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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신청하다

by 김동해

자원봉사에 무단으로 2번 나타나지 않으면, 이번 세계장년운동회에 신청해 놓은 다른 일정에 참가할 수 없다. 그러니, 못 갈 사정이 생기면 미리 연락을 해야 한다.

내일, 간다고 미리 신청해 놓은 곳은 딴쉐이(淡水)* 골프장이다. 골프장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 한번 가볼까 하고 신청을 했다가, 집에서 너무 멀어서 취소를 했었더랬다. 그랬는데 누군가와 이야기하다 또 마음이 바뀌어서 다시 신청을 했다. 그녀가 하는 말이 딴쉐이(淡水) 골프장은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다른 골프장과 달리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지게 생겼고, 지형 전체의 높낮이 차이가 커서 골프 선수들에게 굉장히 도전적인 골프장이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가서 꼭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골프장은 다른 곳과 달리 오전반은 새벽 5시에 시작하고, 오후반이 아침 9시에 시작했다. 새벽 5시에는 도착할 재주가 없으니, 아침 9시를 선택했다. 나는 이번 자원봉사에서 대부분 오후 시간을 신청했다. 이번 학기에 박사논문 1차 구술시험을 쳐야 하니, 오전은 박사 논문 쓰는 시간으로 남겨뒀다. 딴쉐이(淡水) 골프장은 꼭 가보 싶으니 하루 논문 쓰기를 포기하고 아침 9시지만 가기로 했다.

9시에 도착하자면, 7시에는 집을 나서야 하고, 7시에 출발하자면 6시에는 일어나서 아침을 먹어야 한다. 전날 루조우국민운동중심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바람에 8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자원봉사자 유니폼을 빨고 하느라고 조금도 쉬지 못한 느낌이다. 다음날 6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건 즐거움이 아닌 것이다.

'즐겁자고 하는 자원봉사가 고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라인(LINE)**을 통해, 딴쉐이(淡水) 골프장 책임자에게 오늘 하루 휴가를 내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며칠 봉사를 하고서는 몸이 좀 안 좋아요. 내일 참가하는 한국인 선수가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갈게요. 그렇지 않다면 하루쯤 쉴까 해요."

"당신의 문자에 감사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이 라인은 개인 사용자의 문자에 답할 방법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문자에 자동으로 이렇게 답하도록 설정된 듯한 문자가 돌아왔다.

'휴가를 신청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군.'

이어서 딴쉐이(淡水) 골프장의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우와, 예쁘잖아?'

휴가를 신청하려는 나에게 예쁜 골프장 사진을 보내서는 '이렇게 예쁜데 안 와 볼 거야?'하고 유혹하는 듯했다.

'이러면 곤란하잖아!'

초록색 잔디의 페어웨이와, 모래색 벙커와, 여기저기 한그루 우뚝 자란 나무가 구름 잔잔한 파란 하늘과 어울린 사진은 상당히 예쁘다.

'가고 싶잖아!'


갈까 말까 하고 아침을 먹으면서까지도 고민을 했다.

'오늘 갔다 오면 내일 뻗을지도 몰라. 그럼 어차피 다음날 하루를 쉬어야 한다고. 오고 가는데 4시간이나 걸리는데, 그러면 하루가 다 가버려. 그럼 하루는 논문을 손도 못 댄다고. 한국인 선수도 없어. 가봤자 오늘도 '쓸모없음'을 당해. 주말에 가이드 시험이 있잖아, 일단 그거 붙어야 하잖아? 피곤해서 아프면 안 된다고.'

아침을 먹으며 고민을 하다가, 지금 출발해서는 9시에 도착할 수 없는 시간이 되고서야 포기가 되었다. 30분 이상 지각을 하면 자원봉사자 출석 체크를 할 수 없다.

하루 쉬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게 이렇게 아늑한 일이었어? 너무 좋잖아!'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파랑새는 우리 마음속에 있었어요' 였듯이, 즐거움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집순이의 행복은 집이었다.




*딴쉐이(淡水) : 한국에서는 단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중국어 발음대로 읽으면 딴쉐이다. 우리나라는 dan shui라는 핀인을 한국어로 읽어내며 단수이가 되지 않았나 싶다.

**라인(LINE) : 대만에서 쓰는 메신저앱, 한국의 카카오톡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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