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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기관찰

말 많은 사람은 피곤해

by 김동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쩜 이렇게 피곤하담? 난 혼자 고독할 운명인가?


같이 석사 공부를 한 파정과 만날 약속이 생겼다. 파정은 대만에 있는 불교사찰에서 승려로 일하고 있다. 그는 태국 치앙마이의 승려다. 그는 가끔 사찰을 벗어나고 싶을 때, 학교로 놀러 오고, 나를 찾는다. 그는 나만큼 말이 없다. 그를 만날 때는 중간에서 대화를 이끌어줄 지원군이 필요할 정도다. 마침, 삐홍에게 물어볼 것이 생겨 연락했더니, 오늘 수업이 있어 학교에 왔단다.

"오늘 파정을 만나기로 했는데, 너도 시간이 되면 같이 점심이나 먹자."

"좋아."

다행이다. 말없는 파정과 나 사이에서 삐홍이 도맡아 말해줄 것이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사들고 앉아 명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아는 척을 한다. 박사반 친구다. 그는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 도시락을 펼친다.

"이리 와서 같이 앉아."

"그래도 돼? 내가 너네들 방해하는 거 아니야?"

그는 나만 알고, 파정과 삐홍과는 모르는 사이다.

"아냐 아냐, 다들 우리 과 애들이야."

웨이헝은 한 테이블에 와 앉는 걸 주저하는 척 겉치레 말을 하더니, 와서 앉자마자 도시락 먹을 생각은 않고 혼자 떠들기 시작한다. 자기가 관교수의 수업을 수강한 적도 없는데, 관교수가 그를 지도학생으로 받아준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한다. 파정은 한 마디도 끼어들 수가 없어, 핸드폰만 보고 있다.

"밥부터 먹어."

입 좀 닥쳐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밥부터 먹으라고 권했다.

그는 그냥 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굉장히 유머스럽고 재치 있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넌 들어, 내가 이야기할게'식이다. 나는 이런 식의 대화를 싫어한다. 피곤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피곤하다는 것을 얼굴에 드러낼 수 없으니, 그걸 숨기느라고 더 피곤하다.

드디어, 삐홍이 일하러 가야 한다며 일어선다. 그걸 기회 삼아 우리도 그만 일어날까 싶다. 그러나, 그는 아직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나 보다. 자기가 어려운 논문을 읽고 쉽게 설명해 주는 AI 기능에 대해서 가르쳐 주겠다며,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하잖다. 그는 AI를 다루는데 상당히 능숙한데, 자기만 아는 비법을 나한테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아냐, 필요 없어.' 속 마음은 이랬다. 하지만, 이렇게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법에 서투르기 때문에, 거절하지 않는 걸로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쪽을 택한다.

"응. 좋아."

도서관에서 그 웹 사이트를 어떻게 쓰는지 막 이야기 해주는데, 난 지루하고 피곤해 죽을 지경이 된다. 내가 컴퓨터를 접고, 의자에서 일어나, 가방을 둘러메는데도 그의 말은 이어진다.


다음부터 웨이헝을 피해야겠다. 그를 상대하느라 온갖 에너지를 쏟아, 오후에는 지쳐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말 많은 사람은 정말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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