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번째 학생, 클레어와 한 달째 수업을 진행했다. 그녀는 아직 한글을 못 읽는다. 반성하건대, 선생이 무능해서다.
처음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니, 한국어 모음과 자음이 외국인에게는 암호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 못했다. 자음, 모음은 어떻게 소리 나고 어떻게 합쳐 쓰는지만 알면, 나머지는 학생이 외워오는 거라고 생각해서 금방 다음 진도로 넘어갔다. 여기서 잘못은 시작됐다. 받아쓰기를 하면, 클레어가 전혀 써내지 못했지만, 글자를 자꾸자꾸 보다 보면 나아질 거라며 또 넘어갔다.
클레어는 요가복을 판매하고 필라테스 가르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회화 배우기를 원했는데, 글자도 읽지 못하는 학생에게 요가복 판매 관련 회화 문구를 가르치기 시작해 버렸다. 나는 듣고 연습하라고 회화문을 녹음해서 보내줬는데, 그녀는 글자는 하나도 주시하지 않고, 녹음된 소리를 듣고 회화 문구를 따라 외웠다. 여기서 문제는 더 커져갔다. 클레어는 글자를 읽어내는 것에 조금도 애를 쓰지 않았다.
그녀와 수업을 진행한 지 한 달이 되었으니, 오늘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다.
"클레어 씨,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아요. 한국어는 읽어내는 게 먼저예요. 글자를 읽어내지 못하면 진행해 나갈 수가 없어요."
"제가 글자를 익힐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혼자서는 도저히 못 외우겠어요."
오늘 배울 내용은 '주어가 어느 장소에 가요'라는 문장이었는데, 주어와 장소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클레어 씨의 손으로 직접 작은 카드에 쓰게 했다. 그리고, 카드를 옮겨가며 내가 말하는 문장을 만들게 했다. 그녀는 글자를 보고 카드를 찾아내는 게 아니라, 대충 감으로 카드를 골랐다.
"클레어 씨, 이러면 안 돼요. 글자를 보고 골라요. 두 글자 중에 하나쯤은 알 수 있잖아요."
클레어는 발음은 기똥차게 잘 따라 하는데, 글자를 영 머릿속에 넣지 못한다. 글자 알레르기라도 있는 것처럼. 아직 '가'도 기억 못 한다. 처음으로 배운 글자 '가'를 기억하지 못하기도 상당히 어렵지 않나?
그렇지만 꿈은 야무지다.
"10월에 한국에 가는데, 그때 한국어로 필라테스 수업을 시범 삼아해 보기로 했어요. 아직 한 6개월 남았으니까, 그때 내가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건 좀 무리가 아닐까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꿈은 커도 좋은 거니까.
우리는 일주일에 1시간 면대면 수업을 하고, 30분 전화 수업을 한다. 한 달이면, 6시간이고, 남은 6개월 동안이면 총 36시간이다. 내가 무슨 마술가도 아니고, 36시간 동안 무슨 수로 한국어로 필라테스 수업 할 수준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클레어씨, 죄송하지만, 저 초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