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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동행, 인도 남자 쓰리럼

진산(金山)에서 예류(野柳)까지

by 김동해

8시에 출발하자고 약속했는데, 쓰리럼은 8시 10분쯤에야 방에서 나왔다. 이제야 막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는 5분을 더 달란다. 말이 5분이지, 나갈 준비를 하는데 5분밖에 안 걸릴 수 없다. 인도 남자 쓰리럼은 다른 남자들답잖게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9시가 가까워서야 시내버스를 탔다. 금방 올 거라던 시내버스도 어찌 안 오는지 한 20여분을 기다렸다. 내가 바보 같았지, 조금 더 걸어 나가더라도 버스가 많은 곳에서 기다렸으면, 이게 안 오면 저걸 타면 되는 거였는데. 한걸음 덜 걸어가겠다고 가는 버스가 하나뿐인 정류장에서 미련하게 기다렸다.


오늘은 딴쉐이(淡水) 쪽에서 시계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쭉 따라 달리는 시내버스를 타지 않고, 내륙을 가로질러 먼저 지룽(基隆)에 도착하고, 반시계 방향으로 해안선을 돌아 진산(金山)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다음의 걷기 목적지가 예류(野柳)에서 지롱(基隆)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도로 상황이 걷기에 어떤지 보려고 일부러 그 길을 선택했다.


오늘의 출발지점인 진산라오지예(金山老街)에 도착해서 먼저 점심부터 먹는다. 진산라오지에(金山老街)에는 사찰이 하나 있는데, 사찰 문 앞에서 음식을 만들어 판다. 대만은 사찰을 끼고 형성된 야시장이 많다.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 앞에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는 것 같다. 지롱(基隆)의 미아오커우(廟口) 야시장이 대표적이다. 미아오커우(廟口)라는 말이 바로 절입구라는 뜻이다.

진산라오지에의 사찰 식당은 일단 절 앞에서 접시에 담겨 진열된 음식을 '이거 이거 주세요' 해서 들고는, 앉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 식당으로 가서 먹는다. 사찰 앞 요리 하는 곳과 앉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갖춰진 식당은 조금 떨어져 있다. 음식은 다 먹은 다음에 계산한다. 식당 자리는 아주 넓고 먹고 빠지는 회전율이 높아서, 사찰 앞에서 음식을 사겠다는 줄은 아주 긴데도, 앉아 먹을 자리를 못 찾거나 하지는 않는다.

볶음국수 1인분에 대만돈 40원(한국돈 1600원)이다. 오, 저렴하다. 다른 음식은 스리럼이 좋아할지 어떨지도 모르겠고, 이름도 잘 모르겠어서 그냥 볶음국수만 주문했다. 배가 고파서 그랬던지 대충 먹을만했다. 군 고구마도 사 먹고, 위토우(芋頭) 떡도 사 먹었다. 이곳 위토우 떡이 유명하다고 했는데, 나한테는 별 맛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곧장 예류를 향해 걸었어도 좋았겠지만, 진산에 사자머리산 공원(獅頭山公園) 도보길이 예쁘다고 하니 구경을 하고 가기로 한다. 가는 길에 야외 온천을 만나, 또 발을 안 담가 볼 수 없으니, 유황냄새를 맡으며 잠시 발을 담그느라 길을 지체한다.

사자머리산 공원 도보길은 우리 말고도 바다풍경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자가용으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길은 바다로 이어지는데, 산책로 끝에 다다르면, 조각 예술품처럼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두 줄기의 바위기둥을 만나게 된다. 두 개의 바위기둥이 나란히 사이좋게 서 있는데, 부부석(夫妻石)이라는 이름을 붙여놨다. 친구, 연인, 형제, 뭐 이런 것도 안 될 것 없지만, 오랜 세월 철썩이는 파도에 맞서 조금씩 침식되어 가는 모양이 '부부'가 제일 어울리는 것 같다. 사실 이 풍경은, 나한테는 뭐 굳이 그걸 보겠다고 거기까지 갈 필요 있겠나 싶은 정도인데, 쓰리럼은 바다도 있고 산도 있는 풍경이 맘에 든다면서 좋아라 했다.

사자머리산(獅頭山)은 장기간 군사 통제의 보호 아래 있었기 때문에, 생태 자원이 잘 보전되어 있는 편이라고 한다. 9월에서 10월 사이에는 개상사화(金花石蒜)가 만발한 아름다운 경치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개상사화는 주황색의 상사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제부터는 예류(野柳)까지 무작정 걷기만 하면 된다.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예류지질공원까지다.

나는 이미 예류 지질공원을 3번이나 봤다. 겨울 방학을 이용해 대만 관광 왔을 때, 혼자 가본 게 처음인데, 그때 느꼈던 감동은 좀 대단했다. 만약 사전 정보가 없었더라면 더 놀라웠을 것 같다. 가기 전에 사진을 너무 많이 봐버려서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우~~~~ 와~~~~!'하지는 않았고, 그냥, '우~와~!' 했다. 두 번째, 세 번째는 한국에서 친구가 나를 만나러 와서, 함께 갔었다.

3번째쯤 가자 딱히 감흥이 없어서 이제 예류는 그만 올 테다 싶었는데, 오늘의 흐린 하늘 아래 좀 성난 파도를 배경으로 하는 예류는 또 새롭게 좋았다. 어쩌면, 이채로운 풍경을 보고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쓰리럼 때문에 나까지 좋은 느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갔을 때는, 태풍이 오고 난 다음이었는데, 예류 바닷가에 배 한 척이 처참히 구겨진 채 해안 절벽 쪽으로 밀려와 있었다. 컨테이너를 싣는 아주 큰 규모의 배였는데, 태풍은 마치 얇은 합판을 부서뜨리듯이 철로 된 배를 구겨놨다.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셔터를 눌렀다. 구겨진 배를 보니 이번 태풍의 위력이 대단했구나 싶다.

2024년 10월 말에 올라온 태풍 캉뤠이(康芮)는 캄보디아가 제공한 이름을 썼는데, 민간 전설에 나오는 예쁜 소녀 이름이란다. 붙여진 이름과는 달리 태풍 캉뤠이는 강풍에 폭우를 쏟아부었다. 무려 이틀이나 대만 전국에 팅빤팅커(停班停課, 휴업휴교)가 내려졌다. 대만은 태풍의 위력이 대단할 것 같으면, 국가 차원에서 휴업, 휴교 행정 명령을 내린다. 다음날 발표 수업이 있거나 한데, 뜻하지 않게 휴교가 되어, 준비할 시간이 한 주 더 주어질 때, 상당 행복하다. 그래서 그런지, 대만에서의 '태풍'은 내게 좀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다.


돌아올 때는 935 셔틀이라고 적힌 것을 탔더니, 타이베이과학대학까지 멈추지 않고 왔다. 갈 때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쭝샤오신성(忠孝新生)에서 1815번 버스를 탔었는데, 곳곳마다 정차를 해서 시간을 상당 잡아먹었더랬다.

쓰리럼과 나란히 앉아 왔는데, 저녁이 되자 인도 남자 쓰리럼은 찐한 누린네를 풍겼다.

'쓰리럼, 네가 왜 밤낮으로 씻는지 알겠어.'

다음부터는 어색하지 않은 핑계를 찾아서 따로 앉아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다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맡은 프로젝트가 끝나 인도로 돌아갔다. 10월에 다시 올지도 모르지만.

그가 풍기는 냄새는 같은 앉아 있는 내게 묻을 것처럼 진동하지만, 그가 다시 대만에 온다면 나는 다시 그와 걷기 여행을 갈 것이다. 그는 행복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같이 걷는 나를 아주 편하게 해 주기 때문에.

그러니까 종합적으로 보면, 쓰리럼은 좋은 여행 친구인 편이다. 2024년 11월 2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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