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6일째, 국부기념관

國父紀念館

by 김동해

오늘 자원봉사를 신청한 곳은 국부기념관이다. 이곳은 관광 온 한국인이면 다들 들러가는 그런 장소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운 적 있는 인물, 쑨원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쑨원은 신해혁명을 통해 왕이 다스리는 나라였던 중국을 최초로 공화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대만의 국부(國父)로 섬겨지고 있다. 이 건물은 전통 중국식 궁전 양식으로 건축되었다는데, 버선코처럼 떠든 주황색의 처마는 어떤 각도로 찍어도 대략 멋지게 나온다. 또한 이곳도 중정기념당처럼 시간마다 경비병 교대식을 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

나는 수년째 대만생활을 하면서도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언젠가 한 번은 들어가 볼 뻔도 했는데, 줄이 길어서 포기했다. 그래서 이번에 자원봉사 경기장에 국부기념관이 있는 것을 보고는 '특별히 부지런을 떨지 않아도 들어가 볼 기회가 왔군'하고는 냉큼 신청을 했다. 국부기념관 안에서 도대체 뭔 경기를 한다는 건지는 의아했지만. 뭔 경기가 되었든, 국부기념관에 들어가 볼 기회만 생기면 되니까.

국부기념관이랑 송산문화창의공원은 아주 가깝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타이베이 101과도 걸어서 십여분 거리로, 이곳에서 타이베이 101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좋다. 타이베이 101 근처에는 또 쓰쓰난춘(四四南村)이라고 옛날에 국민당 정부가 주둔하면서 지은 군사 주택 단지를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러니, 국부기념관, 송산문화창의공원, 타이베이 101, 쓰스난춘은 걸어 다니며 한꺼번에 여행하기 좋다.


지하철 파란 선을 타고 국부기념관역에서 내리면 국부기념관 건물의 뒤쪽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건물이 지금 수리 중인지 공사 차단막이 쳐져 있었다. 그 막을 그냥 두는 건 미관상도 별로고 심심하기도 하니까, 차단막에 국부기념관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아마 국부기념관을 주제로 그림대회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주황색 지붕은 어떤 그림 속에서도 그 건물의 존재가 국부기념관인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리 중이라도 어딘가 들어가는 문이 있겠지 싶었는데, 한쪽 면을 쭉 따라 돌았는데도 들어갈 수 있을만한 입구가 안 보였다. 정문으로만 출입되도록 해놨나 보다 하고 꺾어 돌아 정문을 향해 가보는데, 이곳도 공사차단막으로 삥 둘러싸여 있었다.

'어? 어디로 들어가야 하지?'

출입구를 못 찾아 황망해하고 있자니, 공원 분수 너머에 자원봉사자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성이는 것이 보인다. 자원봉사자 센터가 국부기념관 앞 공터에 차려져 있었다.

출석체크를 하고 화장실부터 찾는다. 집을 나설 때부터 조금 뇨끼가 느껴졌었는데 이제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나는 오늘 뭔 마음으로 집에서 화장실을 들르지 않고 지하철을 탔고, 지하철에서 내려서도 화장실에 들르지 않았다. 자원봉사자 센터에 도착해서 흐트러진 머리도 다듬을 겸 화장실에 들를 거니까, 그때 가면 되지 하고 미뤘던 것이다. 두 번 가는 건 귀찮으니까.

"여기 화장실이 어디예요?"

한 자원봉사자가 가리키는 곳은 차량식 이동식 화장실이었다.

"국부기념관 안에는 화장실이 없나요?"

"지금 공사 중이라 못 들어가요. 선수들도 저 화장실을 써요."

양산을 받쳐 들고 나선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눈앞에 보이긴 하지만 공원이 넓다 보니 꽤 멀어서 양산 없이 걸으면 꽤 뜨거울 것이다.

화장실은 대략 난감했다. 이동식 화장실 내부는 햇볕 아래서 이미 뜨끈뜨끈한데, 깨끗해 보이지 않는 변기에 엉덩이 살이 닿지 않으려고 용을 쓰며 볼일을 봤더니, 온몸이 땀으로 후줄근해졌다.

뒤늦게 알게 되는데, 이동식 화장실 말고 공원 내에 잘 지어진 화장실이 있었다. 선수들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지점에서 아주 조금 멀긴 했지만.


"오늘 여기서 무슨 경기를 해요?"

"띵썅위에이에(定向越野, Orientieering)를 해요."

'오우! 여기서 오리엔티어링을 한다고?'

이런 게임이 있다는 것을 몰랐더라면, 그게 무슨 게임이냐고 다시 물어봐야 했을 것이다. 첫날 송산문화창의공원에서 열리는 2025 세계장년올림픽 박람회에서 봉사를 하면서 이런 게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펼쳐지는 경기는 모두 35 종목인데, 그중에는 댄스스포츠, 소프트볼, 우드볼, 게이트볼, 수상구조, 줄다리기, 오리엔티어링이라는 경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람회장에 적힌 오리엔티어링에 관한 설명은 이랬다.

"지도를 손에 들고, 발로 뛰며 시간을 겨룹니다. 선수는 지도와 나침반을 사용해 스스로 길을 정하고, 정해진 체크포인트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통과한 뒤 결승점에 도착하는 경기입니다. 선수는 지도를 읽는 능력, 빠른 판단력, 문제 해결력, 그리고 지형을 넘나드는 달리기 실력이 모두 요구됩니다. 발은 달리고, 머리는 계속 회전해야 합니다! 매 한 걸음이 도박과 같죠. 베팅한 게 맞아야 남들보다 먼저 결승점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 설명을 봤을 때, 이런 스포츠도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이거라면, 운동세포가 전혀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참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7년에는 일본에서 이 경기가 개최되는데, 그때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선수로 참여해 봐도 좋겠다.


오늘도 한국인 참가자가 없기 때문에, 한국어 통역봉사를 신청한 나는 쓸모가 없다. 오늘 배정받은 일은 선수들이 가방을 벗어두는 천막 아래서 대기하고 있다가 선수들이 자기 구역에 가방을 잘 벗어놓도록 안내하는 일이다. 선수들이 가방을 벗어두고 경기를 뛰고 오는 동안의 대기 시간이 많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다. 그래서 그곳 책임자가 자원봉사자들에게 의자를 하나씩 나눠줬다. 의자는 등받이가 없는 간이 의자다. 나와 같은 일을 배정받은 사람들은 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르신들이었는데, 그들은 이 간이 의자에 불만이 없었다.

"등받이도 없는 의자를 주면, 이거 너무 불편하지 않아요?" 내가 불만을 슬쩍 말해본다.

"계속 앉아 있을 것도 아닌데 뭘. 불편하면 일어나 좀 움직이면 되고." 대만 어르신들은 나의 불만에 이해가 안 간다는 투다.

나는 종일 앉아 내일모레 있을 가이드 시험공부나 할 작정인데, 등받이 없는 간이 의자는 휴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고문도구다. 허리를 위해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안 된다. 나는 '까다로운 한국인'의 인상을 주거나 말거나 책임자에게 등받이 있는 의자를 달라고 했다. 책임자는 의자를 바꿔주는 대신 등받이 의자가 있는 곳으로 업무를 바꿔줬다.

다시 받은 업무는 분실물 접수다. 긴 테이블에 나와 두 명의 대만 할머니가 앉아 이 일을 담당했다. 네시간여 자원봉사 시간 동안 서녀명만 왔다 갔을 뿐이다. 그나마도 두 대만 할머니가 앞다퉈서 처리했기 때문에, 나는 정말 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맘 놓고 가이드 공부를 했다. 다행히 오늘 두 할머니는 말수가 적어서 비교적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


집에 갈 시간쯤에야 가이드 공부를 접고, 궁금했던 오리엔티어링이 어떤 경기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나와 분실물 접수를 하는 두 할머니는 며칠 째 계속 이곳으로 봉사를 오신다면서도 이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모르신다. 옆 천막의 경기 스텝들에게 물어보란다. 스텝들은 바쁘다. 호기심 많은 자원봉사자까지 그들을 귀찮게 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 물어본다?'

경기를 뛰고 돌아와 순위 발표를 기다리는 선수들이 있는 천막 아래서 쉬고 있는 미국 남자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그는 좀 전에 분실물 센터에 와서 뭘 물어봤는데, 중국어를 상당히 잘했다.

"헤이, 오리엔티어링이 어떻게 하는 경기인지 궁금한데, 너한테 좀 물어봐도 돼?"

"그럼, 당연히 되지. 뭐가 궁금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지도를 받는 거야? 아님 모든 참가자 지도가 다 다른 거야?"

"나이대 별로 참가하는데, 같은 나이대 참가자들은 같은 지도를 받아."

"지도가 똑같다면, 1등 선수 뒤를 따라가면 되겠네?"

"앞사람이 옳은 길로 가는지 어떤지 모르는데, 무작정 따라갔다가는 낭패할 수 있어. 자기가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야 해."

"지도가 표시한 대로 길을 따라갔는지 어땠는지 어떻게 알 수 있어?"

"각 지점마다 도착했다고 카드를 찍는 곳이 있어."

"이 경기를 도심에서 하면, 대만 사람들에게 너무 유리한 거 아니야? 그들이 외국인보다 도심 지리를 더 잘 알잖아. 나침판으로 동서남북을 파악하지 않고도 찾아갈 수 있잖아. "

"좀 그럴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

"어떻게 하면 이기는 게임이야?"

"지도가 표시한 체크포인트마다 카드를 찍고, 제일 먼저 결승점에 들어오면 이겨."

"다 돌고 결승점까지 오는데 얼만큼의 시간이 걸려?"

"보통 한 삼십 분?"

이 남자는 며칠 후에 대만 북동부 어느 시골 마을에서 열리는 오리엔티어링에도 참가를 한단다. 거기는 이곳과 달리 산과 들판을 뛰어다녀야 하는데, 한 게임당 거의 2시간 여가 소요될 거란다.


국부기념관 공원에서 열리는 오리엔티어링은 오늘이 대회 마지막 날이다. 경기가 끝나고 곧바로 시상식이 진행될 거였는데, 한 참가자의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져서 수상자를 다시 분석하느라 시상식이 지체되었다. 한 참가자가 공사 구간을 만나 길이 통제되어 있어 시간을 지체했다며, 이것에 대한 시간 보정을 해달라는 이의 신청을 했던 것이다. 같은 나이대별 선수들은 같은 지도를 보기 때문에, 같은 경로를 찾아 움직였을 테고, 모두 공사 구간을 만났을 텐데, 왜 그 시간에 대한 보정이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자원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쯤에 막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90대 할머니의 금메달 수상식이었다. 사회자는 온갖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여 그녀를 한껏 추켜올리며 금메달을 수상했다. 시상식장을 둘러싼 사람들도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90대 참가자는 이 할머니 한 분뿐이었고, 그래서 당연히 금메달을 수상했던 것이지만, 우리는 90이 넘는 나이로 이 경기에 도전한 것에 대한 열정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나도 저렇게 멋진 할머니로 늙고 싶다!'

그녀의 시상식이 끝난 후로 한참을 기다려도 다른 시상식은 거행되지 않았다.

"왜 이어서 시상식을 하지 않는 거야?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해?"

"저 할머니가 나이가 연로하셔서 너무 오래 기다릴 수 없으니, 먼저 시상식을 한 거고, 나머지 수상자는 시간 보정이 필요해서 좀 더 기다려야 할 거야."

시상식을 마저 다 보기를 포기하고, 국부기념관에서 걸어 십여분 거리에 있는 재외국민 투표소에서 대한민국 21대 대통령 투표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다. 비록 봉사한 게 아니라, 놀다 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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