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소현이가 학교에서 야외체험을 하고 오기 때문에, 저녁에 피곤해서 공부를 안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일 사회시간에 선생님이 한 명씩 불러내서 묻기로 한 게 생각났다며, 사회 공부를 좀 도와 달라고 문자가 왔다.
소현이가 지금 배우고 있는 내용은 경제파트다. 수요와 공급 곡선이 나오고, 어떤 상황에서 수요와 공급이 변동하면, 그에 따라 가격과 거래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선생님이 학습지에 제시한 라면시장의 상황 묘사는 이렇다.
"밀가루와 식용유 등 라면의 원재료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밀가루와 식용유의 최대 생산지로 꼽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밀가루와 식용유의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원재료 가격뿐 아니라 식품 유통 과정에서 라면 업계가 감당해야 하는 물류비와 인건비 등이 오르고 있다."
"인건비가 뭐야?"
"사람들 월급 주는 거."
"물류비는 뭐야?"
"물건을 차에 실어서 옮길 때 드는 비용."
소현이는 라면을 워낙 좋아하니, 이 두 단어를 제외하면, 이 문장은 제법 친근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수요와 공급 중 어디에 변화가 생기겠어?" 고모가 묻는다.
소현이는 퍼뜩 대답해내지 못한다.
"라면을 만드는 생산요소 값이 비싸진다는 소리잖아. 밀가루 값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고."
"생산요소? 토지, 노동, 자본 그거?"
"응."
"그럼 공급인가?"
"그럼, 공급이 증가하겠어? 감소하겠어?"
"증가?"
소현이가 이해를 못 한 것 같아서 고모가 설명을 한다.
"생산하는데 돈이 많이 들면 팔아도 남는 게 없으니까 공급자가 생산을 줄여. 예를 들어, 원래는 라면 만드는데 생산비가 500원 들고, 1000원에 팔았어. 그러면 500원을 벌잖아? 그런데, 인건비도 비싸지고, 밀가루값도 비싸져서 800원이 드는 거야. 1000원에 팔면, 200원 밖에 안 남잖아. 그러니, 만들어도 돈이 안되니까 공급자가 공급을 줄여."
"엉? 왜 돈을 못 번다는 건데? 200원을 벌잖아. 그러니까, 더 많이 생산해야 옛날이랑 똑같은 돈을 벌 수 있는데, 공급을 늘려야지 왜 줄인다는 건데?"
"어, 네 말도 맞는데? 너 가끔씩 너무 똑똑한 거 같아!"
고모는 소현이의 똑똑함에 놀라 한계수입, 한계비용 이런 개념은 생각나지도 않았고, 기존의 공장 규모가 있는데 라면을 갑자기 많이 생산하고 그럴 수는 없으니, 생산을 해도 돈이 너무 적게 벌리면 사장님은 재미없어서 생산을 줄인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처음부터 생산비가 많이 들어서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고 예를 들었어야 했나 보다.
반도체 시장 상황에 대한 묘사는 이랬다.
"최근 4차 산업 혁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반도체에 대한 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에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라는 말처럼 관련 기업들이 앞다퉈 생산 설비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이 모두 반도체 공장 증설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걸 딱 읽는 순간, 이 내용은 일단 국어적으로 소현이에게 너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국어적 문제부터 해결하자. 이해가 안 가는 단어부터 물어봐."
"반도체가 뭐야?"
"컴퓨터나 핸드폰에 끼워져 있는 거야."
"핸드폰 심(SIM)이야?"
"아니. 너도 본 적 있을걸? 반도체라고 검색해 봐. 이미지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응, 본 적 있어."
"박차를 가하는 게 뭐야?"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서 '일의 진행을 한층 촉진한다는 뜻'이라고 답해준다.
"왜,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고 해? 물이 들어올 때는 배가 더 안 나가는 거 아냐?"
밀물은 육지 쪽으로 밀려들어 오는 것인데, 이때는 노를 저어도 배가 바다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육지로 밀려올 것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긴 한데...."
썰물일 때는 물이 아예 없어서 배를 못 띄우고, 밀물일 때는 물이 들어오니까 배를 띄울 수 있어서 그렇게 말한다고 설명해 준다.
소현이가 문맥을 이해하는 방식을 보면, 대충 어렴풋이 이런 뜻이겠지가 아니라, 정말 한 글자 한 글자 뜯어서 정말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는 나보다 나은 것 같다. 느리지만, 점점 나아질 것 같다는 희망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