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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이 한국어 선생

by 김동해

저웨이가 또 한국어 질문할 것이 있다며 나를 찾았다. 나는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기 전까지는 잠이 와서 도대체 집중이 안되기 때문에, 중국어 연습하는 셈 치고 그를 만나 도와줄 의향이 있다. 하지만, 그는 오전에 되냐고 묻거나, 내가 저녁 먹는 시간을 내달라고 한다. '그냥 돈 들여서 배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저웨이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는 봉사동아리 회원이라서 알게 되었는데, 나는 그와 몇 번 중국어 수업을 했다. 저웨이와의 수업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남자 아이라 그를 상대로 말하기가 편했다고나 할까. (나는 복잡한 여자들과 말하면 주눅이 든다.) 그러니, 그가 도와달라는 것을 모른 채 할 수는 없었다.


저웨이는 무슨 핸드폰 앱을 이용해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앱은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쓰일만한 짧은 문장을 무작위로 나열해 놨다. 중국어 번역 문장과 함께.

"저웨이 이렇게 체계 없이 배워서는 좀 곤란해."

저웨이는 공부하다가 이해가 안 가는 문장은 캡처를 해놨는데, 핸드폰으로 그걸 찾아 보여주며 하나하나 묻는다. '여행 잘 다녀오세요'에 이르렀다. '다녀오세요'가 중국어로 회이지아(回家)로 되어 있었는데, 이게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회이지아(回家)는 글자 그대로라면 '집으로 돌아오다'의 뜻이기 때문이다.

"다녀오다는 여행을 떠나는 한 방향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여행을 떠나는 방향과,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두 방향을 동시에 말하는 단어야. 우리 한국인들은 누가 여행을 떠날 때, '여행 잘 가'라고 하지 않아. 여행을 갔다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와야 잘 여행하는 거라고 보거든. 그래서, 여행을 떠날 때, '여행 잘 다녀오세요'라고 말해."

"대만에는 갔다가 오는 방향을 한꺼번에 말하는 이런 단어가 없어."


대만은 여행을 떠나는 자에게 이루순펑(一路順風)이라고 말한다. 하나 일(一), 길 로(路), 순응할 순(順), 바람 풍(風)이 합쳐진 이루순펑(一路順風)이, 나에게는 어떻게 느껴지냐면, '비행기 타고 가는 내내 바람이 순조롭길 바래'로 들린다. 사실 이 말을 들으면, 더 겁이 난다. 여행을 축복하는 말로 들리는 게 아니라, 사람 겁주는 말로 들린다.


"봐봐, 단어 하나로 대만과는 다른 한국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게 재밌지 않아? 우리 민족은 여행을 떠나는 자에게 돌아오는 것까지를 걱정해 주는 따뜻한 민족인 게 글자 안에 들어있어. 중국말에는 여행을 떠나는 자가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에 대한 축복은 안 들어 있잖아?"

나, 이렇게 가르쳐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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