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과정에서 가장 걱정했던 박사자격시험을 치르고 나니, 졸업을 눈앞에 둔 마냥 홀가분하다. 다른 뭐도 막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영희 씨가 대만 정부가 발행하는 한국어 가이드 자격증을 따기만 한다면, 자기가 알바자리를 얼마든지 주선해 줄 수 있다고 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래, 방학 동안 노느니 한국어 가이드 자격증이나 따볼까?
무슨 시험을 어떻게 치는지도 모르고, 일단 시험을 치겠다고 신청했다. 내 애플 컴퓨터는 시험을 신청할 수 있는 페이지를 열어주지 않아 룸메이트의 컴퓨터를 빌려 썼다. 뭐 적으라는 게 그렇게 많은지, 신청서를 작성하는데 벌써 쩔쩔맸다.
원래 계획은 방학 동안 한국에서 할 일 없이 노느니, 중국어 공부하는 셈 치고, 한 10년 치 역대시험 문제를 풀어보는 게 계획이었다. 시험은 3월 말에 있고, 대만에 돌아오자마자 논문을 쓰기 시작해야 하니, 가이드 공부는 겨울 방학을 이용해서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획과 실천은 다른 문제기 때문에,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방학 동안 딱 한 해의 시험문제를 인쇄했고, 첫 번째 과목만 풀어보고 70점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놀아버렸다. 1시간 안에 50문제를 다 읽어내느냐가 문제였지, 찬찬히 다 읽기만 한다면 무난히 합격선 60을 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만으로 돌아와서야 '내가 가이드 시험을 치기로 했었지.'가 떠오른다. 이왕 시험을 치겠다고 했으니 한 번에 붙어야지 않겠나. 10여 년치 문제를 인쇄해 와서 과목별로 파일에 꽂았다. 과목 2와 과목 3은 어떤 것인지 구경삼아 풀어본다.
'오, 마이갓!'
어렵다. 그냥 어려운 게 아니라, 그냥 하나도 모르겠다. 두 번째 과목은 가이드 실무 2라고 되어있었는데, 내용은 관광 관련 법률이다. 세 번째 과목은 관광자원개요라고 되어있는데, 대만 지리, 역사, 관광지에 관한 문제다. 두 번째 과목이 조금 나아서 한 30점쯤 나오고, 세 번째 과목은 아는 문제가 서넛 뿐인데, 그것마저도 정확하게 가 아니라 그렇지 않을까 하는 느낌으로 답을 찍어야 했다. 20점 언저리가 나왔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과목 최저가 50점이 넘고 4과목의 평균이 60점을 넘어야 합격이라고 했다. (4번째 과목은 한국어 시험이다.)
'20점을 무슨 수로 50점을 만들지?'
그날로부터 논문 쓰기를 스톱하고, 시험일까지 남은 3주 동안 가이드 시험 준비를 했다. 가장 자신 없었던 3번째 과목부터 시작했다. 보통 이런 시험은 문제은행이라는 것이 있어서, 역대 시험문제를 쫙 풀면 중복되는 문제가 있어서 기본 몇 점은 맞추고 들어갈 수 있다. 나는 그걸 기대하고 역대 시험문제를 풀어보는 것인데, 중복되어 나오는 문제는 지극히 지극히 적다.
'아, 된장! 이거, 시시하게 공부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딴에는 고민을 해서 가장 정답일 것 같은 것을 찍어보지만 정답을 교묘히 피해 가고, 한 번호를 쫙 찍어버리는 것보다 못한 점수가 나왔다.
절망적인 마음으로, 2번째 과목을 풀어봤다. 3번째 과목보다는 점수가 조금 낫긴 한데, 과목이 법률이다 보니 문제도 지문도 더럽게 길다. 파파고로 번역을 해서야 뭘 묻는지 이해가 되는 문제도 상당수다.
시험일은 얼마 남지 않았고, 이래서야 합격할 것 같지 않아서, 될 대로 돼라 하고, 남들은 어떻게 준비했나 하고 경험담을 찾아보며 느그적 게으름을 피웠다. 그러다 발견! 외국어 가이드의 합격 기준은 외국어 과목에서 50점을 넘기고, 4과목 평균이 240점이면 된다는 것이다. 모든 과목에서 50점을 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이러면 희망이 있어!'
4번째 과목 한국어는 100점을 맞을 테고, 1번째 과목에서 70점을 맞는다면, 2번째 과목과 3번째 과목을 합해서 70점을 맞으면 되는 거였다. 좀 더 자신 있는 2번째 과목에서 40점이 나오고, 가장 자신 없는 3번째 과목에서 30점만 나와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자가 써놓기를 3번째 과목은 중복률도 낮고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따로 공부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차라리 1번째 과목과 2번째 과목에서 점수를 획득하는 전략을 쓰라는 것이다.
'오우, 맞아, 이거야!'
희망이 생겼기 때문에, 마지막날까지 열심히 공부했다. '운 좋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