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기부

by 김동해

베트남 아가씨 쭈앙칭이 어느 날 싹둑 자른 시커먼 단발머리로 나타났다. 그녀는 어떤 머리 모양을 해도 예쁜 아주 참하게 생긴 아가씨다. 그렇지만 저 시커먼 머리카락은 좀 촌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상당히 아름다웠었다. 풍성하고 은은한 갈색머리가 그녀의 여성스러움을 극도로 빛나게 해 줬더랬다.

“머리는 왜 이렇게 싹둑 잘랐어?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거야?”

“아니, 머리카락을 기부하려고, 파마하고 염색한 머리카락을 잘라냈어.”

“와우, 머리카락을 기부한다고? 멋지다 쭈앙칭. 너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한 거야? 네 머리카락을 받는 사람은 정말 행복할 거야. 어머, 나도 하고 싶다. 나도 할까? 나도 할래!”

머리카락을 한 2년쯤 길러야 한단다.

'2년 동안 파마도 못하고 염색도 못하는 건 굉장히 갑갑하겠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어진다. 그렇게 힘들게 길러서 싹둑 잘라 누군가에 기부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나는 느껴봐야겠는 것이다.


나는 좋은 일이 있으면 온 동네 소문을 내고 같이 하자고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보는 사람들마다 내가 머리카락을 기부하려고 기르고 있는데, 너도 해봐라, 우리 같이 하자고 했다. 내 부추김은 늘 좀 ‘쟨 좀 늘 쓸데없는 일에 열을 올리더라.’의 반응만 돌아온다. 아무도 내 부추김에 넘어오지 않는다.

하하, 내 어린 조카는 넘어왔다.

“소현아, 고모가 머리카락 기부할 건데, 너도 같이 하자. 고생스럽게 머리카락을 길러 기부할 때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지 않아?”

“응, 그래볼게.”

나와 비슷한 머리카락 길이에서 시작한 조카는 지난 여름에 벌써 기부를 했다.

그 집 엄마는 딸이 긴 머리카락을 감고 말릴 때 힘들어하고, 더워서 애먹는 것을 보면서 머리카락 기부 같은 거 하지 말고 시원하게 잘라버리라고 몇 번을 권했다. 소현이는 엄마의 말에 넘어가지 않고 기부할 수 있는 길이가 될 때까지 길렀다. 나는 대만에 있었기 때문에 가끔씩만 ‘머리카락 기부의 즐거움’을 이야기해 줄 수 있었지만, 자기 엄마는 날마다 딸아이를 보며 ‘잘라버리고 시원하게 지내’를 노래했는데도 조카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 머리카락을 길러 기부했다.


내 머리카락은 조카보다 1년을 더 길러서야 겨우 기부할 길이가 되었다.

좀 더 기르면, 단발 정도에서 자를 수 있겠지만, 이제 더 이상은 못 기르겠는 것이다. 기부할 수 있는 길이를 잘라내고 남은 길이가 얼마나 짧아지던, 그 스타일이 나한테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그냥 자를 생각이었다.

여름방학 때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자르러 갔다.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어서 아무 데나 가서 자르기는 좀 겁이 났다. 언젠가 스타일 변화를 시도했었을 때 친구가 자기 단골집이라며 데려가줬던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 적이 있는데,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래간만에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미장원이 어디고, 어느 원장을 찾아야 하는지 물어본다. 친구는 자기도 미장원 갈 일이 있다며 같이 가잔다. 그리고는 내가 연락을 넣은 바로 다음날로 미용실을 예약해 버렸다.

'아, 나는 마음의 준비도 없이 바로 머리를 해야 되게 생겼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당장 잘라버리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잘라야 한다고 생각하니, 짧아질 머리를 각오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친구에게 나는 언제든 시간이 되니, 그녀가 머리를 하러 가는 날 나도 함께 예약을 해달라고 했으니 ‘내일은 너무 빠르지 않아?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할 수는 없었다.


먼저 기부할 만큼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그 길이에서 할 수 있는 내게 가장 어울리는 머리로 해달라고 했다. 나는 사실 마이리(馬伊琍)처럼 숏커트를 하고 싶었지만, 내 머리숱으로는 그게 가능하더라도 관리가 너무 힘들 것이라며, 원장은 내게 단발상고를 권했다.

원장은 ‘자릅니다’는 소리도 안 하고 길이도 재어보지도 않고, 그냥 머리를 빗는 듯하더니 한 움큼 툭 자르고, 또 한 움큼 툭 잘라 미용 거울 선반에 올렸다.

고생해서 기른 머리카락을 뚝딱 잘라낼 때의 기분이 어떨까 상당히 궁금했었다. 그래서, 기부를 해보겠다고 마음먹기도 했고. (나는 절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다.)

뭐 별거 없었다. 원장이 기부할 머리카락 길이를 너무 짧게 잡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 한 줄기. 신체의 일부였다가 신체에서 떨어져 나오자 좀 끔찍스러워 보인다는 생각 한 줄기를 했다.


머리카락 기부의 의미는 힘들게 기르는 과정에 있었다. 기부하기 위해 오랫동안 길러온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는 그 순간도 아니었고, 머리카락을 담아 우편으로 보내는 그 순간도 아니었고, 머리카락 기부사이트에서 머리카락을 기증했다는 확인서를 받는 그 순간도 아니었다.(사실, 게을러서 아직 확인서를 다운로드 못했다.)

머리카락 기부를 위해 기르는 과정은 반은 편안함이었고 반은 불편함이었다.

편안함은 머리가 지저분해졌을 때, ‘아, 미장원 가서 손 좀 볼까 말까?’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다. 단골 미장원이 없는 나는 머리를 하자면, 어느 미용실이 괜찮은지 주변 사람들한테 먼저 물어봐야 하고, 그 집 어느 원장이 잘하는지, 가격은 얼마나 하는지, 미장원 위치가 어딘지, 아침시간 할인은 있는지, 머리숱이 많은 내게 어떤 스타일이 어울릴지, 하는 김에 염색도 함께 할지 말지, 염색은 이번에는 과감한 색으로 해버릴지 머리 뿌리가 자라나와도 자연스러워 보일 색으로 할지 등등,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부를 위해 기른다’고 맘을 먹고는 이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냥 길게 자라도록 내버려두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좀 지저분해져도 ‘응, 나는 기부를 위해서 기르고 있다’는 우쭐함 때문에 거뜬히 참아졌다.

또, 기부를 핑계로 머리 하는데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고, 기왕이면 질 좋은 머리카락을 기부할 수 있도록 게으른 내가 머리카락 결에 신경을 쓰는 것도 좋은 점이었다.


반만큼의 불편함은 나의 두 가지 특성에서 연유한다. 첫째는 내가 게을러서 느끼는 불편함이다. 머리가 길면 감고 말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나는 남들보다 숱도 엄청나게 많다. 둘째는 중년이 되어서 생긴 불편함이다. 숱 많은 긴 머리카락을 유지하자니 스타일은 항상 질끈 묶어 올린 똥머리인데, 이렇게 묶자니 앞쪽 머리카락이 당겨져서 빠지는지 훌빈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년에 접어든 나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불편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용실 원장이 하는 말이, 사실 머리숱이 적은 사람만 머리카락 빠지는 것을 걱정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숱 많은 사람이 더 잘 관리를 해야 한단다. 왜냐면, 숱 많은 사람이 M자 탈모가 되거나, 가르마 부분에 숱이 빠져버리면 더 처참해진다는 것이다. 다른 곳은 머리카락이 빽빽한데, 거기만 머리카락이 훌빈해서 더 하얗게 바닥이 드러나보여서 머리숱 많은 사람들이 가발을 쓰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나와 동갑인 대만 친구 쇼우칭은 20여 년째 머리카락을 기부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녀는 소아암 환자를 돕는다는 거룩한 마음이 있다. 난, 거룩한 마음이 없어서 이건 도저히 못 따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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