蘆洲國民運動中心
오늘 몸이 좀 묵직하다. 하루 4시간 자원봉사 하는 게 뭐 어떻겠냐 싶었지만, 어딘가 좀 안 좋은 게 느껴진다.
'좀 어지러운 건가?'
지하철을 타고 오늘의 자원봉사 장소로 가는 중에 내일은 하루쯤 쉬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한다. 하지만, 내일은 내가 그렇게 고대하던 100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딴쉐이(淡水) 골프장이다. 어쩌지?
'이 몸으로 4시간을 들여 가는 게 가치가 있을까?'
딴쉐이(淡水) 골프장은 구글지도가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으니, 자원봉사 중심까지 찾아가고 뭐 하고 하자면 적어도 2시간을 잡고 가야 한다. 또 돌아오는데 2시간이 걸니니, 4시간의 자원봉사를 위해 정말로 써야 하는 시간은 8시간이다. 하루 종일인 셈이다.
사십여분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가보고 싶다는 마음'과 '가치롭지 않다는 판단' 사이에서 열심히 갈등을 했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쯤 겨우 '가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는 데 성공하고, 내일은 휴가 신청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내일 안 쉬었다가는 주말에 있을 가이드 시험에까지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
오늘 자원봉사를 가는 곳은 루조우(蘆洲)다. 루조우(蘆洲) 구는 산총(三重) 구와 함께 딴쉐이(淡水) 하류 지역에 위치한 강기슭의 퇴적된 사주 지역이다. 아몬드처럼 생긴 땅인데, 딴쉐이(淡水) 강 본류가 이 지역을 감아 돌아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강의 입구라는 지리적 편리함과 토지가 비옥하다는 점 때문에 과거에는 수운과 농업활동으로 한때 번성하던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몇 손안에 꼽히는 인구밀도가 굉장히 높은 지역이다. 하지만, 이곳은 하구 저지대여서 수해침해가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지금은 정부가 제방을 쌓는 등 치수(治水) 작업을 통해 개선되었다고 한다.
자원봉사자 센터는 일단 국민운동중심 건물 5층으로 올라가서 안전검사를 거친다, 핸드볼 경기장을 지나서 건물 밖으로 난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면 3층 야외 공간에 차려져 있었다. '선머꿰이띠방아(什麼鬼地方啊)?*'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더워 죽겠는데, 야외라니!'
지붕이 있어 그늘을 만들어 줬지만, 뜨겁고 습한 야외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해서 기다리는 동안 땀을 줄줄 흘렸다. 연속 근무하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그곳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를 내다 놨는데, 거기서 먹자면 더워서 밥이 제대로 넘어갔겠나 싶다.
오늘도 한국인 팀은 없어서 나는 쓸모가 없을 예정이다. 출입구 안전검사 하는 곳으로 배정받았다. 영어 통역을 신청한 여대생도 나와 같은 곳에 배정받았다. 이 아가씨는 평상복을 입고 와서 화장실에 가서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유니폼을 갖춰 입지 않고 자원봉사를 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다. 유니폼을 미리 수령하지 않아 평상복을 입고 덜렁덜렁 오는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는데, 그러면 그들에게는 임시로 자원봉사자 조끼를 나눠줬다.
오늘도 앉아 주말에 있을 가이드 공부를 했다. 핸드폰으로 열심히 검색을 하자니 테이터 사용량이 끝났다며 다시 구입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나는 보통 60일 동안 1GB를 제공해 주는 중화전신을 쓴다. 밖으로 싸돌아다닐 일이 많이 예정되어 있으면, 가끔 1.5GB를 사기도 한다. 1GB는 대만돈 180원이고, 1.5GB는 250원이다. 그러니까, 두 달 핸드폰 요금으로 많아봐야 한국돈 10,000을 쓴다. 60일에 1GB가 어떻게 가능하나 싶겠지만, 나는 그것도 다 못쓴다. 늘 60일이 지나서 충천을 하지, 데이터를 다 써서 60일 전에 충천하는 일은 잘 없다. 집에는 집 와이파이가 있고, 학교에는 학교 와이파이가 있고, 커피숖에는 커피숍 와이파이가 있으니까. 길 찾기 용도가 아니고서는 딱히 쓸 일이 없다. 집순이인 나는 길을 나서는 일이 잘 없어서 두 달 동안 1GB의 반도 못 쓴다. 길 건너 편의점에 가서 충천을 하고 와서 또다시 가이드 시험 준비를 했다.
오늘 이곳에서 열린 경기는 핸드볼이다. 가이드 공부를 하다 지치면 경기장 안에 앉아 머리를 쉬며 핸드볼 게임을 봤다. 세계장년운동회라지만, 주로 대만팀이었다. 직장이나 마을 단위의 운동동호회 같았다. 각 팀마다 근사하게 유니폼을 맞춰 입고 왔다. 자기 게임을 막 끝내고 다른 팀을 응원하고 있던 한 여인에게 말을 붙였다.
"코치가 따로 있어요?"
"코치가 어딨어요? 우리끼리 그냥 하는 거죠."
"대회 참여하려고 따로 연습 많이 하셨나 봐요."
"연습이 어딨어요? 평소에는 회사 마치고 집에 가 쉬기 바쁘죠. 오늘도 회사에 하루 휴가 내고 와서 그냥 뛰는 거예요."
여성들은 협조가 천성인 걸까? 따로 호흡을 맞춰보지 않고서도 전문 코치가 있어서 훈련을 받은 것처럼 손이 착착 맞았다. 공이 기세 넘치게 오고 갔다.
서너 팀의 경기를 보고, 가이드 공부도 토가 나오도록 하고 나서야 집에 갈 시간이 된다. 말이 자원봉사자지, 봉사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돌아가는 길은 한 시간쯤 걸리니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가기로 한다. 오는 길에 버스정류장 광고판에서 면 광고를 하나 봤는데, 그걸 먹어야겠다. 치에짜이(切仔) 면의 비밀이라며, 이 면에는 숙주, 부추, 샬롯(알싸한 작은 양파), 돼지뼈, 면, 대나무 국수 체가 핵심요소라고 적혀 있었다. 생긴 게 단짜이(擔仔) 면을 닮았다. 단짜이면은 타이난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유명한 음식이니, 치에짜이면도 맛이 있을 것이다.
같이 통역봉사를 했던 여대생에게 체면치레로 저녁밥을 같이 먹으려나 물어봤다.
"여기 치에짜이미엔(切仔麵)이 유명한가 보던데, 난 그걸 저녁으로 먹고 가려고 하는데, 같이 먹으러 갈래요?"
"네, 같이 먹으러 가요."
의외다. 딱히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겠다니.
'아! 좀, 어색하겠는걸?'
"그런데, 치에짜이미엔(切仔麵)이 뭐예요?" 그녀가 묻는다.
"대만 사람인 너도 모르는데 난들 어떻게 알겠어요? 단짜이멘 비슷하게 생겼던데요?"
그리고 버스정류장을 지나며 찍어놨던 사진을 보여줬다.
"치에짜이미엔(切仔麵)이라고는 처음 들어봤어요."
"오우, 그래요? 이건 루조우 지역에서만 파는 특별한 음식인가 보네요."
출입구에서 안전검사를 하시던 경찰복 입은 남자에게 치에짜이미엔(切仔麵) 맛집을 하나 가르쳐달라고 했다. 두 곳을 알려주는데, 한 곳은 이곳에서 많이 멀고, **이 가깝단다. 그곳도 조금 거리가 있으니까 지하철을 타고 한 코스 가란다.
"구글 지도가 17분쯤 걸릴 거라고 하는데, 우리 그냥 걸어서 가는 거 어때요?" 내가 제안했다.
"좋아요." 어린 여대생이 걷는데 동의한다.
그녀는 구글 지도를 잘 못 본다고 해서, 내가 구글지도를 보며 길을 찾는다. 그런데, 국숫집은 걸어도 걸어도 당최 나올 생각을 않는다.
'남자가 알려준 대로 지하철을 한 코스 탔어야 하나?'
어린 여대생이 국숫집을 찾아가는 길이 먼 것을 싫어할까 봐도 신경이 쓰이고, 친하지도 않은 그녀와 대화를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힘들다.
'국숫집이 빨리 좀 나타났으면 좋겠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아까부터 말없이 걷고 있었다. 드디어 국숫집이 나타났다. 영 허름해서 맛이 없을까 잠시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맛있다. 오래 걸은 보람이 있다.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다시 어린 그녀와 오랜 길을 걸어 지하철을 타러 돌아왔다. 서먹한 사이라면 같이 밥을 먹는 일도, 같이 걷는 일도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혼자였으면 아름다웠을 밤이, 서먹한 타인이 있어 피곤했다.
그녀가 사랑스럽지 않은 인물이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그녀는 올여름에 한국으로 놀러 갈 계획이라 한국에 관심이 많았고 한국인인 내게 친절했다. 하지만, 나는 내게 향하는 것이 아닌, 한국인에게 향하는 친절을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녀의 친절이 도로 피곤했다. 내가 그녀의 친절을 피곤하게 느꼈다는 것을 그녀가 안다면 얼마나 마음이 상할까?
'미안해요, 나는 혼자가 습관이 돼서 그래요.'
* 선머꿰이띠방아(什麼鬼地方啊)?: 뭐 이런 귀신 떡다리 같은 곳이 다 있담?
** 나중에 기억나게 되면, 가게 이름을 추가하도록 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