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자격시험

by 김동해

박사자격시험의 단계는 이렇다. 1단계, 논문방향을 정한다. 2단계, 논문개요를 작성하고 3분 교수님께 보낸다. 3단계, 3분 교수님이 내가 공부해야 할 책과 논문 목록을 뽑아주신다. 4단계, 논문자격시험 신청서를 제출한다. 5단계, 공부를 한다. 6단계, 시험을 치른다. 7단계, 한 달 후에 합격여부가 발표 난다.


1단계, 논문방향 정하기

논문을 쓸 때 제일 어려운 점은 논문 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뭐에 관해 쓸 것인지 정하고, 지도교수의 오케이 사인을 받으면 다음 일들은 시간을 따라 그냥 진행이 된다. 어떤 자들은 박사반을 신청할 때, 이미 연구방향을 가지고 시작한다. 나는 박사가 목적이 아니라, 박사 공부라는 과정을 통해 중국어 실력이 늘고 싶다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논문 방향 같은 게 없었다. 시간은 자꾸 가고, 논문 방향은 없고, 일단 지도교수와 약속을 잡았다.

"1주 후에 논문 방향을 잡아서 찾아뵐게요."

약속을 잡아놨으니, 빈손으로는 갈 수 없어서, 그때서야 남들은 뭐 쓰나 하고 논문들을 좀 뒤적거렸다. 논문 방향이 순전히 자기 머릿속에서 나오나 싶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남의 논문을 많이 읽으면 방향이 잡힌다. 논문 방향을 못 잡았다고 징징거리는 애들이 있으면, 내가 해주는 말이 "넌 지금 남의 논문을 충분히 읽지 않았다는 소리야. 논문을 충분히 읽으면 그냥 생기게 되어있어."이다.

우리 과에는 외국인 학생이 논문을 쉽게 통과하려면 자기 나라와 관련된 뭔가를 한 다리 끼우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내가 교수님들보다 더 전문가이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내 논문에 태클을 걸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국의 중국어 교과서를 분석하는 주제로 끄적거렸다. 그건 수업시연을 해서 피드백을 받거나 하는 과정도 필요 없어서 어째 상당 간단할 것 같은 것이다. 그 방향으로 대강 방향을 잡고 이 비슷한 석사 논문을 쓴 한국 아가씨에게 물어봤더니, 곧 새 교육과정이 나온다는 것이다. 교과서도 새로 다 바뀐다는 것이다.

'아 이거 좀 귀찮을 것 같은데? 이러면, 선행연구가 없다는 소리잖아....'

그러다, 어느 날 베트남 아가씨 숙제를 도와주다가 산뜻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아이디어가 뭔지는 박사논문이 나오기 전이라 자세히 말할 수는 없고. 대략, 한국인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 중국어 교재 개발이라고만 해두자. 교재 개발로 방향을 정하고 나자, 어째 만만하게 느껴졌다. 내 석사논문도 그 방향이었다.

아직도 중국어 말하기는 버벅이 수준이라, 교수가 내 아이디어를 제대로 못 알아들을까 봐, PPT로 작성해서 찾아갔다. 교수님은 PPT를 올렸다 내렸다 하더니, 석사 때랑 비슷하니까 어려울 것이 없다며 이 방향으로 쓰란다. 나는 종이교재를 생각했는데, 교수는 다매체 이용을 들썩인다.

'아, 그거까지 더하면 문헌연구 내용이 너무 많아진다고요.'


2단계, 논문개요 작성하기.

논문개요를 PPT로 다 작성했다고 생각했는데, 문장 서술형으로 한두 페이지 작성하란다. 포함될 내용은 연구 동기, 연구 문제, 연구 방법 등이다. 다시 말하면, "제가 이런 이유로 저런 연구를 할 건데요, 요런 연구방법을 쓸 거예요." 하는 거다.

논문자격시험을 쳐보고 느끼는데, 논문 개요를 구체적으로 잘 작성하면, 3분의 교수님들이 딱 내 논문 방향에 맞게 문제를 내주셔서, 답안으로 섰던 글을 논문에 그대로 써먹을 수 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헌연구에서 어느 분야를 다룰지 좀 알쏭달쏭했는데, 3분의 교수님이 내 주신 문제에 답을 달면서 방향이 환해졌다.


3단계, 3분 교수님으로부터 공부할 논문과 책 목록 받기.

내 지도교수가 2분의 교수님을 물색해서 내게 그분들의 자료를 주면, 작성한 논문개요서를 보내서, 공부해야 할 책과 논문을 선정해 달라고 부탁드린다. 한 분은 1주일 만에 답 메일을 보내주셨고, 내 지도교수는 한 3주가 지나서 답신을 보내왔다. 한 교수는 한 달이 지나도 답이 없어, 독촉 메일을 보냈다. 그래도, 답이 없어서, 지도교수에게 SOS를 쳤다. "한번 독촉드렸는데, 아직 답이 없으셔요. 제가 한 번 더 독촉해도 되는 걸까요?" 했더니, 지도교수가 직접 연락을 넣어보겠다 했다. 내 지도교수는 이렇게 친절하다.


5단계, 공부하기.

교수님들이 선정해 준 논문과 책을 학습한다. 논문자격시험 신청을 한 후, 3개월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 기간을 이용해 공부하면 되지만, 나는 논문자격시험 신청 전에 공부부터 했다. 논문과 책을 섞어 30권쯤 될 거라고들 했는데, 나는 그걸 3개월 안에 읽어낼 자신이 안 섰다. (실제로 내가 받은 목록은 논문 열 편 정도 포함해서 총 40권 정도였는데도, 3개월 전에 학습을 다 끝냈다. 마지막 한 달은 그냥 막 놀았다.)

게으른 나는, 한국어 번역본이 있으면, 최대한 한국어 번역본으로 공부했다. 중국어로 된 책을 읽는데 일주일 걸릴 것 같으면, 한국어는 이삼일이면 한 권을 볼 수 있으니까. 아쉽게도, 3분 교수님들이 선정해 주신 책 중에 외국학자가 쓴 서너 권의 책만 한국어 번역본이 찾아졌다.

컴퓨터 파일로 요약을 할까, 손필기를 할까 망설이다가, 손필기를 해야 뭔가 이해되는 느낌이어서 손필기를 했다. 컴퓨터 파일을 뒤적이는 것보다, 노트 필기를 뒤적이는 게 더 내 스타일에 맞았다. 공부하면서 요약한 내용이 그대로 답안이 되는 경우는 없고, 답안을 작성할 때 참고할 만한 내용이 어느 책 어디에 담겨있는지를 떠올릴 수 있는 정도로만 요약하면 되는 거였다. 너무 자세히 필기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의 논문방향과 먼 부분은 대충 건너뛰며 봐도 되는 거였다.(나는 정직하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다 봤다.)


4단계, 논문자격시험 신청서 제출

여름방학을 마치고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학과 사무실에 가서 논문자격시험을 신청했다. 우리 학교는 논문자격시험을 신청하는 날로부터 3개월 후로 시험일을 정할 수 있다. 9월 6일 신청을 하고, 3개월 후인 12월 6일로 시험 날짜를 잡았다.

신청서에는 시험기간을 적어야 했는데, 최대한 길게 받아내자고 지도교수 앞에서 우는 소리를 좀 했다.

"천교수의 학생 누구는 2주를 받았데요."

"그렇게 많이도 준다고?" 교수들도 사실 며칠까지나 줄 수 있는지 잘 모른다.

"교수님, 저는 중국어 자료 읽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려요. 줄 수 있는 최대의 기한을 주세요."

내 지도교수는 보통 일주일 준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내게는 10일을 줬다.


6단계, 시험 치기.

우리 학과 박사시험은 오픈북으로, 자기 집에서 컴퓨터로 타자해서 답안을 작성하고, 이메일로 제출하는 식으로 치러진다.

시험일 아침에 학과조교가 이메일로 시험지를 보내주는데, 6일 아침, 논문자격시험지가 날아올 네이버가 열리지 않았다. 검색해 보니, 한국의 계엄령으로 네이버에 접속하는 사람들 수가 많아서란다. 계엄령이 내 시험에 영향을 미칠 줄이야!

시험문제는 매 교수님이 4문제씩, 총 12문제였다. 시험문제는 내 논문을 둘러싸고 나왔다. 내가 이 논문을 쓰기 위해 충분히 고려했어야 할 지점만 물었다. 그중에 몇 문제는 내가 예상했던 거다. ‘요즘 새롭게 등장한 참신한 교육학 아이디어’를 내 교재에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차이교수가 새로운 교육 아이디어에 관한 책을 어찌나 많이 읽게 해서, 이 문제가 하나쯤 나올 것 같았다. 혼자서 생각을 해봤지만, 그 아이디어들은 전부 교학과 관련해서여서, 이걸 교재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도무지 어떤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도교수를 찾아가 한번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귀찮아서 관뒀다. 시험지에서 그 문제를 발견했을 때, ‘아 된장, 물어볼걸.’하는 후회가 됐다.

나는 내가 쓴 중국어 문장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대만 대학생을 하나 고용해서 문장 검토 알바를 줬다. 14포인트 크기로 칠십여 페이지이기 때문에 서너 시간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시간당 임금보다 높게 책정을 했는데, 그녀는 10시간이 걸렸다고 알려왔다. 아르바이트비를 지불하는데 돈이 좀 아까웠다. 그녀가 고친 부분은 정말 사소한 걸로, 대부분은 고쳐도 그만, 안 고쳐도 그만인 부분이었다. 내 중국어 실력이 늘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Chat GPT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Chat GPT가 얼마나 유용했는지 좀 더 이야기하자면. 교수님이 주신 문제를 그대로 Chat GPT에 입력해서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대강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Chat GPT가 나의 질문에 답해나가며 진화하는 것인지 어떤지, 점점 내가 원하는 답에 가깝게 보여줄 때,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예를 들면, 학생의 중국어 학업성취를 평가할 수 있는 질적방법과 양적방법을 두 가지 제시하고 그 과정을 서술하라는 문제가 있었다. Chat GPT에게 '면담'의 과정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과정을 몇 단계로 나눠서 보여주며, 내 논문주제에서 맞는 예시문제까지 제시해 줬다. 나는 Chat GPT에게 이 질문을 할 때, 내 논문 주제가 뭐라고 알려주지도 않았다.

어쨌건, Chat GPT가 없었더라면, 조직적으로 예뻐 보이는 답지를 작성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매 답안마다 도입과 결어를 적었는데, 대부분은 Chat GPT가 도와줬다. Chat GPT 만세! 만만세!


7단계, 합격여부 통보 기다리기.

답안은 각 교수님 별로 작성해서 pdf 파일로 만들어 보낸다. 그리고, 한 달여를 기다리면 된다.

'설마 불합격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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