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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기관찰

상상만으로도 즐거워

by 김동해

석사반 동창 만란은 타이동(台東)에 산다. 그녀는 타이베이의 공기와 번잡스러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타이동의 신선한 공기와 인정미 넘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석사 졸업 논문을 다 쓰기도 전에 타이동으로 이사해서는 졸업논문을 쓰는 동안 왔다리 갔다리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 타이동에서 만란이 올라왔다.

"타이베이에 뭔 볼일이 있었어?" 그녀는 가끔 타이베이에서 요리수업을 열기도 한다.

"아니, 순수히 널 보러 온 거야."

만란은 독일사람인데, 늘 하는 말이 독일사람들은 겉치레 말 같은 건 하지 않는 민족이라고 했다. 그러니, 정말일 것이다.

'만란, 감동이잖아!'


만란은 지난 학기에 석사반 졸업을 했는데, 대만 정부가 졸업생에게 2년 더 거주할 수 있는 거주증을 줬단다. 하지만, 이 거주증으로 일하는 것은 불법이란다.

"그러면, 2년을 뭐 하러 주는 건데?"

"그 기간 동안 일자리 찾아보라고."

"내가 아는 많은 베트남 친구들은 졸업하고 일하던데?"

"회사가 공작증(工作證, 일을 해도 된다는 허가증)을 발급해주지 않았는데, 일한다면 그건 불법이야."

그녀는 공작증을 발급해 주는 일자리를 하나 구하긴 했는데, 그 공작증으로는 그 회사일만 할 수 있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은 안된다고 하더란다. 그녀는 채식 프라이빗 다이닝을 운영하는데, 타이동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고, 잡지에도 유튜브에도 몇 차례 소개된 전도유망한 채식 요리사다. 프라이빗 다이닝 사업을 위해 대만에 머물고자 하는데, 그 일을 할 수 없는 공작증이라니, 그건 있으나마나다.

그녀가 프리랜서로 일 할 수 있는 공작증을 얻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개인 사업체를 내는 거란다. 그런데, 이 방법은 사업체로 등록하는 데 대만돈 오십만 원(한국돈 2천만 원)이 든단다.

"이건 대만인들 1년 월급이잖아?"

그래서, 그 방법도 포기.

그래서 지금은 또 하나의 방법을 모색 중이란다. 예술가로 등록하면 공작증을 받을 수 있는데, 이건 대만 정부가 그녀가 하는 일을 예술로 인정해 줄지가 관건이란다. 만란은 자신이 예술가라는 증거자료를 제시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자신의 활동을 올렸다. 만몇 장의 사진 중에서 홈페이지에 올릴 사진들을 골라내느라 힘들었단다.

'와, 졸업하고 정말 많은 일을 했구나, 만란.'


그녀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도 쓰는데, 글 한 자락을 읽어보니 작가를 해도 될 정도다.

"만란, 너 이러다가 나보다 더 일찍 작가가 되는 거 아니야?" 그래, 나는 작가를 꿈꾼다.

그녀는 자기 모국어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중국어로 쓰는데도 사실만 전달하기 위해 힘겹게 쓴 느낌이 아니고, 모국어를 다루듯이 자연스럽게 감성이 묻어난다.

"만란! 우리 둘이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중국어로 손 편지를 주고받고, 그거 잘 모았다가 중국어로 책 한 권 내는 거 어때?"

"좋은 생각이야! 나 완전 찬성!"

나는 이래서 만란을 좋아한다. 헛 꿈꾸는 듯한 나의 제안에 눈을 반짝이며 찬성해 주는 만란!

"한국 여자와 독일 여자가 중국어로 편지를 주고받는다? 이것만으로도 특별하잖아?" 만란이 나처럼 흥분해 준다.

우리 둘은 이미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졌다.

그녀는 나보다 20살 어리다. 그런데도, 내 영혼과 잘 맞다. 만란은 자기가 노인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내가 아가씨 영혼을 가져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나, 정말 편지를 쓰게 될까?'

상상하는 것만 즐거워하지 말고, 행동력을 좀 발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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