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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관문, 필기시험

by 김동해

한국어 가이드 필기시험을 치러 갔다 왔다. 서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대구지역은 공무원 시험이나, 고3 수능시험 같은 국가 차원의 시험이라도 학교시설을 빌려서 치러진다. 대만은 국가시험장이 따로 있었다. 시험 전용 건물이 있으면 시험을 진행하는데 편하기는 하겠지만, 시험이 365일 치러지는 것은 아니니, 이 건물은 좀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응시자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일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또,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대만 사람들이 이 시험을 칠 거라고 생각했다. 웬걸, 시험장에 앉은 많은 사람들이,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가 아니라, 모국어자처럼 한국어를 했다. 중국말도 모국어처럼 했고. 거류증을 가진 나와 달리, 그들은 대만 신분증을 갖고 있었는데, 한국인 2 세거나, 대만으로 귀화한 한국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가이드업을 하면서 서로 아는 사이인 듯하다. (가이드 자격증 없이 가이드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누구는 어젯밤 술을 퍼마시고 오늘 시험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누구는 해마다 시험을 치러 오는데 찍기를 더럽게 못해서 매번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고, 누구는 떨어졌다 생각했는데, 작년에 문제 출제가 잘못되어 다 맞는 것으로 쳐주는 바람에 운 좋게 합격했다 등등, 그들은 쉼도 없이 떠든다. 그들이 어찌나 큰소리로 떠들어댔기 때문에, 나는 요약해 온 쪽지를 외우는데 집중할 수가 없었다.

특히 말이 많은 중년 아줌마 아저씨는, 입이 어찌나 거친지 ‘씨발’을 달고 살았다.

"저 뚱댕이들 좀 조용히 시켜, 씨발."

한 중년 남자가 두 중년 여자가 떠드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저 새끼는 아직 안 왔어? 엊저녁에 퍼마셨나 보네. 씨발."

시험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한 남자가 나타나지 않으니 전화를 해보는데, 전화마저도 받지 않자 하는 말이다.

"씨발, 점심은 김**한 테 국가시험장까지 김밥 배달해 달라고 해."

가이드 시험은 9시에 시작해서 오전에 2과목을 치고, 오후에 2과목을 친다. 중간에 1시간 30분 정도의 점심시간은 주어지는데, 스스로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국가시험장 주변에는 딱히 먹을만한 음식점이 없고, 맥도널드나 편의점이 있다고 해도 점심시간에는 워낙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쏟아지기 때문에 긴 줄을 서야 한다. 그게 불편하니 대만에서 김밥 장사하는 김사장에게 배달시켜 먹자는 것이다.

"씨발, 김**한 테 커미션 떼 달라고 하자."

여러 사람들의 주문을 받아 김사장이 한 푼 벌게 해 줬으니, 김사장에게 인센티브를 달라고 하겠다는 소리다. '가이드업을 하는 사람들의 계산법은 이래?' 나는 그들이 좀 추잡스럽게 느껴졌다.

"좀, 조용히 해 씨발, 우리만 떠들고 있잖아."

나는 한국에서 아줌마 아저씨들이 '씨발'을 후렴구처럼 달아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없다.'씨발'은 중고생들이 반항적이고 거칠어 보이자고 애써 쓰는 후렴구가 아니던가? 나는 그들의 천박함에 가이드를 해보겠다고 시험장에 와 있는 나 자신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 인상 속에 남아있는 가이드는 이렇지 않다. 사내 연수차 일본 탐방을 갔을 때, 처음으로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여행을 했었는데, 그 가이드 아가씨는 날마다 맞선 나온 마냥, 단정하게 차려입고 수줍고 공손하게 우리를 안내했다. 여행 마지막날 그녀가 이별인사를 했을 때, 여행객인 우리도 가이드인 그녀도 눈물을 흘렸다는 거! 가이드와 헤어지는 것이 뭐가 아쉬워서 눈시울을 붉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지만, 정말 다들 눈물을 흘렸다.

가이드에 대한 내 환상은, 오늘 '씨발'과 함께 확 깨고 말았다.


오늘 가이드 시험은, 첫째 시간은 어, 너무 쉽네하는 느낌이 들도록 쉬었고, 두 번째 시간은 좀 어려웠고, 세 번째 시간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국어야 100점을 맞았을 테고, 1교시 과목이 70점은 되어주겠지. 2교시 과목이 40점은 넘어 줄테고. 3교시에 C로 쭉 찍은 것이 한 30점만 되어주면 될 텐데.... 가이드 시험은 한국어가 50점 이상이고, 4과목 합이 240점이면 합격이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공부를 하고 온다기보다는 해마다 와서 치면서, 운이 좋으면 붙겠지 하는 기분으로 시험을 쳤다. 나는 3주간 공부도 했는데, 설마 붙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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