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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Feb 20. 2024

대만에도 수제비가 있다

한국맛이 그리울 때

  간밤에 갑작스리, 룸메이트 제니가 먹던 미엔꺼다(麵疙瘩)가 생각났다. 미엔꺼다는 완전 한국음식 냄새를 풍겼더랬다. 한국은 그립지 않지만, 한국 음식은 대체로 그립다. 


  구글 검색을 했더니, 집에서 24분 거리라며 한 집을 검색해 줬다. 24분이면 뭐, 아주 가까운 거리다. 지도를 보니 내가 자주 다니던 길이라 쉽게 찾아가겠다. 

  그래 오늘은 이걸 먹어주겠다!!


  마침 날씨도 화창하다. 몇 날 며칠 비만 오던 날씨가 오늘은 비만 그친 게 아니라 하늘도 파랗다. 폭신폭신 하얀 구름은 아주 가볍게 날아다닌다.

  구팅(古亭) 역을 지나고서는 지도를 잘못 파악해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구글지도가 알려준 시간보다 한참이 더 걸렸다. 1시쯤 도착했을 때는 식당이 이미 한산했다. 그렇지만 이 집이 줄 서서 먹는 맛집이라는 말이 믿어지는 것이, 식당 테이블의 숫자가 장난이 아니다. 난 먹다가 참 심심도 했지, 의자가 몇 개나 되나 세어봤다. 80 좌석이었다. 


  미엔꺼따(麵疙瘩)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뚝뚝 끊어 넣고 끓인, 국물 있는 한 그릇 면음식인데, 우리나라 밀가루 수제비랑 비슷하게 생겼다. 한국에서는 수제비를 면류라고 생각도 못했었는데, 대만에서는 수제비를 면류에 포함시킨다. 면발의 종류가 수제비일 뿐이다. 우리나라 수제비와 달리 국물맛이 참 맑고, 곁들이는 재료가 감자나 호박이나 양파가 아니라, 해산물 미엔꺼따면 해산물이, 고기 미엔꺼다면 고기가 들어간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당연히 해물 국수를 주문한다. 나는 이 집 해물국수를 받아 들고 풍부한 해산물의 양에 감탄했다. (내가 찍은 사진에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사진 찍느라 먹는 걸 지체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지라 늘 후딱 찍은 사진은 실물에 비길 바가 안된다. 해산물들을 좀 건져 올려 예쁘게 세팅을 했으면 화면발이 잘 받았겠지만,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요령 부리는 거 좀 질색이다. 아니, 게을러서 그런 거 못한다. 남들이 요령 부려 예쁘게 찍어 놓은 사진을 '보는 건' 좋아한다.)

 뭐뭐가 들어갔냐면, 새우 2마리, 조개 2개, 오징어 2조각, 생선살 한 덩어리, 맛살, 곰돌이 모양의 어묵까지. 해산물은 하나하나가 안 신선한 것이 없다. 아주 최고로 신선하다. 새우는 ‘나 정말 신선해’를 외치듯이 긴 수염을 빨갛게 달고 있다. 손으로 까먹기는 좀 귀찮아서, 대가리와 꼬리만 빼고 그냥 껍질째 씹어 먹었다. 야채는 배추, 당근, 팽이버섯, 작은 표고버섯이 들어갔다. 

  뭘 넣고 국물을 끓여내는지 한 그릇을 다 먹을 동안 조금도 짐작해내지 못했다. 한국에서 자주 맛보게 되는 것은 마른 멸치랑 다시마를 기본으로 하는 맛인데, 이 국물은 그 맛과는 완전히 다르다. 뭘 넣어서 끓이면 이렇게 맑으면서 찐한 맛이 나는지 모르겠다. (자주 가서 사장님과 친해지면, 내 한번 물어보고 덧붙이도록 하겠다.)

  

  아마 비가 오는 날 또다시 먹고 싶어질 것 같다. 구글 지도 없이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머릿속에 잘 넣어뒀다. 


  가게 이름은 푸징미엔꺼따(福井麵疙瘩)이다. 대만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꼭 가게 되는 중정기념당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니 시간이 남으면 한번 들려봐도 될 듯. 점심때와 저녁시간에만 문을 연다는 거 잊지 마시길. (내가 느끼기에 대만에서는 장사가 잘되는 집일수록 딱 밥때만 장사하고 문을 닫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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