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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Feb 20. 2024

찐 취두부가 너무 맛있다

발효두부의 새콤한 맛

튀긴 취두부

  여행서적을 보면 대만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엽기 음식으로 취두부를 꼽는다. 취두부를 두리안이나 홍어에 비유하면서 역한 냄새가 나서 먹기 거북한 음식으로 묘사한다. (취두부의 취(臭)는 냄새가 구리고 고약하다는 뜻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묘사에 겁을 먹어서 안 먹게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고 찾아서 먹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묘사에 끌려서 일부러 찾아 먹었다.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대만에 여행을 왔을 때, 한국인이면 다 간다는 스린(士林) 야시장에 들러 튀긴 취두부를 소심하게 몇 조각시키고, 거기에 맥주를 곁들여 먹었다. 냄새가 나서 아무나 못 먹는다는데, '나는 먹어봤다'는 경험을 한다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튀긴 취두부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냥 맛있었다. 맥주 안주로 딱 그만인 맛이었다. 


찐 취두부

  내가 두 번째로 취두부를 맛본 것은 대만 여행서적이면 다 언급하는 튀긴 취두부가 아니라, 국물 있게 쪄낸 취두부였다.  채식셀프식당에서 알게 된 나의 1호 대만 친구가 내가 취두부 좋아한다는 소리를 기억해서 일부러 데려가줬다. 

  찐 취두부는 튀긴 취두부와 달리 정말 냄새가 역하다. 두부 2모 크기가 1인분이었는데 나는 그걸 다 먹느라 용을 써야 했다. 정말 좀 역겨웠기 때문에. 그리고는 “왜 사람들이 취두부가 냄새가 난다고 하는지 모르겠어, 난 정말 맛있던데.”라고 자랑스럽게 나불댔던 걸 딱 거둬들이고 싶었다. 맛있냐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응, 괜찮은 걸.”하고 거짓말을 하며, 이 친구가 다음에 또 다른 가게의 취두부를 맛 보여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거절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간혹 입이 좀 심심한 밤에 그날 먹었던, 냄새 나 힘겨웠던, 찐 취두부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게 꼭 다시 한번 더 먹고 싶은 것이다. 그날 밤 갔던 야시장 이름을 잊어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다. 친구에게 물어봐도 될 일이지만, 내가 물어보면 이 친구는 또 먹으러 가자는 소리로 알아듣고,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할 것이고, 그러면 또 민폐를 끼쳐야 해서 그냥 혼자 구글지도를 이리저리 뒤져본다. 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르어화(樂華) 야시장의 취두부

  못 먹을 것 같으니 더 먹고 싶은 것 같은지도 모른다. 학과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취두부 주제가 나오자 “아! 찐 취두부 먹고 싶어!”를 외쳤다. 대만 친구들은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기피하는 자기 나라 음식을 내가 좋아한다고 하니 나를 예쁘게 봐준다. 나는 아마 그런 점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학과 친구들은 나의 취두부 찬송을 기억해서는 어느 날 야시장에 갈 때 나를 데려가줬다. 그 야시장에 아주 유명한 찐 취두부 파는 집이 있다면서. 나는 이 야시장의 이름을 기억한다. 르어화(樂華) 야시장. 다시 먹으러 가고 싶을 때 혼자서 찾아갈 수 있도록 단단히 기억을 해뒀다. 


  르어화 야시장의 취두부 맛에 완전히 반하고 만다! 


  르어화 야시장의 초두부 집은 줄 서서 먹는 집이었다. 줄이 너무 길어 친구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 오늘은 포기할까 싶었는데, 친구들은 너는 취두부를 먹으러 오지 않았느냐면서 같이 기다려주겠단다. 길거리에 놓은 간이 탁자에 앉아 그 국물을 떠먹는데, 찐 취두부의 독특한 시린 맛과 썩은 맛 나는 국물 맛에 그냥 호들갑이 올라왔다. 국물에는 멸치와, 한국의 된장과 비슷한 콩발효장이 들어갔는데, 그 맛이 아주 끝내줬다. 

  “어떡해? 너무 맛있어! 나 한 그릇 더 먹고 싶은데, 배가 다 찼어. 한 그릇밖에 못 먹는 게 너무 안타까워.”

  페이원이 그렇게 맛있으면 한 그릇 포장해 가서 내일 먹으란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다음날 점심에 데워 먹은 취두부는 현장에서 갓 쪄낸 맛과는 좀 차이가 났지만, 여전히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난지창(南機場) 야시장의 초라오빤(臭老闆)네 취두부

  비가 오지만, 어쩌면 비가 와서 더, 햇볕에 얼굴 그을리지는 않겠다 마음이 놓여서 예전에 찾아놓은 추천 취두부집을 걸어서 찾아가기로 한다. 혹시나 또 게으름이 발동하여 대충 동네서 늘 먹던 걸로 사다 먹을까 하여 아침부터 룸메이트들에게 선언을 한다. 

  “나, 오늘 초라오빤 취두부를 먹으러 갈 거야.”

  “그거 난지창 야시장에  있는 거 아니야? 거기 너무 멀지 않아?”

  “구글지도가 걸어서 38분이라고 하던걸? 뭐 그 정도면 운동삼아 걸어갈만해. 요새는 저녁이면 비가 와서 운동 못 가는 날이 너무 많잖아.”

  

  정확한 가게 이름은 '臭老闆現蒸臭豆腐'이다. 가게문으로 들어섰을 때야 알게 된다. 내 1호 대만친구가 날 데려와줬던 집이 바로 이 집이었다. 왕 선생과 왔을 때는 저녁시간이라 아주 번화한 야시장이었고, 내가 방문한 때는 오후 2시쯤이라 야시장이 열릴 시간이 아니라 한산했다. (이 집은 장사가 잘돼서 가까운 곳에 2호점을 열었다. 야시장이 열린 밤시간에 가면 긴 줄을 서야 한다.)

  가게 모양새는 정말 그럴 수 없도록 남루하지만, 음식은 플라스틱 그릇이 아니고, 하얀 도자기질 그릇에 정갈하게 담겨 나온다. 찐 취두부를 흰쌀밥과 함께 먹었다. 나는 원래 두부는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 취두부는 희한하게 맛있다. 1인분이 거의 두부 2모만큼이었다. 찐 취두부는 보통 향이 나는 허브잎을 곁들인 집이 많은데, 나는 오늘 이 허브잎을 척척 얹어 국물도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이게 민트인지 바질인지 알게 되면 덧붙이겠다.) 

  두부보다 국물에서 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새콤한 맛이 느껴졌다. 이 새콤함은 절대 식초의 새콤함이 아니고, 귤류의 신 맛도 아니다. 절대 단순히 ‘맛이 새콤하다’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새콤함이다. 발효식품들이 만들어 내는 자기만의 독특한 새콤함이랄까. 김치는 김치의 새콤함이 있고, 홍어는 홍어의 새콤함이 있잖은가.

  나는 타이베이의 취두부를 한국에 들여와 사업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동안 진지하게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날마다 취두부를 먹을 수 있도록. 하지만 취두부가 대중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생각을 접고 말았다. 나는 커피의 쓴 맛, 홍차의 떫은맛, 여주의 씁쓸한 맛, 같은 걸 좋아하는 비평범한 입맛을 가졌으니,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도 좋아하리라고 기대하기는 곤란하지 않겠나.


  취두부를 먹기 위해 또 가볼 만한 곳으로, 선컹(深坑)이 있다. 선컹은 두부를 테마로 하는 타이베이 근교의 구시가지로, 두부 아이스크림부터 시작해서 두부로 만든 음식들점들이 즐비한 곳이다. 이곳은 마라(麻辣) 취두부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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