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과 조교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성질이 사나워서 그런 건지, 친절을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누구에게도 공손한 걸 본 적이 없다. 학과 주임 교수에게도 퉁명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학생이 그녀의 불친절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데도 그녀가 잘리지 않고 있는 것은, 대단한 빽이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이도 있다. 이다지도 유쾌하지 않은 그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내가 오늘 그녀와 비슷한 짓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중국어를 어버벅하는 학생에게 곱절로 더 불친절한데, 우리가 중국어를 좀 버벅댄다고 우리의 지능마저도 그 지경인 듯이 대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너, 알아 들었어?" 그녀는 장황하게 설명하고는, 내가 못 알아 들었다고 생각해서 한마디 붙였다.
"어. 알겠어."
학과 사무실을 나가는 내 뒤통수에 그녀가 다른 직원에게 건네는 목소리가 꽂힌다.
"쟤 뭘 해야 하는지 알아들은 거야?"
그녀가 생각하기에, 기일 안에 그 서류를 갖춰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에, 내가 제대로 못 알아듣고는 '알겠어. 서류 갖고 올게.'라고 답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박사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라고. 우리가 멍청하면 외국어로 이 짓을 할 수 있겠어?'
랭귀지 스쿨의 교사들도 이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중국어를 못하는 외국인 학생을 자칫 어린애 취급해 버리는 일. 우리 동양애들은 뭐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가는 편이지만, 서양애들은 분노해서 선생을 바꿔버린다. 사실 교실에 앉아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보다, 세계를 돌아 돌아 대만에 도착한 서양애들은 선생보다 본 것도 들은 것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상대가 좀 멍청하다고 느껴버리는 것이다. 오늘 내가 이 실수를 저질렀다.
오늘은 에바의 한국어 수업이 있었다. 단어를 가지고 문장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예를 들어주면서,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이어서 그녀가 문장을 만들도록 했다. 단어 '결항하다'에 이르렀을 때.
"태풍이 올라와서 비행기가 결항했어요. 자, 이제 에바 씨 차례예요."
"크리스마스여서 비행기가 결항했어요." 에바 씨가 대답했다.
"네? 이 문장은 논리상으로 안 맞잖아요. 비행기는 보통 날씨와 관련해서 결항해요. 크리스마스와 무슨 상관이죠?" 내가 피드백했다.
"호주에서 크리스마스여서 결항했어요."
에바의 설명을 듣고 나는 나의 좁은 식견으로, 그녀에게 '논리가 안 맞다'라고 말한 게 너무 부끄러웠다.
"호주에서 크리스마스 때, 항공사 직원들이 전부 휴가를 가서, 비행기가 결항해서 하루 종일 비행장에서 기다렸어요."
"어머, 그런 일도 있군요. 논리에 맞아요!"
호주에 안 가본 내가 알 턱이 있나. 내게는 논리에 안 맞는 말이, 경험해 본 그녀에게는 논리에 맞는 것이었다. 다음부터는 그녀가 말도 안되는 문장을 만들었다 싶어도, '틀렸잖아요'라고 할 게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봐야겠다. 잠깐 하는 알바일지라도, 나는 멋진 한국어 교사가 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