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번째 관문, 구술시험

by 김동해

시험장 안으로 안내되어 가니, 시험을 치르는 교실 복도 앞에 책상과 의자 한 세트를 내놨는데 거기 앉으라고 했다. 그 책상 위에는 빨간 헝겊 주머니 위에 플라스틱 번호판이 쭉 펼쳐져있었다. 구술시험 문제가 10개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뽑아서 시험을 친다고 했다. 그러니, 시험 문제를 고르기 위한 번호표다.

'번호를 왜 이렇게 다 내놨데? 눈으로 뻔히 보고 고르는 거야?'

이렇게 생각할 때, 시험진행자가 와서 6번과 9번은 밑에 선을 그어서 표시 내놨어, 번호가 다 있는 거 보이지하며 확인을 시켜주고는 헝겊 주머니에 넣고 섞더니, 나보고 하나 뽑으라고 했다. 손을 짚어넣었을 때, 한 서너 개쯤 잡혔다. 주물럭 거리다가, 가장 밑에 있는 것으로 꺼냈다. 중간 걸 할까 조금 고민하면서.

1번이었다.

내가 뽑은 번호를 기록하고 사인하게 했다. 그런 후에 1번 시험지를 내게 보여줬다. 5분간 문제를 보고 어떻게 대답할지 구상할 시간을 준다.

'주제관광열차(主題觀光列車)'와 '무림자접유곡(茂林紫蝶幽谷)'이 나왔다.

'아, 된장! 내가 공부한 게 아니야.'

5분간 열나게 생각을 했다. 이 두 주제에 대해서는 조금 언급할 수 있을 정도로도 모른다. 주제관광열차는 기차 여행이니까, 기차와 관련시켜서 대충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싶었고, '무림자접유곡(茂林紫蝶幽谷)'은 한자를 보자니, 무림(茂林)이라는 곳에 보라색(紫) 나비(蝶)가 서식하는 계곡(幽谷)이 있는 모양이다.

'이곳에서는 나비 생태를 볼 수 있다고 말할까?'

그러고 나서는?

무림(茂林)이라는 도시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지만, 이름으로 봐서는 무성한(茂) 숲(林)이니, 내가 공부한 것 중에 삼림공원이나 레저 농장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대충 가져다 붙여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구상을 했다.

'하지만, 무림(茂林)이 그냥 도시 이름이고, 무성한 숲이랑 관련이 없으면 어쩌지? 자접(紫蝶)이 진짜 보라색 나비를 뜻하는 게 아니라면 어쩌지?'


시험관은 2명이었다. 한 분은 나이 지긋한 한국분이시고, 한 분은 젊은 대만 사람이었다. 젊은 대만 남자는 한국어가 서툴러서, 내게 질문을 할 때면 문장을 만들어 내느라 용을 써서 얼굴이 뻘겋게 되었다.

구술시험은 자기소개 2분을 포함해서 10여분 동안 자기가 뽑은 문제에 대해 답하면 된다. 자기소개를 하고 나자, 면접관분이 내가 자기소개에서 했던 내용에 대한 추가 질문을 하셨다. '아, 난 이렇게 10분을 때울 수 있겠구나.'하고 신이 나서 열심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걸로 구술시험 10분을 때울 수는 없는 일이고, 드디어 본격 질문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다행히, 면접관은 아까 내가 밖에서 봤던 문제를 똑 같이 묻지는 않았다. '대만 기차에 대해 아는 거 이야기해 보세요, 관광열차 타보셨어요?, 고속기차는 THSR이라고 하고, 일반기차는 TRA라고 하는데,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아세요?' 뭐 이런 식으로 기차에 대해 광범위하게 물어주셨다. 면접관들이 생각하기에도 문제가 좀 어렵다고 느꼈던 걸까?

2번째 문제 '무림자접유곡(茂林紫蝶幽谷)'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질문당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끝나고 말았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구술시험 합격발표는 2주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구술시험이 한국어 능력은 보는 것이라면 붙겠고, 대만 관광자원에 대한 지식을 보는 것이라면 좀 위험할 것 같다.


기출문제 74개를 공부했다. 처음에는 관광지 사진도 찾아보고, 관련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느라 시간을 너무 들여 하루에 몇 개 못 봤다. 시험이 다가오자 더 빨리 많은 주제를 공부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내가 찾은 방법은, Chat gpt! 한국인 관광객에게 소개해 줄 스타일로 대만에 관한 어떤 주제를 알려달라고 명령하면, 멋지게 정리해 줬다.


구술시험은 좀 엉망으로 쳤지만, 시험 준비하면서 대만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어 보람차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필기시험 가채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