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 물품을 수령하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주소지에 따라 수령지가 다르니까, 본인이 어디서 수령할 수 있는지 잘 확인하고 가라고 했다. 안내문에는 '다음 파일을 다운로드하여서 보세요'라고 적혀있었다. 그 PDF파일에는 모든 자원봉사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이름의 두 번째 글자만 *로 표시하고, 신분증 번호, 자원봉사자 번호, 집 주소, 수령지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자원봉사자가 뭐 이렇게 많아?'
스크롤바를 내려도 내려도 끝나지 않았다. 어지간한 석박사 논문도 스크롤바를 그렇게 많이 내려야 했던 적은 없었다. 그러니, 그 파일, 300페이지는 훌쩍 넘었을 것이다. 아주 적게 잡아서, 매 페이지에 20명의 정보가 있었다고 한다면, 300페이지 곱하기 20명만 해도 벌써 6000명이다. 12 학급의 고등학교를 6개를 합쳐야 이 숫자가 나온다. 그러니 자원봉사자 수의 규모가 느껴지는지?
오늘 뉴스 검색을 해보니, 2025년 4월에 자원봉사자 모집을 85% 완수했는데, 그 수가 8500명이라는 뉴스가 보인다. 그러니, 주최 측이 모집하려던 총 자원봉사자 수는 1만 명이었던 것 같다.
그 파일 속에서 내 성씨를 찾느라 토할 뻔했다. 그러고도 결국은 못 찾았다.
실은 자기 신분증 번호나 자원봉사자 번호를 집어넣고 검색하는 방법이 있었다. 다시 그 많은 페이지를 쭉 내려가며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아, 쉬운 방법을 찾다가 그제야 검색도 있음을 발견한다.
'에구, 바보같이 시간 낭비했잖아.'
자원봉사자 물품 수령일은 5월 2일부터 7일까지다. 나는 타이베이육상경기장에서 수령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2일에 학교에서 기업탐방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마지막 탐방지가 마침 타이베이육상경기장과 가까운 곳이라 그 참에 받으러 갔다. 그러지 않았으면, 일부러 이걸 받겠다고 외출하는 일은 정말 귀찮은 일이었을 테다.
자원봉사자 유니폼을 수령하라는 공고문에, 각 사이즈의 실제 크기와, 몸무게 얼마에 키가 얼마인 사람들이 시범 삼아 착용해 보고 어떤 사이즈를 골랐는지, 좀 끼는지 좀 헐렁한지 하는 의견까지 참고 자료로 줬다. 그걸 보고 사이즈를 정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 보니, 사이즈별로 옷을 펼쳐 놓고 착용해 보고 고를 수 있게 했다.
'오, 입어볼 수 있어서 다행인데?'
호, 그러면 뭐 하나, 거울이 없었다! 겉옷을 입은 채로 그 위에 걸쳐 입어 보는 것이라 어떤 사이즈로 해야 할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았다.
'XS를 해야 하나, X를 해야 하나?'
엄청 고민을 때리고 있는데, 모델급 키를 한 아가씨가 와서 사이즈를 고르길래, 좀 봐달라고 했다. 그녀는 사이즈를 고르는 내내 "타이초울러(太臭了, 너무 구리잖아)“를 반복했다. 정말이지 옷은 구렸다. 티셔츠는 대체로 국방색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의로 그렇게 한 것처럼 최대한 매력적이지 않은 국방색을 하고 있다. 운동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선수들을 뛰어넘어 눈에 띄기라도 할까 봐, 최대한 눈에 안 띄는 색으로 디자인하려고 애쓴 그런 구림이다.
두서너번 입어보고, 주최 측의 어떤 남자로부터 "얘, 되게 망설인다."는 핀잔을 듣고, 모델급 키의 아가씨의 도움을 받고서, 어렵게 사이즈를 정했다.
"바지도 티셔츠도 S로 할게요."
그런데, 바지는 S사이즈가 다 떨어져서 사이즈가 보충되었다고 연락을 하면 다시 받으러 오란다.
'나 정말 어렵게 정했다고요!'
"M으로 가져가. 그럼 다시 오지 않아도 되잖아."
"M은 너무 커요."
물품을 수령하고, 바지는 다음에 받으러 오겠다는 확인증을 받아 집으로 가려는데, 옷을 나눠주시는 봉사자 할머니가 제안을 한다.
"바지, XS 가져가는 건 어때?"
"작더라고요."
"가서 다시 한번 더 입어봐."
'그래, 그게 좋겠다!'
모델급 키의 아가씨는 그때까지도 돌아가지 않고, 아예 턱 죽치고 앉아 다른 사람들의 거울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타이초울러'를 내뱉으면서.
"아직도 안 갔어요? 난, 바지 S가 없대서, XS로 바꿔서 받아가요. 우리 인연이 있다면 운동회에서 만나요!"
오늘 받은 품목은 가방, 모자, 물병, 수저통, 바지 1벌, 상의 2벌이다. 어느 것 하나도 구리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번 활동이 끝나고 계속 쓸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운동회가 끝나고 나면, 만개의 가방, 모자, 물병, 수저통, 바지, 이만 개의 상의는 쓰레기가 될 것이다. 세계급 운동회 한번 하는데, 정말 많은 자원이 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