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느끼는 그대로 '표현해 가면서' 짝사랑을 즐기라는 것이다. 짝사랑은 연애를 하는 것에 비해서 구속도 없고, 시간을 뺏기지도 않고, 상처받을 일도 없으니, 좋다면 좋다는 것이다. ‘완안리엔(玩暗戀)’이라는 표현을 들으면서 나도 그래보고 싶은 것이다. 느끼는 대로 상대에게 '표현하는' 짝사랑!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지 어쩐지 마음 졸여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영 즐거운 것이다. 


다섯, 사랑은 경제적 계산에 좌우되는 일.


  <男閨蜜KZ> 본인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고, 제 짝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느라 아직도 싱글이지만, 영상에서 펼치는 이야기 논조는 '사랑은 경제적 계산법에 좌우된다'이다. '돈'이라는 조건은 '잘 생겼다'나 '유머러스하다'는 조건에 비해 월등하게 가치가 높아서, 사람들이 '사랑'과 '돈'을 직접 연결시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할 뿐이지, 사실은 다 거기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계산기를 두드렸는데 상대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이다. 그건 금전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정서적 안정일 수도 있고, 뭐 여러 가지지만, 어쨌든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라는 것이다. 

  어째 식물스런 나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 속에서 먹고사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을 때는 결혼 같은 것은 생각도 않았다. 결혼 적령기에 결혼을 해보겠다고 선을 본 것은 사랑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돈을 벌어와서 기꺼이 나를 위해 쓸 남자를 찾아보겠다고 애쓰던 시기였다. 혼자 사는 것이 더 편하도록 적응이 된 지금에 와서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도 노년이 외로울까 두렵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 상대에게서 덕 보자는 심뽀인 것이다. <男閨蜜KZ>의 판단법이 참 맞는 것 같다. 


남편이 있어야겠다

  중드 <북철남원(北轍南轅, 2021)>을 보다가 늙어서 혼자일 때, 하루 종일 한마디 말을 나눌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좀 섬뜩하도록 느껴졌다. 그리고는 아, 남편이 필요하겠다, 반쪽을 꼭 찾아야겠다 싶은 것이다. 


  <路遠情長>의  말,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다 받아주는 바로 그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 딱 그런 사람이 지금 당신을 찾아오는 길 위에 있는 중이라는 말에 힘을 얻어서, 오늘부터 믿고 기다려보기로 한다. 하늘이 날 혼자 고독하게 늙어 죽도록 하지는 않겠지 하면서. 즐거워했다 우울해했다를 왔다 갔다 안 하고 아주 잔잔한 즐거움으로 미스터 라잇(Mr. Right)을 기다리기로 한다. 그가 왔을 때, 내가 그를 기다리는 동안 뭘 하면서 살았는지 아주 오래오래 이야기해 줄 수 있도록, 충실히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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